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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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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이와 달콩이


BY 러브레터 2017-09-24


 

알콩이와 달콩이

 

 

어서 오세요!”

 

편의점 문을 열자마자 인사를 하는 정다운 목소리가 들린다.

며칠 전 새로 온 그 직원이 환하게 웃으면서 기다렸다는 표정으로 손을 흔든다.

테이블마다 북적대던 시간은 지나고 잠시 쉬어 가려는 듯

침묵이 흐르는 시간이다.

커피 한 잔을 계산하고 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내다 본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달콤한 사랑에 취해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나무에 기대어 진한 애정영화를 찍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참지 못하고 땀띠가 나는것도 모른 채 부등켜 안고 있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분을 견디지 못해 소리를 지르는 여자,

헤어지자고 하는 여자를 붙잡고 싶어 팔을 잡고 한참동안 놓아주지 않는 남자,

여러 편의 로맨스 영화들이 동시상영되는 길거리 극장에서 펼쳐지고 있다.

홧김에 잡아 타고 가는 택시를 향해 달려가 가로 막는 남자가 위험해 보인다.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경적소리도 무시한 채 택시문을 두들기며 달려가고 있다.

죽음을 각오할 만큼 사랑했던 걸까?

불빛에 반사되는 반지가 그 사랑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말해 주고 있다.

택시를 타고 가던 여자는 반지를 빼 한강변을 향해 던져 버린다.

억지로 끝난 사랑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남자는 머리를 부여잡고

악을 쓰며 한참동안 울부짖는다.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는 바로 문앞에서 보란 듯이 달콤한 키스를

쉴 새 없이 해대는 징그러운 커플도 있다.

한 번 붙어 버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핸드폰 타이머를 켜고 시간을 재보았다.

십분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만 하라고 문을 두들기려다가 꾹 참고 주먹을 쥔다.

 

징그러운 바퀴벌레 한쌍이네!’

눈꼴 시려서 못봐 주겠네! 정말!’

 

중얼중얼

하마터면 큰 소리로 이야기할뻔 한 걸 꾹 눌러 참는다.

부글부글 속이 끓어 오른다.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 뒤를 돌아 보니 직원 오빠가 환하게 웃고 있다.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생겼다는 듯 점점 더 큰 소리로 웃어댄다.

 

키스 한 번도 안해 봤어요?”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화를 내고 그래요?”

요즘 애들 다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면 되는걸 너무 오버하시네!”

 

얼굴이 닳아 오른다.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치즈가 든 육포를 물어 뜯으면서 화를 삭였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아직도 웃고 있는 직원 오빠에게 화풀이를 하고 만다.

 

일 안해요?”

남이사 화를 내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예요?”

 

재밌잖아요!”

귀여워요!”

 

뭐가 귀엽다는 거죠?”

 

그렇게 화내고 있는게 귀여워요!”

 

별꼴을 다 본다.

홧김에 물어 뜯던 육포를 집어 던졌다.

청소를 하던 대걸레 사이에 딱 걸려 버리고 만다.

 

왜 아까운 육포한테 화풀이를 하고 그래요?”

 

내 맘이거든요!”

 

미안하다고 안해요?”

 

손님한테 대하는 태도가 그게 뭐예요?”

실수로 떨어뜨릴 수도 있는거 가지고 왜 시비 걸고 난리예요?”

여기 건물주가 사장이라고 하던데 나오라고 해요!”

 

십년 묵은 화풀이를 왕창 쏟아내는 중이다.

그는 소리내서 한참동안 또 웃기 시작한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가 않다.

 

나랑 사귈래요?”

여기 건물주 애인이랑 헤어져서 여행 갔어요!”

한 번 여행 가면 일년은 걸리니까 아마 올해 안올거예요!”

 

바로 앞 테이블에서 꿀 떨어지는 사랑을 속삭이던 바퀴벌레 한쌍이

 헤어졌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그냥 알바생 아니라 매니저로 온거예요!”

