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안해요!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이 없어서 깜빡 잊고 있었어요!”
“ 어떻게 그 나이 먹도록 이름 불러 주는 사람 하나 없어요?”
“ 그동안 뭐 하고 살았어요?”
이해할 수 없는 그 눈망울이 얄밉다.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려 더 고통스럽게 한다.
“ 그럴 수도 있는거죠! ”
“ 내가 그렇게 사는데 보테 준거 있어요?”
사이좋게 소꿉놀이를 하던 교복커플이 깜짝 놀라 쳐다본다.
“ 앞으로 내가 열심히 그 예쁜 이름 불러 줄게요!”
“ 윤서후씨!”
“ 대답 안해요!”
“ 다시! 윤서후씨!”
“ 네...!”
“크게 대답 못해요!”
“ 앞으로 밥좀 잘 챙겨 먹고 다녀요!”
“ 네!”
“ 오늘 나랑 데이트합시다!”
“ 네?”
“ 못들었어요?”
“ 나랑 데이트하자니까요!”
“ 편이점은 어떻게 하고요?”
“ 새벽에 일할 아르바이트생 구했어요!”
“ 오늘이 첫날이예요!”
“ 네에!”
“ 우리가 데이트하는 날도 첫날이고요!”
“ 불만 있어요?”
“ 아니오!”
“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 나랑 데이트하는거 싫어요?”
“ 싫으면 말고! ”
“ 저기요! 매니저님!”
“ 네?”
“ 저 아직 대답도 안했고 생각도 해야 되는데 왜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혼자서 마음대로 결정해요?“
“ 그리고, 내 이름 어떻게 안거죠? 혹시 스토커예요?”
“ 네! 스토커 맞아요!”
“ 윤서후씨한테 관심이 아..주 많아서 하나부터 열까지가 다 궁금한
착한 스토커라고 하면 어떨까요?“
“ 데이트 첫날 기념해서 저기 손님 계산하세요!”
교복커플은 십원까지도 반으로 정확하게 나누어 사이좋게 계산한다.
“ 우리가 만약에 대학 가서 만나도 더치페이하기다!”
새끼 손가락을 꼭 걸고 미소짓는 그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현명한 선택이다.
사랑에 눈이 어두워 모든걸 다 주고 싶어도 각자의 처지에 맞게
선택하는 계산법이다.
“ 꽁냥꽁냥 닭살동화 재밌게 잘 읽고 있어요!”
“ 네?”
“ 블로그에 소설 쓰고 있잖아요!”
착한 스토커!
그 어색한 단어의 조합속에 그가 우뚝 서 있다.
“ 스토커가 맞군요!”
“ 네! 맞아요!”
“ 블로그에 소설 쓰는거 아는 사람 별로 없는데요!”
“ 그 별로 없는 사람중에 하나가 여기 있잖아요!”
블로그를 검색해 보여주면서 이웃이자 광팬이라는 걸 보여주는 순간이다.
“ 블로그가 왜 이렇게 썰렁해요?”
“ 예쁜 사진도 많이 찍어서 올리고 꾸며봐요!”
“ 그냥 글만 덩그러니 올려 놓고 알아서 읽으라고 하면 누가 들어와요?”
“ 그냥 내가 하고 싶은 혼잣말 쓰는건데 왜 신경써야 돼요?”
“ 내가 무슨 작가도 아니고 조회수 구걸하고 싶지 않아요!”
그는 테이블을 닦던 걸레를 조용히 내려놓으며 나지막히 속삭인다.
“ 작가 되기에 충분해요!”
“ 충분히 재미있어요!”
“ 왜 그렇게 자존감이 없어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는 그에게 아무 말도 못한다.
‘ 내가 쓴게 그렇게 재밌나?’
“ 자존감? 나한테도 그런게 있었나?‘
‘ 그냥 캔디처럼 달콤하게 들리라고 거짓말 하는거 아니야?’
중얼중얼
혼자서 한참동안 그렇게 혼잣말을 한다.
“ 다 들리거든요! 그냥 큰 소리로 얘기해요!”
“ 재밌는거 맞고요!”
“ 자존감이 너무 죽어 있어요!”
“ 왜 그렇게 자기애가 없어요?”
“ 철학과 나왔어요?”
“ 아니오!”
“ 그럼 심리학?”
“ 아니오!”
“ 그런데, 왜 그렇게 남의 심리에 대해서 탐구하고 정의하려고 해요?”
“ 그걸 몰라서 물어보는거예요?”
“ 네!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 윤서후씨한테 관심있으니까요! ”
“ 원래 그렇게 눈치가 없어요?”
“ 원래 그렇게 둔해요?”
“ 네! 둔하고 눈치없어요!”
대걸레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사랑이 두렵다.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관심이 겁이 난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어!’
‘자기애? 그게 뭐야?’
