어느 노부부의 하루
하루하루가 이렇게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딱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야만 할 일도 없다. 영감도 할 일이 없는지 TV 화면에 구멍이 날 지경으로 쏘아보기만 하고 앉았다. 집안에 늙은이 둘만 있으니 이렇게 분위기가 칙칙하다.
원래 말수가 적은 영감이니 말을 좀 해보라고 옆구리를 찌르기도 쌩퉁 맞다. 영감도 그렇지만 나도 딱히 영감에게 건넬 이야기 거리가 없다. 강아지 목욕이나 시키자고 할까? 그건 내가 싫다. 강아지 목욕을 시키고 나면 화장실 청소를 덤으로 해야 하니까.
남들처럼 봐 줘야 할 손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보림(손녀딸)이는 방과 후 교실에다가 네다섯 곳의 학원으로 도장으로 다니다가 제 집에 들어가는 시각이 저녁 8시라니, 내가 보고 싶단다고 내 차례가 오겠느냐는 말이지. 얻어 보기가 힘들 정도라는 말씀이야.
눈이 내릴 것 같이 베란다 창밖이 잔뜩 흐려 있다. 이런 걸 보고 젊은이 들이 말한다지? ‘사흘 굶은 시어머니 상’이라고. 뭘 하느라고 시어머니를 사흘씩이나 굶겼을고. 나도 참 심심하기는 심심한가 보다. 남의 시어머니 굶기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람 .
갑자기 TV보륨이 커진다. 돌아보니 화면 가득히 ‘존 시나’의 근육질 가슴이 보인다. 레스링을 하는가 보다. 영감은 프로 레스링 보기를 좋아한다. 나는 말한다.
“하필이면 저런 운동을…. 농구도 있고 배구도 있잖아. 무식하게 때리고 치는 걸 운동이라고.”
체널이 돌아가는가 싶더니 ‘판관 포청천’이 뜬다. 자기가 무슨…. 쯔쯔쯔. 뭐 볼 게 없어서 ‘판관 포청천’아냐구. 아서라 ‘손오공’이 재주를 부릴라.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손오공인고. 차라리 ‘베트 멘’이라면 모를까. 그도 너무 오래 된 추억 속의 이름인가? 영감은 성미도 요상하다.
나도 그렇지만 영감도 많이 심심한가 보다. 할 일이 없다는 건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뭔가 하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할까? 딸년들이나 시간이 맞으면 수다라도 떨자 할 것을. 핸드폰을 열어 시각을 두들기니 오후 5시. 막내 딸년은 강의 중이겠구먼. 먹고 살만한데 강의는 무슨.
큰 딸년이 사는 버지니아쪽은 9시. 하지만 사위가 퇴근을 했을 터이니 만만하지가 않다.
“에이~!”공연히 심술 아닌 심술을 떨어 본다. 받아주는 이도 없구먼서두. 공연히 회전의자를 돌리고 돌리고 또 돌리고. 쌩퉁맞게 미국이 넓기는 넓은 나라인가 보다고 넋두리를 한다.
급기야 일어나서 ‘런닝’ 위에 올라선다. 그래. 내겐 여기가 안성맞춤이다. 속도를 올리고 경사도를 최고로 해서 헉헉 또 헉헉. 그래도 걷고 또 걷는다. 아직 땀은 나지 않는다. 땀이 나는 건 싫다. 아니 사실은 땀을 흘리고 나서 샤워하기가 싫은 게다.
휴~. 시간이 안 간다. 아니, 내 입에서 시간이 안 간다는 말이 나오다니. 늘 바빠서 쩔쩔매던 나였던 것을. 내가 원해서 일을 놓고,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한가해졌으니 원하던 바가 아닌가. 그러나 몸이 한가한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적당히 바빠야 사는 재미도 있다는 말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