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이상한 듯 쳐다 보았다.
"으-응 너무 예뻐서.."
"싱겁긴.."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라 그녀의 모습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여의도에 한강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녀는 유일하게 한강에 가는걸 좋아했다.
그녀가 한강에 가자고 한 날은 가슴이 답답한 날이다.
무슨 일이 있는걸까?
혹시나 헤어지잔 말을 하려는건 아닐까?
희철은 두려웠다.
그녀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올까봐 두려웠다.
오늘은 제발 아니길...
아니 영원히 아니길...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두려운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도 꽃다발을 안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벤치에 앉아 있는 순간 희철은 울컥 눈물이 흘러내렸다.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그녀의 이마에 안도의 입맞춤을 해주었다.
눈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영원히 헤어질 것 같은 그녀가
곁에 있어주어 고마웠다.
바람에 날리는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녀옆에 앉아 어깨위에 살며시 팔을 얹어보았다.
가녀린 그녀의 어깨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며칠새 야윈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기가 힘이 들었다.
문득 그녀의 무릎에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철은 그녀의 무릎배게를 정말 좋아했다.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있으면 마치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진것만 같았다.
그녀의 감미로운 향기와 숨소리
그 모든것이 희철에겐 행운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부끄러운듯 이마를 한대 쥐어박았다.
그래도 희철은 좋았다.
"아이 좋아라!"
"그냥 나 이대로 누워있을래!"
그녀는 싫은듯 하면서도 엷은 미소를 띄었다.
희철은 그녀의 무릎에서 이대로 한없이 어리광을 부리고싶었다.
지하철이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하는 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하철로 향했다.
그녀의 가녀린 어깨에 조용히 팔을 얹었다.
오늘따라 지하철안은 한가했다.
의자에 앉자마자 그녀는 희철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그녀의 자는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이 세상 그 어떤 천사보다 더 평화로운 모습으로....
희철의 어깨에 기대어 잠을 청하고 있다.
희철에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희쳘의 곁에 그녀가 있는 것만으로도 희철에겐 곧 행복이다.
이 세상 그 어떤것과도 바꿀수 없을만큼 너무도 소중한 그녀다.
다음 정류장은 종로 3가
종로 3가역입니다.
안내방송이 나와 어쩔수 없이 그녀를 깨워야했다.
그녀는 잠에 취한듯 아직도 눈이 반쯤은 감긴 상태다.
지하철을 갈아타서도 그녀는 내내 잠만 잤다.
그래도 웬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싫지가 않았다.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한강변에 도착해서야 그녀는 정신이 들었다.
뭐가 그리 피곤했을까 싶으면서도 영화 한편 본 기분이다.
"우리 오리 탈까?"
그녀는 너무 좋아하는 표정이다.
"그래!"
오리를 타려는 사람들로 매표소는 북적거렸다.
표를 사는동안 지루할까봐 캔커피를 건냈다.
그녀는 커피를 무척 좋아했다.
"두 분이 많이 닮으셨네요!"
"그래요?"
희철은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했다.
"꼭 다정한 오누이같네요!"
매표소 아저씨는 둘이 잘 어울린다며
희철과 그녀를 번갈아가며 미소로 바라보았다.
"여자분이 아주 이쁘게 생기셨네!"
희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한걸음에 달려가 그녀에게 자랑하고싶었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 캔커피를 음미하고 있었다.
"희서야!"
"왜?"
"아저씨가 너랑 나랑 닮았댄다!"
"둘이 꼭 남매같대!"
"그래?"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좋아했다.
두 사람의 만남을 축복해주려는 듯
오늘따라 한강물은 고요하고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무서운듯 겁을 먹다가 재미있는지
두 팔을 벌리고 소리를 질렀다.
마치 세상의 자유를 다 얻은 듯..
희철은 갑자기 아니 꼭 듣고싶은 말이 생겼다.
저렇게 두 팔을 벌리고
'나 은희서는 배희철을 영원히 죽을때까지 사랑한다!'
'넌 내거야!'
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껏 만나오면서 단 한 번도 듣지못햇던 말이다.
혹시나 오늘은 해주지 않을까?
무척이나 듣고싶다.
"나......."
희철은 한참동안 뜸을 들였다.
"너한테......"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이 듣고싶은데?"
그녀가 물어보니 갑자기 용기가 없어졌다.
말을 할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해줄수 있어?"
"뭘?"
"나 은희서는 배희철을 죽을때까지 영원히 사랑한다!"
"넌 내거야!"
"라고 말이야."
그녀는 쑥스러운듯 한참을 망설이더니
두 팔을 높이 들고 소리쳤다.
"나 은희서는 배희철을 죽을때까지 영원히 사랑한다!"
"넌 내거야!"
순간 희철은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수 없는
벅찬 감동이 한없이 밀려왔다.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너무나 행복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이대로 영원히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고만 싶었다.
시간이 계속 흐르면 이 행복이 빛이 바랠까 두려웠다.
그녀곁에서 지금처럼 영원히....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디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니길 기도해본다.
그녀를 영원히 곁에 두고싶어 잠시 다른 생각도 해보았지만
너무도 사랑하기에 아껴주고 싶었다.
