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만인에게 공평하지 않다.
고소한 순간을 오래 즐길 수 있는 행운은 저만치 비껴가고 만다.
원피스를 사지 못해 금방이라도 죽을것처럼 난리를 치던 해신이가
금세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걸어 놓고 자랑질을 늘어 놓는다.
오빠와 나는 텔레파시가 통했던걸까?
우리는 신이 내린 천생연분이다.
‘웃기고 누워 있구만!’
욕을 한바탕 퍼붓고 싶어도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라!
수없이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에도 손가락에 힘을 주어 삭제버튼을 세차게 누르고 또 눌러 버린다. 눈을 질끈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는 순간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린다. 아무리 저주를 퍼부어도 저것들의 사랑에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주체를 못하고 있다.
사랑하는 내 자기가 내 마음속에 쏙 들어가 버렸다.
너무너무 갖고 싶은 원피스를 내 자기가 사주었다.
내 자기가 사 준 너무너무 이쁜 원피스!
자기가 모델이라 도 된것처럼 착각을 하고 온갖 폼을 잡고 찍은 셀카로 도배를 한다. 그 밑에 그 인간이 써 놓은 구역질나는 답글이 더 힘들게 다가온다.
세상에서 네가 제일 이쁜 자기!
아무래도 그 옷은 자기를 위해서 하늘이 내린 선물인 것 같아!
우웩!
아까 먹은 땅콩의 고소함은 사라지고 쓴 물이 올라온다.
자기야! 너무너무 고마워!
그리고 너무너무 사랑해!
원피스가 이쁘고 잘 어울린다는 답글들이 주르륵 올라온다.
해신이 노트북이 고장나서 속상하다.
너무 열심히 일을 해서 노트북이 병이 난 것 같다.
내일 제일 좋은 걸로 선물해야겠다.
해신이가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다.
원피스를 너무 마음에 들어해서 기분이 좋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천사를 보는 것 같았다.
정말, 너무 잘 어울린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한없이 주고 싶은 사랑은 처음이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것 같다.
한없이 주고 싶은 사랑,
왜 그 사랑이 해신이어야만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깨지라고 저주를 퍼부어도
절대로 깨지지 않을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친구는 의자에 얼음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다.
외롭게 술잔을 기울이는 이 순간이 슬프다.
‘왜 그 주고싶은 사랑이 내가 될 수는 없었던걸까?’
수없이 질문을 던져도 공허한 메아리만 방안 가득 울려 퍼진다.
“ 네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하...! 사랑이 이렇게 힘든거니?”
“ 사랑이 이렇게 잊기 힘든거니?”
털이 뽀송뽀송하게 뒤덮힌 친구의 팔을 부여잡고 엉엉 울어 버린다.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바보처럼 흐느끼며
수없이 질문을 던진다.
“ 네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넌 사랑이 뭔줄 아니?”
“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친구의 플라스틱 눈망울이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아무 감정이 없는 곰인형이 부럽다.
“ 부셔 버리고 저주하고 싶은 사랑이 더 단단해지는 걸 그냥 지켜봐야 하는걸까? 그 인간이 저렇게 행복하게 웃고 있는걸 바보처럼 보고만 있어야 하는거니? 왜? 왜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건데? 왜?”
털로 뒤덮혀 푹신푹신한 친구의 팔뚝위에 눈물이 가득 흘러 내린다.
벌컥벌컥 목줄기에 들이붓는 맥주가 서럽게 느껴진다.
활짝 웃으며 샴페인잔을 부딪치는 그 인간의 모습이 아프게 스쳐간다.
“ 왜 내가 하는 사랑은 아파야만 하는걸까?”
“ 아프지 않은 사랑은 의미가 없었던걸까?”
옆집에서 까르르 웃음소리가 진동을 한다.
새로 이사온 신혼부부는 날마다 깨를 볶는다.
문앞을 지나갔을뿐인데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벽을 뚫고 고막을 울리는 옆집 신혼부부의 달콤한 속삭임들이 소음보다 더 힘들게 한다. 누구의 사랑이라 해도 저주를 퍼붓고 싶다.
외롭게 맞이하는 아침햇살이 고통스럽다.
아직 덜 깬 술기운이 머릿속을 후벼파며 요동치고 괴롭힌다.
커텐사이 모닝키스를 나누는 꿀 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비친다.
해신이와 그 인간의 그런 아침을 상상하는게 힘이 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