여기 건물주랑 친구거든요!”
여행 가기전에 부탁 받고 어제부터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 녀석 아무도 못찾는 시골 오지마을만 여행해서 연락도 안될거예요!”

 

그거랑 나한테 사귀자고 하는거랑 무슨 관계죠?”

난 아직 대답도 안했는데요!”

 

처음이다.

이런 떨림

이런 감정

누군가가 먼저 사랑을 속삭이며 손을 내밀어 준 적이 없었다.

두근두근

설레인다.

죽어 있던 연애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다.

포기했던 그 연애세포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는 순간이다.

되살아난 연애세포

성큼성큼 다가와 온몸을 설레이게 한다.

이제 슬픈 사랑 안녕인 걸까?

 

나랑 사귈래요?’

 

바람에 실려 귓가에 울려 퍼진다.

아픈 사랑 이제 안녕인 걸까?

텅 빈 냉장고에 편의점에서 산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할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정말 사랑을 시작해도 되는걸까?

친구가 앉은 테이블 앞에 캔맥주를 올려 놓고 건배를 한다.

멍하니 앉아 있던 곰인형 친구가 환하게 웃고 있는 듯 느껴진다.

 

나 다시 사랑해도 되는걸까?”

그냥 사귄다고 대답하면 되는거야?”

이런 감정 처음이라 참 많이 어색하다!”

어떻게 대답하면 되는거야?”

그래! 우리 사귀어요! 라고 하면 되는거니?”

아니면 또 물어볼때까지 기다릴까?”

 

맥주가 달다.

친구와 마주치는 캔맥주의 느낌이 좋다.

별이 유난히 반짝이는 아름다운 밤이다.

불 꺼진 전봇대에 기대어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이 얄밉지 않다.

그 사랑 영원하라고 축복을 내린다.

곧 그 사랑이 시작될 그 날을 꿈만 꾸어도 달콤하다.

 

 

옛날옛날에 알콩이와 달콩이가 살았어요

알콩이와 달콩이는 둘이 너무 사랑해서 매일 깨를 볶았죠

깨를 볶는 냄새가 너무 고소해서 온 마을에 소문이 날 정도였어요

방앗간에서 볶는 깨보다 고소해서 사람들이 매일 모여들었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깨를 볶는 냄새가 고소한지 비법을 물어 보았죠

그래서, 알콩이와 달콩이는 두 손을 꼬옥 잡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있게 말했죠

 

우리처럼 사랑하면 된답니다!”

매일 싸우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사세요!”

선물을 할때도 공치사하지 않고요

맛있는 걸 먹으러 갈때도 서로가 먹고 싶어하는 걸 번갈아가면서 먹으면

싸우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답니다!

예를 들어 하루는 알콩이가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고 하면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면 되고요

하루는 달콩이가 떡볶이를 먹고 싶다고 하면

떡볶이를 먹으러 가면 되는거죠

하루는 알콩이가 영화를 보러 가고 싶다고 하면

영화를 보러 가면 되고요

하루는 달콩이가 놀이동산에 가자고 하면

놀이동산에 가면 되는거예요!

서로 좋아하는 걸 한 번씩 양보하면서 만나면 싸우지 않아도 돼요!

매일 한 번씩 사랑한다고 말해 보세요!

눈을 마주보면서 힘들면 뭐가 힘든지 이야기하고

재미있으면 어떤게 재밌는지 이야기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술잔을 마주치면서

이야기해 보세요!

그러면 알콩이와 달콩이처럼 고소한 깨를 볶는 냄새가 진동한답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받아 적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어요

어제 부부싸움을 한 옆집 노부부네 집에서 깨를 볶아요

방금전에 헤어지자고 싸우고 난리를 치던 커플이 깨를 볶아요

방앗간에 깨를 볶으러 오는 손님이 줄어들어 사장님이 울상이예요

그래도 동네마다 행복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답니다.

내일도 오늘처럼 깨 볶는 고소한 냄새가 났으면 좋겠어요

너무 오래 볶아서 탈까봐 걱정된다고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리 오래 볶아도 절대로 타지 않고

볶으면 볶을수록 고소함이 깊어 오래 가는 마법을 지닌 신비한 깨랍니다.