저기 저물어가는 태양의 뒷모습처럼
이 근심 걱정도 그렇게 저물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었다.
'사랑한다 희서야!영원히....'
어느새 붉은 노을이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살며시 희철의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녀의 따뜻한 숨소리가 느껴진다.
어깨에 기댄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달콤한 입술처럼 이 느낌 그대로 영원하길,,,,
억장이 무너진다는게 이런것일까?
가슴에 싸였던 우울의 편린들이
우루루 흩어지며 눈물 바다를 이루었다.
얼마나 더 울어야 눈물이 말라버리는 것일까?
그녀가 항상 곁에 있어도 그립고 불안했는데........
곁에 없는 그리움과 불안함을 어떻게 감당해야할지
희철은 눈앞이 깜깜했다.
하늘이 미쳤는지 빗방울들이 점점 더 세차게 울부짖는다.
희철의 애타는 절규를 하늘이 알아버린 것일까?
대지가 부서질듯 무섭게 흔들어댄다.
바닥에 주저앉은채 일어날 힘도 없었다.
모든게 다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억지로 일어서려 해도 감당할 수없는 슬픔의 무게가 짓누르고 있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없는 무언가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깨어나려면 시간이 걸린다니까 씻고 쉬다가 와!"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은규가 내미는 새 옷을 들고 샤워실로 향했다.
샤워기를 틀어놓은채 그냥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왜 이렇게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것일까?
아직 그녀가 떠나간것도 아닌데 왜 이리 겁부터 먹는것일까?
그녀 잘못도 아닌데 자꾸만 이별을 생각하는 희철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녀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이건만.......
그녀만의 아픔으로 치부해버리려는 못난 자신이 부끄러웠다.
차라리 보지 말았어야 할것을 보고 만 것일까?
갑자기 그녀가 너무 보고 싶어진다.
숨도 쉴 수가 없을만큼 사랑하는 그녀가............
자신에게서 멀어질까 두려웠다.
세상의 빛도 보지못한 채 사라져간 아기에게 너무 미안하다.
왜 바보같이 말도 하지않았을까?
얼굴이 핼쓱해지도록 말도 안한 그녀가 원망스럽다.
먹고싶은것도 많았을텐데............
투정 한 번 안부리고 참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희철은 자신이 이기적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저 가벼운 소화불량으로만 생각하고 넘겼으니..........
소화제만 잔뜩 사다준 자신이 참 우습게 느껴졌다.
그녀는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꾸만 쓴 웃음이 입가에 맴돌았다.
그녀가 깨어났을까?
혹시나 깨어나지 못한채 영원히 못보게 되는건 아닐까?
비누칠을 하는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마음만 급할뿐 몸이 말을 듣지않는다.
병실앞에서 은규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깨어났는데 고통이 심한가봐!"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병실로 뛰어가려는 은규가 희철을 붙잡았다.
"진통제 맞고 지금 다시 잠들었어!"
"정신적인 충격때문에 치료가 필요하대!"
이게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란 말인가?
차라리 그녀의 아픔을 자신이 대신할 수있다면.......
희철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창밖엔 언제 비가 왔냐는듯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루를 알리는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어제의 일들이 제발 꿈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파하며 괴로워하는 그녀의 현실이 꿈이었다면...........
무거운 돌덩이로 얻어맞은듯 가슴이 턱 막히는듯 했다.
밤새 지쳤는지 은규는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잠시 졸고 있는 사이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 희철을 부르고 있었다.
희철은 자신도 모르게 병실문을 박차고 들어가는걸 의사가 말렸다.
"환자에겐 무엇보다 안정이 중요합니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병실문을 열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애처로워 보였다.
창백한 얼굴에 우울이 가득한 그녀를 본 순간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떨리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는 순간
그녀는 새차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이별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곡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지워지지 않는다.
가슴을 무겁게 짓이기고 있는 이별의 슬픔들을 맞이해야 하는 것일까?
그녀는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없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굵은 눈물 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아픔까지 사랑하고 싶은데 허락하려 하지 않는다.
하늘이 왜 이리도 무심한것일까?
오늘처럼 하나님이 원망스러울 때가 없었다.
그녀의 손목을 꼭 잡고 흐느껴 울었다.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없었다.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며칠사이 그녀는 무척 야위어 있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너만 있으면 돼!너만!"
"떠나지마!제발!"
차마 겉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말들을 가슴으로 속삭여본다.
그녀의 손목위에 떨어진 희철의 눈물을 느꼈는지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한테 죄책감 같은거 느끼지 마!"
"지켜주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 없어!"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왜 얘기하지 않았니?"
원망섞인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배를 어루만지며 흐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희철은 자신이 못할 말을 한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울컥하는 자신때문에 그녀의 가슴에 멍이 들었다.
"사실..........“
“그날 만나면 얘기하려고 했어!"
"그런데........................."
그녀는 말을 잇지못하고 흐느끼고 있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넸다.
자세히 보니 아기의 초음파 사진이었다.
가슴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거운 바윗덩이에 눌린 듯 시린 아픔이 밀려온다.
