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02

달달한 사랑을 원했어 5


BY 러브레터 2017-09-11

 

드르륵

현관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문자벨이 울린다.

혹시나 팀장이 보낸 문자가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에 확인버튼을 누른다.

 

고객님의 이번달 카드미납금이 있으니 오늘까지 입금 부탁드립니다

 

또 카드대금을 내지 못했다.

카드 세 개로 돌려 막기를 하는것도 이젠 지친다.

마이너스 통장대출을 신청했지만 외면당하고 말았다.

중고 사이트에 내놓은 물건들은 아직도 사겠다고 연락을 하는 사람이 없다.

 

집에 있는 멀쩡한 살림살이들은 오직 카드값을 내기 위한 희생양으로

전락해 버린지 오래전이다.

그 인간한테 주려다가 만 커피머신을 오늘 내놓아야 할 것 같다.

그것도 카드 할부로 산 탓에 아직도 갚고 있는 중이다.

서랍 가득 그 인간을 위해 준비한 선물들이 한가득이다.

다 전해주기도 전에 이렇게 무참하게 깨져 버렸다.

이리저리 돌려 막기도 힘들어진 지금, 차라리 헤어진게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자존심 다 상해 가면서 억지로 이어진 사랑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 보다 낫다는 슬픈 생각이 든다.

오늘 어떻게 해서든 회사에서 잘리지 말아야 한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달려갔지만, 이미 출근시간을 한 시간이나 넘어 버렸다.

회의가 한참 시작되던 늦은 시간 팀장은 잠아 먹을 듯이 노려 보면서 개망신을 주었다.

무릎을 꿇고서라도 빌고 싶었지만, 이미 해고되기로 결정된 직원 리스트에

 떡 하니 올라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렇게 꿈꾸던 정규직은 물건너 가 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책상 위에 해맑게 웃고 있는 그 인간의 사진이 놓여 있다.

치워 버린다고 속으로 수없이 다짐을 하면서도 고집스러운 미련 때문에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

우산도 없이 터벅터벅 비 내리는 거리를 걷는다.

이른 아침 헐레벌떡 뛰어와 겨우 한 끼를 떼우던 컵밥집앞에

길게 줄을 선 모습이 부럽게 느껴진다.

먼지만 가득한 지갑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공무원이 되리라는 부푼 희망을 가득 안고 공부하던 고시원 생활이 그립다.

이미 오래전 바람 빠진 희망이 되어 버렸지만,

잠들었던 시든 미련이 고개를 빼꼼 내민다.

 몇 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합격의 꿈을 안고 공부에 매달리는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해 전화를 걸어 보지만,

수업중이라는 메시지만 남길뿐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들의 열정에 숟가락을 살포시 얹고 싶다.

자주 들르는 편의점 커피머신에서 천원짜리 커피를 뽑아 들고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바깥풍경을 바라본다.

오늘따라 쓰디쓴 커피맛에 진한 동질감이 느껴진다.

바보처럼 사랑한 댓가가 너무 처참하다.

비참하게 만들어 버린 그 인간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그러면서도 핸드폰을 집어든 손가락은 그 인간의 sns를 검색하고 있다.

오늘도 여전히 그 인간은 해신이의 꿀 떨어지는 사랑은 계속 되고 있다.

그 인간이 인생을 걸고 공부하던 공무원 시험을 그만두기로 한건 엄청난 사건이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나올 정도로 고집이 센 인간이 이렇게 쉽게 변할 리가 없다.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사랑 때문에 그 인간이 변할 줄은 몰랐다.

 

집앞에서 매일 만나는 폐지 줍는 할머니께 미리 정리해 놓은 책들을 드렸다.

재활용 쓰레기로 버리는 것 보다는 보람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느새 수레 가득 찬 책들을 보면서 미소짓는 할머니께 시원한 식혜를 사드렸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할머니도 손주한테 맛있는거 사준다고 새벽부터 폐지를 주우러 다니셨다.

그렇게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허리가 아파도 병원 한 번 못가보신 할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공무원 시험에 빨리 붙어 편하게 모시고 싶었지만, 언제나 행운은 빗나갔다.

시험날 돌아가셔서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어차피 떨어질 시험이었다면 진작에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봤어야 했다.

그 날도 수레 가득 폐지를 싣고 끌고 가시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죄책감에 더 이상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힘든 나에게 해신이는 행운의 여신이다.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 본다.

 

 

처음으로 사랑을 느껴 본다는 그 한 줄이 아프게 다가온다.

지금까지 멍청하게 혼자 아프게 사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