 

두근두근

심장이 뛴다.

해신이의 건물에는 매일 남자들이 찾아와 난동을 부린다.

헤어샵에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는것도 무시한 채 의자에 앉아 돈을 줄때까지

버티고 있다. 불쌍한 척 억울한 척 연기를 하며

사진을 찍어 올리는 치사한 남자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컷트를 애써 완성해 놓으면 일부러 트집을 잡아 신고를 하겠다고 난동을 부려

애를 먹는 모습이 애처롭다.

그 인간이 짐을 뺀 옥탑방에는 이미 버티기 작전이 시작되었다.

헤어샵에 칼을 들고 찾아와 위협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자 경찰차까지 출동했다.

그 인간은 입구에서 기자들을 막느라 진땀을 뺀다.

누근가를 위해 온몸을 던져 희생해 본 적이 없는 종자가

해신이를 위해 변해가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할때가 온 것 같다.

새로운 사랑을 하기 위해

지나간 사랑을 양보하고

새로운 사랑을 하기 위해

지나간 사랑의 새로운 사랑을 축복해 준다.

해신이는 건물을 급하게 팔고 이사를 했다.

해신이에게 댓가를 바라고 사랑하던 지나간 남자들은 은팔찌를 선물받았다.

 

 

그동안 미안했어

나쁜 놈한테 보상받는다고 생각하고 받아 주길 바랄게

해신이랑 떠날거야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이야!

축하해 줬으면 좋겠어

너도 행복한 사랑하길 바랄게

안녕!

 

통장에 입금되었다는 알림문자벨이 울린다.

못된 사랑에 아파하던 지난 시간에 대한 댓가가 거하게 치러진다.

 

 

알콩이와 달콩이는 오늘은 깨를 조금밖에 볶지 못했어요

달콩이가 사랑을 의심했거든요

알콩이가 예전에 사랑하던 사람을 잊지 못해서 울고 있는 걸 봤어요

달콩이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알콩이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알콩이한테 배신당한 것 같은 생각에 속이 상했어요

알콩이한테 이용당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분하기도 했어요

달콩이는 울고 있는 알콩이를 이해하려고 애를 썼어요

알콩이가 없는 달콩이는 생각할 수가 없었거든요

달콩이도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어요

하지만, 알콩이를 만나면서 가슴에 묻어 두기로 했어요

가끔 생각이 났지만 너무 그리워 하는 건 알콩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만큼 알콩이를 더 많이 사랑하려고 노력했어요.

 달콩이는 알콩이만큼 사랑하지 않았나 봐요

그래서, 헤어지려고도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깨 볶는 냄새가 고소하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알콩이와 달콩이는 서로가 없는 하루를 상상해 봤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알콩이 옆에 달콩이가 없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달콩이 옆에 알콩이가 없어요

알콩이는 너무 허전해서 눈물을 흘렸어요

달콩이는 너무 허전해서 눈물을 흘렸어요

아침햇살을 맞이하는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알콩이 옆에 달콩이가 없어요

달콩이 옆에 알콩이가 없어요

알콩이는 비어 있는 달콩이 커피잔을 바라보면서 슬퍼졌어요

달콩이는 비어 있는 알콩이 커피잔을 바라보면서 슬퍼졌어요

매일 습관처럼 샌드위치를 구우려고 하는데

알콩이 옆에 달콩이가 없어요

달콩이 옆에 알콩이가 없어요

갑자기 샌드위치를 먹기가 싫어졌어요

혼자 먹는 샌드위치는 맛이 없어요

마주앉아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어요

알콩이는 달콩이 없이 살 수가 없어요

달콩이는 알콩이 없이 살 수가 없어요

알콩이는 달콩이를 너무 사랑해요

달콩이는 알콩이를 너무 사랑해요

둘이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다시 알콩이와 달콩이 집앞에는 깨 볶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