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뿌연 안개처럼 눈앞을 가렸다.
이대로 무거운 짐을 안겨주는게 죄스러울뿐이었다.
못난 자신으로 인해 힘들게 살아온 상덕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상덕은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희서를 잊기위해 만난 하순이었다.
차마 두 사람이 동복남매란걸 털어놓을 수 없어 한참동안 괴로워했다.
너무도 행복해하는 그녀에게 아픔을 안겨줄 수는 없었다.
그녀를 잊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에 하순을 사랑한건 잘못한 일이었다.
그렇게 선택한 하순을 가슴 깊이 사랑할줄은 몰랐다.
그런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금의 사랑이 가식적인 사랑이 아니란걸 깨달았다.
희서의 행복을 위해 희철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지금 이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다.
희서를 향해 흐르던 가슴이 새로운 사랑을 향해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남아있는 사랑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조금씩 지워간다 해도 완전히 잊혀지기는 힘들것 같았다.
지금 선택한 사랑을 위해 억지로 지워보려 애를 쓰는중이다.
소중하게 간직될 사랑은 희서가 아닌 그녀란걸 깨달으면서...
“엄마!지금 어디 가는거야?”
“우리가 살 집에..”
“이제 깡패 아저씨들이 안괴롭히는거야?”
“응!”
“그럼 나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는거야?”
“그래!”
“야!신난다!”
힘들게 살아온 그녀의 지난 시간들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아저씨랑 발 쭉 뻗고 살거야!”
“아저씨 누군데?”
“엄마 납치하는거 아니지?”
“엄마 돈 없다고 때리는거 아니지?”
민아는 겁먹은 표정으로 울먹이며 말했다.
상덕은 목이 메어 하마터면 운전대를 놓칠뻔했다.
차는 간신히 집앞에 멈춰섰다.
상덕은 한참동안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차마 상처받은 어린 민아를 바라볼 수 없었다.
“엄마 납치하는거 아니야?”
“걱정 안해도 돼!”
“엄마랑 민아랑 보호해 주려고 데리고 온거야!”
희철은 울먹이는 민아를 달래느라 애를 썼다.
상덕은 민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먹였다.
“아저씨 믿어도 돼?”
“민아랑 엄마랑 셋이서 행복하게 살거야!”
“정말이야?”
“믿어도 돼?”
“응!”
상덕은 희철에게 열쇠를 건네며 말했다.
“민아 배고플텐데 밥좀 해서 먹여라!”
희철은 민아를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침식사 준비는 이미 다 되어 있었다.
국을 데우고 아침상을 차렸다.
민아는 졸린 눈을 비비며 하품을 했다.
“손 씻고 밥 먹어!”
“나 졸려!”
“밥 먹고 코..하자!”
희철은 김에 싸서 먹기좋게 잘라 민아의 입속에 넣어 주었다.
민아는 꾸벅꾸벅 졸면서도 잘 받아 먹었다.
밥을 다 먹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희철은 설겆이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야채를 내리려고 차문을 열다가 그냥 닫아버렸다.
상덕과 하순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왜 그렇게 살았냐?”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지”
“왜 날 바보로 만들어?”
“이제는 그렇게 힘들게 살지마!”
“아니!내가 그렇게 못살게 할거야!”
상덕은 하순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녀의 야윈 모습이 아프게 다가왔다.
무심하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원망스러웠다.
차문을 열고 가득 실린 채소들을 방앗간으로 옮겨 놓았다.
팔리지않아 누렇게 변해버린 채소들은 따로 모아놓았다.
희철은 시금치를 다듬어 커다란 양푼에 담아 깨끗이 씻었다.
큰 바구니에 담아 물기를 뻈다.
시금치를 삶아 찬 물에 행구어 믹서에 곱게 갈았다.
떡시루에 쌀가루와 잘 버무려 골고루 펴서 담아 찜통에 얹었다.
희철이 기획안으로 만들어놓은 채소들이 거의 다 있었다.
복분자를 발견하고는 기쁜 마음에 번쩍 들어올렸다.
“복분자도 있었네!”
“그거 오빠 주려고 산건데!”
하순은 상덕을 째려보며 투덜거렸다.
“내가 복분자술 사줄게요!”
“사는거랑 담그는거랑 같나요?“
“다음에 사서 맛있게 담가주면 되잖아요!”
“그거 산에서 직접 딴건데!”
상덕은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을 지켜보는게 재미있었다.
“꼭 부부싸움하는것 같다!”
“복분자술 안먹어도 정력 세니까 걱정하지마!”
짖궂은 미소를 지으며 하순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붉어진 하순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 정력까지 희생하면서 양보한거야!”
“꼭 성공해서 갚아라!”
상덕은 희철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북분자 색깔이 곱게 물든 가래떡이 먹음직스러웠다.
