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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야 우리도 손잡고 단풍놀이 가자


BY 만석 2017-11-18

언니야 우리도 손잡고 단풍놀이 가자

 

노란 단풍잎이 함박 쏟아진 가을 길을 걷고 있었다. 내 생각대로라면 굳이 비질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렇게 가을이 쏟아지는 날이면 누굴 그리워할까? 딱히 눈물이 나도록 보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넓직한 쇼윈도를 지나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의 물결 속 쇼윈도 속에 언니가 보였다. 소털색 반코트를 입은 언니는 양쪽 주머니에 양 손을 찌르고 서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없는 양 무심하게 나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깜짝 놀라서 등 뒤를 돌아보지만 언니는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두리번 사람의 물결을 살피다가 다시 윈도를 쏘아보았다. 혹시 윈도 속 저편에 있었던 건 아닐까. 이리저리 두리번거려 보지만 언니는 보이지 않았다.

 

언니. 그 이름도 그리운 언니. 내게는 언제나 고왔던 하얀 얼굴의 언니. 버선코를 닮았던 오똑한 코. 야무진 입매가 한결 더 고운 자태를 자랑하던 언니. 나도 어서 자라서 언니처럼 짝갈래 머리를 땋고 시민회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다니고 싶게 만들었던 언니.

 

한참 물오른 미모에 동생인 나도 시샘을 했던 어여쁜 자태의 언니는 아직 일곱 살이나 덜 먹은 나에게는, 언니처럼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늘 언니처럼 어서 키가 크고 싶었고, 언니처럼 예쁘고 싶었던 건 내 시야가 고작이어서는 아니었다. 누구라도 언니는 예쁘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단풍잎 가을 길의 쇼윈도 속의 언니는 많이 늙어 있었던 것 같다. 옛날 같은 뽀얀 얼굴도 아니었고, 오똑한 코의 윤곽도 보이지 않았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에서는 짝갈래 머리가 그려지질 않았다. 아마 이마에 흘러내린 애교머리는, 이마의 주름을 덮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 보인다. 언니의 모습을 찾던 나는 다시 쇼윈도 속의 언니를 볼 수 있었다. 분명히 언니의 형상인데 너무 늙어 있었다. 늙은 언니는 내 소털색 반코트를 입고 있었다. 무엇에 질린 듯이 눈을 굴리며 주머니에서 빠진 두 손을 마주 잡아 비비고 있었다.

 

어머나. 쇼윈도 속의 언니는 바로 나였던가 보다. 나이를 먹으면 형제도 더 닮고 모녀 사이도 더 닮아간다더니. 저 쇼윈도 속의 나는, 예뻤던 언니의 젊은 시절을 훨씬 지나친 늙은 내 언니의 형상을 닮아 있었다.

 

푹 꺼진 눈두덩에 쌍거풀마저 풀려 축 쳐진 눈. 눈꼬리의 주름은 어쩌자고 저리도 선명한고. 더는 바스러질 수가 없을 정도로 빠글거리는 파마머리는 대한민국 할머니들의 심 팔 번 헤어스타일. 팔자주름은 필요치도 않다는데 굳이 만들어 놓은 건 누구의 심술일까.

 

언니는 시방 넘어져서 고관절이 상해, 방안에서만 생활을 하고 있다. 가는 길이 고생스럽고 아이들의 수고를 빌어야 한다는 핑계로 서너 번 다녀 온 것이 고작이다. 다행스럽게도 효자아들과 효부를 두어 내 걱정을 덜고는 있지만.

 

그래도 좀 더 일찍부터 손을 잡고 다니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제주도도 다녀오고 내장사도 다녀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구랄 것도 없이 아이들 키우느라 미루어 왔던 지난날을 후회한다. 되먹지도 않은 소리로 어서 나아서 우리도 손잡고 단풍놀이 가자꾸나 해보지만 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