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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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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한 사랑을 원했어 8


BY 러브레터 2017-09-14

맥주가 쓰다.

먹다 만 맥주를 마셔서가 아니라

그인간을 위해 희생된 지난 시간이 아깝고

저주스러워 독약을 마시는 듯 벌을 받는 기분이다.

역시나 그 인간에게 답장은 없다.

그럼 그렇지

그나마 사귄다고 말할 수 있었을때도 관심없던 인간이

갑자기 답장을 보낼 리가 없다.

 그래도 악착같이 카드값을 받아내야 이번달을 넘길 수 있다.

다시 전송버튼을 누른다.

답장이 올때까지 굳세게 전송버튼을 누른다.

바퀴벌레 한쌍이 남기고 간 캔맥주가

혹시 나를 위한 만찬은 아니었는지 궁금해진다.

직원오빠는 안주로 먹으라고 하면서 육포 하나를 살포시 올려놓고 간다.

참 착한 사람이다.

누구한테 무언가를 받아 본다는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정에 굶주려 허우적대는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진다.

냉장고에서 군침만 흘리고 쳐다만 보던 수입맥주를 처음으로 실컷 마셔본다.

어느새 편의점 노숙자가 된 기분이다.

육포를 하나 꺼내 어금니로 세차게 물어 뜯었다.

못되 먹은 그 인간을 생각하면서 분풀이하는 심정으로 질겅질겅 씹어댔다.

오늘 처음 먹어 보는 육포가 참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게 있는줄도 모르고

오로지 그 인간이 먹고 싶다고 하는것들만 열심히 사다가 바쳤다.

카드대금 독촉문자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여전히 그 인간에게는 답장이 없다.

다시 전송버튼을 누른다.

답장이 올때까지 꿋꿋하게 손가락은 전송버튼을 누를 것이다.

여전히 핸드폰 문자는 말이 없다.

맥주 한모금을 들이키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제 한 시간 후면 은행은 문을 닫고 카드는 구멍이 난다.

 

캔맥주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입안 가득 채운다.

은행문 닫기 삼십분 전

드디어 신용불량자가 되는구나!

심장박동 소리가 요동을 친다.

두근두근!

그 인간을 사랑한 댓가가 이토록 잔인하고 혹독하단 말인가!

어금니가 부서지도록 육포를 물어 뜯고 질겅질겅 씹었다.

사랑의 댓가는 쓰고도 괴로운데

육포는 왜 이렇게 달고 맛있는걸까?

꿀 떨어지는 바퀴벌레 한쌍이 남기고 간 바이러스에 감염된걸까?

드르륵!

침묵을 깨고 핸드폰 문자벨이 울린다.

그 인간이다.

보낼게!

 

딸랑 세 글자가 끝이다.

미안하다는 말도, 잘 지내냐는 말도 없다.

은행 입금소식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려 퍼진다.

카드값을 내고도 남을만큼의 금액이 찍혀 있었다.

덕분에 신용불량자는 안되었지만,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돈을 뜯어 내지못해 환장한 여자로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이다.

그 인간 만나면서 제대로 된 선물 하나 받아 보지 못했다.

그런 인간이 군소리 없이 돈을 보냈다는게 믿어지지 않는다.

고시원에서 공부할때는 컵밥 하나도 제대로 사 먹을 돈이 없던 그 인간이었다.

과외비가 도대체 얼마길래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돈을 보낸걸까?

그동안 서럽게 지낸 시간에 대한 보상금이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자꾸만 걱정이 된다.

매일 해신이랑 꿀 떨어지는 사랑놀이에 신이 난 그 인간이 미워서 병이 날

지경이면서도 미련은 버리지 못한다.

바라보기만 하고 군침만 흘리던 와인 한 병을 집어 들었다.

와인병 위에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와인을 딸줄 모른다고 구박을 하던 그 인간 얼굴이 떠오른다.

아무리 코르크 마개 안으로 마개를 집어 넣어도 열리지 않아 애를 먹었었다.

코르크 마개가 아닌 소주병 마개처럼 편하게 된

와인병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맥주를 많이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다.

와인을 계산하면서 직원오빠는 치즈랑 같이 먹는거라고 가르쳐 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치즈를 참 싫어했다.

아무리 맛있게 먹으려고 해도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러 구역질이 난다.

안주는 역시 육포랑 견과류가 최고다.

땅콩캔을 하나 집어 들고 와 같이 계산했다.

처음으로 여유로운 술잔을 즐겨 본다.

투명한 컵에 담긴 보랏빛 액체가 달콤하고 감미롭다.

마실때마다 입안 가득 느껴지는 부드러움에 자꾸 끌린다.

그 인간한테 카드값 갚아 줘서 고맙다고 답장을 보내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

당연히 받을 걸 받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sns 에 고급 음식점에서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다.

둘이 끌어 안고 샴페인잔을 부딪치며 활짝 웃고 있다.

해신이와 온 스테이크가 맛있는 집

육질이 부드럽고 입에서 살살 녹는다.

해신이가 와인보다 샴페인을 더 좋아해서 주문했다.

 

스테이크가 참 맛있어 보인다.

어느새 입안 가득 침이 고여 버린다.

며칠 전 티비에 나와 며칠 전부터 예약을 해야 겨우 먹을 수 있다는

 그 스테이크를 저것들이 맛나게 먹고 있다.

어디에 있는 맛집인지 검색을 하고 전화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도대체 저 인간은 어떻게 예약을 한 걸까?

아무리 맛있는 거라도 예약을 하고 줄을 서서 먹는 걸

한심하게 생각하던 인간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정말 저것들이 사랑이란걸 하고 있는걸까?

그 인간한테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감정이 존재하고 있는걸까?

수많은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정말 사랑하면 어떻게 하지?

차라리 해신이가 평소처럼 하던대로 가지고 놀다가 버렸으면 좋겠다.

그런데, 해신이도 갑자기 변한 것 같다.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던데

 저것들이 죽을때가 다 돼서 그런걸까?

매일 sns를 훔펴 보면서 불안한 생각들이 엄습해 온다.

그 인간이 해신이 때문에 웃는게 싫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그렇게 활짝 웃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선물 하나 할 줄 모르던 인간이 툭 하면 해신이한테 선물을 한다.

 

우리 서로 사랑하는 사이예요!

 

빛나는 다이아가 박힌 커플링을 손가락에 끼고 찍은 사진을 올려 놓았다.

그것도 둘이 손을 꼭 잡고 말이다.

 

 

 

웃기고 있네!’

사랑이 장난인 줄 아니?’

그 사랑 언제까지 가는지 어디 두고 보자!’

라고 답글을 달려다가 지우기 버튼을 누른다.

언제나 답글달기는 타자연습에서 끝나고 만다.

물건도 사람도 지겨운 걸 못참는 해신이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

해신이 sns에도 똑같은 사진이 떡 하니 걸려 있다.

 

우리 사랑 이대로 계속 되게 해 주세요!

 

웃기고 있네! 네가 사랑이 뭔지나 알아!’

 

오늘 커플링을 하나씩 나눠 끼었다.

처음으로 오래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너한테도 그런 사람이 생겼다고? 웃기고 있네!’

언제 깨지는지 날짜 세어 볼거야!’

 

심술이 나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하마터면 전송버튼을 누를 뻔 했다.

이것들이 스테이크 먹은게 잘못 된건가?

안하던 짓을 너무 많이 하니까 적응이 안된다.

저것들이 사랑 어쩌구 하는게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 인간 sns 에 커플링도 모자라

커플 팔찌를 두른 팔목을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다.

미친 짓도 참 골고루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