시금치의 초록색이 곱게 스며든 가래떡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카메라에 아름다운 떡의 향연을 가득 담았다.
하순은 김치거리를 다듬었다.
김치를 좋아하는 상덕을 위해 담근다는게 행복했다.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번졌다.
무가 많이 남아 동치미도 담갔다.
"동치미 좋아하는걸 어떻게 아셨을까?"
희철은 반색하며 물었다.
"먹고싶으면 마누라한테 담가달라고 하세요!"
희철은 마누라라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희서가 마누라가 된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그녀는 인터넷과 책을 찾으며 메뉴판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뭔가 색다른 메뉴를 만들고 싶었다.
검색을 하다가 궁중 떡볶이가 눈에 띄었다.
희서는 여러 종류의 떡볶이를 찾아보며 신기하기만 했다.
희철에게 전화를 걸어 떡볶이를 만들 떡을 가져오게 했다.
"오는 길에 낙지도 사와!"
"낙지는 왜?"
"낙지 떡볶이 만들어 보려고!"
희철은 떡을 썰어 밀폐용기에 담았다.
수산시장은 장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희철은 낙지 가격표를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희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낙지가 너무 비싸다!"
“일단 한 마리만 사와봐!"
"한 마리는 안팔아!"
지갑을 여는 손이 파르르 떨려왔다.
이렇게 비싼걸 사먹을 사람이 있을지 걱정이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희서는 떡볶이 재료 준비에 한창이었다.
여러 색깔의 떡을 보는순간 황홀해졌다.
한참동안 떡을 감상하면서 행복해했다.
떡을 먹기좋은 크기로 썰어 물에 불려 놓았다.
희철이 올때까지 인터넷으로 떡볶이 메뉴를 검색하며 연구하고 있었다.
벨이 울렸다
검은 봉지에 낙지를 손에 들고 희철이 서 있었다.
문을 열자 봉지를 들어 올리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다 놓을까?"
"씽크대에 놔!"
봉지안에서 낙지들이 꿈틀대며 발악을 하고 있었다.
희서는 낙지를 손질하는게 문제였다.
꿈틀대는 낙지를 보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희철은 웃음을 참으려 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겁에 질린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내가 손질해 줄게!"
"비켜봐!"
팔을 걷어부치고 앞치마를 둘렀다.
"소금 어디 있니?"
"저....기!"
그녀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금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소금을 꺼내 낙지를 깨끗히 문질러 손질했다.
냄비에 달라붙은 낙지조각을 보고는 그녀가 기절을 했다.
희철은 깜짝 놀라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괜찮아?"
"낙지가 너무 무서워!"
"어떻게 토막내도 움직일 수가 있어?"
그녀의 철없는 표정에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했다.
침대에 눕히고 낙지 떡볶이를 맛있게 만들었다.
"냄새는 기가 막힌데!"
그는 어이가 없었다.
산낙지를 보고 기절한 사람이 맞나 싶었다.
"아직 다 되려면 멀었어?"
"낙지 보고 기절한 사람 맞니?"
"응!왜?"
"기절했던 사람이 어떻게 먹을 생각을 했을까?"
"아깐 살아 있는거고 저건 익은거잖아!"
희철은 할 말을 잃었다.
갑자기 내숭을 떤 그녀가 얄미워졌다.
오색찬란한 떡과 어우러진 낙지가 먹음직스러웠다.
생각보다 맛있게 만들어져 흐믓했다.
접시에 예쁘게 담고 카메라에 담았다.
군침을 삼키고 기다리는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희서는 금새 접시를 말끔히 비워버렸다.
포크에 남아있는 양념까지 다 핱아먹고 나서야 접시에 내려놓았다.
희서는 너무 배부른 나머지 트림을 해버렸다.
"꺼억..."
희철은 기가 막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맛있냐?"
"응!"
"너무 맛있어!"
희서는 아직도 더 먹고싶은지 입맛을 다셨다.
"살아 있을때는 징그럽고 죽어 있을때는 맛있니?"
"응!"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식집을 하려면 맛을 음미하고 분석하면서 먹어야지!"
"그냥 맛있다고 무조건 먹기만 하면 어떡하니?"
"색깔은 잘 어우러지는지.."
"낙지와 떡의 맛이 조화를 이루는지..."
"하나하나 따져보면서 맛을 음미해야지!"
희철은 그녀를 심하게 나무랐다.
한참동안 고개를 숙이고 시무룩해진 그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맛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분석하면서 먹을테니까 다시 한 번 해줄래?"
"응?"
"응?"
그의 대답이 나올때까지 계속 졸라댔다.
희철은 어이없고 기가 막히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조르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장사를 하려면 여러 번 연습해야지!"
"내가 졌소이다!"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