‘ 그런거 키워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아?’
항상 불만으로 가득찼고 더 나은 모습을 꿈꾸며 살았고 허상속에 살았다.
거울 속에 비친 초라한 모습이 너무 싫어서 벽에 붙은 거울을 떼어 버렸다.
터덜터덜
그냥 발길이 닿는대로 걸음을 옮긴다.
“ 윤서후씨!”
“ 일하다 말고 어디 가요?”
아무것도 듣고싶지 않았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 야! 윤서후! 일하다 말고 어디 가는데?”
숨이 차도록 달려오는 그의 모습을 무시한 채 이어폰을 더 세게 눌러 고막을 막아 버린다.
헉헉!
“ 야! 윤서후! 너 원래 이렇게 무책임해?”
“ 일하다 말고 화가 난다고 나가버리면 어쩌라는 거야?”
“ 짤라요! 짜르면 되는거 아니예요?”
“ 나도 당신같은 스토커 매니저랑 일할 생각 1도 없어요!”
“ 오늘까지 일한거 계산해서 통장에 넣어 주세요!”
“ 너 이렇게 단순한 애였니?”
“ 너처럼 단순한 애가 어떻게 소설을 쓴다는거니?”
“ 단순하니까요! 할줄 아는게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 왜요? 불만이예요?”
“ 착한 스토커? 착한 악마같은 소리하시네!”
“ 전 그런 말도 안되는 엉터리 사고방식을 가진 매니저님이랑 같이 일 못하겠어요! 그러니까 짤라 주세요!”
“ 아니! 안짜를건데?”
“ 매니저 권한으로 계속 일하게 할 거야!”
“ 거절한다면요?”
“ 특별히 휴가 줄게! 푹 쉬고 다시 출근해!”
“ 언제 봤다고 반말이죠? 상사면 직원한테 그렇게 반말해도 되는건가요?”
“ 이것도 갑질이고 차별 아닌가요?”
“ 너한테 관심있으니까!”
“ 우리 사귀기로 한거 아니야?”
“ 오늘이 1일이잖아!”
“ 그 1일 반납할게요!”
“ 아니 취소할래요!”
“ 반품은 안됩니다!”
“ 내 맘인데요!”
“ 나도 내맘인데요?!”
“ 지금 나랑 말장난하자는 거예요?지금?”
“ 아니! 나 그런 유치한 장난 안하는데?”
“ 사귀자고 한 말 다시 담고 싶어!”
“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뭐로 담으려고?”
“ 여아일언도 중천금이야!”
“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지! 왜 그렇게 책임감이 없는거지?”
“ 오늘부로 그딴거 안키울래요!”
돌아서 가는 발걸음이 즐겁다.
처음 시작된 사랑에 아직 금이 가지 않았다.
“ 내일 꼭 출근해야돼!”
일부러 못들은 척 더 빠른 걸음으로 달아난다.
‘ 착한 악마같은 소리하고 있네!’
알콩이와 달콩이는 매일매일 뽀뽀를 하면서 사랑을 확인했어요
사랑해! 쪽!
나도 사랑해! 쪽!
쪽! 쪽!
장단맞춰 소리나게 뽀뽀를 해서 옆집에 다 들릴 정도로 난리가 났어요
옆집에 사는 울퉁불퉁 커플도 뽀뽀를 해요
울퉁이도 쪽!
불퉁이도 쪽!
쪽!쪽!쪽!
쪽쪽쪽!
울퉁이와 불퉁이는 너무 사랑을 해서 미끈매끈 커플로 변해 버렸어요
울퉁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깜짝 놀랐어요
불퉁이가 미끈이로 바뀌어 있는거예요
불퉁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깜짝 놀랐어요
울퉁이가 매끈이로 바뀌어 있는 거예요
‘ 친구야! 나 이대로 사랑해도 되는거니?’
‘ 그냥 한 번 지는 척 하고 받아 줄까?’
‘ 그 사람이 처음 내 이름을 불러줬어!’
‘ 처음에 윤서후! 그러는데 다른 사람 부르는 줄 알고 두리번거렸다니까!’
‘ 어쩌다가 내 이름도 잊어버리고 살았던 걸까?’
‘ 나 참 한심하지?’
‘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
‘ 그러고 보면 넌 참 행복한 애구나! 내가 매일 네 이름 불러 주잖아!’
‘안그래?’
친구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지는 것 같다.
“ 나보다 행복한 털이 뽀송뽀송한 곰인형 친구를 위해!”
“ 건배!”
“ 윤서후! ”
“ 윤서후! ”
이름을 잊어버릴까봐 수없이 부르고 부르고 또 불러 본다.
그 사람이 불러 주는 이름이 그립다.
귓가에 살며시 다가와 스며드는 그 정겨운 목소리에 중독되어 버렸다.
‘윤서후!’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