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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석이 병이 나다


BY 만석 2017-09-27

드디어 만석이 병이 나다

 

‘휴버댐’에서부터 이상하던 몸이 드디어 발병을 했다. 식구들이 알면 걱정을 할까봐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던 몸이 결국 허물어지고 있었다.
‘어쩌나. 모두의 관광을 망치게 되겠구나.’
영악한 막내딸 아이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어깨를 감싸 안고 다그쳤다.
“엄마. 지금 몸 안 좋지요. 그치요?!”
이젠 거짓말은 하지 못하겠다. 고개를 끄덕이며 주저앉고 말았다. 식구들이 달라붙어 부축을 해서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큰딸이 제 딸들과 같이 먹을 것을 구하러 뛰어갔다. 막내딸 아이가 울상이 됐다. 그 뒤는 모르겠다. 나를 부르는 소리가 개미소리처럼 들렸다.
“헤이~! 영 레이디.”
셔틀버스의 운전기사가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졸지에 나는 ‘영 레이디’가 되었던 것이다. 셔틀버스를 타려고 줄을 지어 서있는 관광객을 저지하고 저만큼에 주저앉은 나를 먼저 태울 심산이었나 보다. 정신이 들어서 엉금엉금 기다시피하여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우리는 서로 먼저랄 것도 없이 허리를 굽신거렸다.

 

기사가 보기에도 내가 시원치 않아 보였던 모양이었다. 영어가 유창한 막내딸내외와 대화가 오갔다. 기사는 자기 소지품에서 쿠키와 캬라멜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체면도 없이 마구 털어 입에 넣었다. 먹고 또 먹고 또…. 나는 염치도 없이 기사의 비상식량을 축내고는,
“땡큐~!”만 연발했다.
“아프면 말을 해야지요. 좀 괜찮아졌어요?”막내딸 내외의 걱정 속에 운전기사의 구구한 설명이 이어졌다. 자기도 늘 먹을 것을 준비해 갖고 다닌다고 했다. 큰딸 네가 돌아오자 우리는 ‘그렌드 케니언’의 알짜를 눈앞에서 포기하고,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 하산 할 수밖에 없었다.

 

“나 때문에 구경을 다 못해서 어쩌냐.” 큰딸 네는 예전에 다녀갔다 하니 덜하지만, 막내딸 아이 내외에겐 여간 미안하지가 않았다. 거금을 투자했을 터인데. 여덟 식구의 경비가 날아갔다.
“엄마. 제발 좀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세요. 큰일 날 뻔 했잖아요.”
“우리도 잘 못이지. 뭐 자실 걸 좀 챙겨 왔어야 되는 건데.” 막내 사위의 자책에, 나는 ‘내 죄렸다.’고 후회를 했다. 사단은 별거 아니었다. 떨어진 혈당만 채워주면 되는 것을. 와중에 큰 사위의 직장에서 호출이 왔다. 가능한 한 빠른 방법으로 원대복귀를 하라는 엄명이 떨어졌다 한다. 두 손주딸은 놓친 관광코스가 아쉬워 방방 뛰었다.

 

나도 얼마간의 휴식을 취하고 기운이 회복 되었다. 기운을 차린 어미를 그래도 걱정하는 큰딸 네 식구와는 ‘스타박스’에서 이별을 해야 했다.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아이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서서히 차를 몰아 멀어져 갔다. 이렇게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까. 어디로 가는지 물어볼 정신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헤어졌다. 서울서 5시간만 비행을 해서 오간다면 한 달에 한 번씩은 만날 수 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은 긴 여운을 타고 덩달아 길어만 갔다. 손에 잡고 있던 무엇인가를 놓친 기분이었다. 이미 오래 전에 놓치긴 놓쳤지.

 

 

 

 마가렛님의 요청으로 <그랜드 케니언>의 대형 사진을 올립니다^^

드디어 만석이 병이 나다

 

 

 

드디어 만석이 병이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