희철은 자신도 모르게 사진위에 눈물방울이 흩어졌다.
그녀를 끌어안고 한없이 엉엉 울었다.
세상의 빛도 보지못한 채 희미하게 사라져버린 아기에게
심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희철과 희서의 아기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왜 진작에 알아채지 못했을까?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텐데............
입덧이 심해서 그렇게 아파보였던건 아니었을까?
"오빠한테 이쁜 아기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설움이 북받친 목소리로 그녀는 울부짖었다.
"나 너무 속상하다!“
"아이가 잘못된것도 속상하지만........"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것도 속상해!"
희철의 가슴은 심하게 난도질당하고 있다.
서럽게 울고 있는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그칠줄 모르고 흐르던 눈물이 더 슬프게 흘러내린다.
"괜찮아!그냥 너만 있으면 돼!"
"아이가 잘못된게 왜 네 탓이니?"
"울지마!"
"죽을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내 옆에서 있어주기만 하면 돼!"
"그러니까 떠나지마!희서야!"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침대에 눕히며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걱정하지 말고 푹 자!"
흩어진 그녀의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흐느꼈다.
그녀는 많이 지친듯 금새 잠이 들었다.
그녀의 자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다웠다.
은규는 아예 의자에 자리잡고 잠이 들어 있었다.
점퍼를 벗어 덮어주려는데 은규가 말했다.
"희서 괜찮니?"
"응!"
"나가서 술이나 한잔 하자!"
언제 비가 왔냐는듯 새벽 하늘은 고요하기만 했다.
늦은 시간인데도 포장마차는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무리 마셔대도 분이 풀리기는 커녕 더 울화가 치밀었다.
술잔속에 쉴 새없이 일렁이는 쓰디쓴 눈물처럼
희철의 가슴에도 아픈 눈물이 흘러내린다
술잔은 희철을 유혹하며 속삭이고 있었다.
어서 마시라고 ...
어서 마시라고..........
다가가면 빠져나오지 못하게 희철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아무리 빠져나오려 애를 써도 이미 희철은 술잔의 포로가 되어 있었다.
희철은 술을 마시는것이 아니라 술이라는 수용소에 단단히 갇혀 있었다.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무기수처럼 그렇게 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술이 술을 마신다고 했던가
목줄기를 타고 흐르던 술잔을 누군가 빼앗는 손길이 느껴졌다.
술병을 빼앗는 은규의 손을 세차게 뿌리쳤다.
술병속의 술은 저리도 많이 남았는데..........
같이 놀자고 손짓하는데 안놀아주면 못된 놈이다.
문득 희철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소주 세병에 수면제 세알 먹으면 죽는다는 생각.........
소주를 세병 마셨으니 수면제 먹는 일만 남았다.
희철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약국으로 향했다.
"수면제 세알만 먹으면 나는 죽는거야!"
"그래!나는 죽어야해!"
"나같은 놈은 죽어도 싸지!“
“암 그렇고 말고1"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그렇게 거리를 헤맸다.
약국이 저기 눈앞에 보인다.
그런데, 왜 간판이 흐리게 보이는걸까?
아무리 눈을 비벼대도 점점 더 흐리기만 했다.
희철은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고 말았다.
은규가 부르는 소리에도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눈을 떠보니 창밖은 이미 새 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마시고 무슨 짓을 한것이며 여기는 어디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해낼수가 없었다.
이러고 있을때가 아닌데.........
희서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옷을 주워 입고 나서려는데 은규가 들어왔다.
"이 몸으로 어딜 가려고 그래?"
"꿀물부터 마셔!"
그릇을 뿌리치고 성급히 밖으로 나서려는데 은규가 소리쳤다.
"그렇게 걱정하는 놈이 수면제 처먹는다고 난리치냐?"
"이 미친 놈아!수면제 여기 있다!"
"쳐먹고 죽어라!"
방바닥에 수면제 봉지를 패대기치며 은규가 소리질렀다.
"넉넉하게 사놨으니까 실컷 쳐먹고 뒤져라!"
"에이 썩을 놈!"
방문을 세차게 닫아버리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어젯밤에 그랬었단 말인가?’
희철은 수면제 다발들을 움켜쥐고 엉엉 울었다.
자신처럼 무책임한 놈도 세상에 없을것이란 생각에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자기 애 가진줄도 모르고 소화제만 잔뜩 사다 주질 않나
못된 놈들한테 당하게 내버려두질 않나
이젠 수면제 먹고 죽는다 그러질 않나?
도대체 나란 놈은 왜 태어나 이리도 말썽이란 말인가?
희철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눈물을 훔치면서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그녀와의 헤어짐이 바로 희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빨리 가봐야 한다는 생각에
문을 박차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녀에게 향하는 길은 멀고도 멀기만 했다.
이 먼 길처럼 그녀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그녀를 지켜주지못한 바보같은 희철은 열심히 질주하고 있다.
그녀에게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주머니속에서 임형주의 '그리워'가 울려 퍼진다.
희서의 이름이 떴다.
희철은 반가운 마음에 통화 버튼을 눌렸다.
"여보세요!"
희서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동안 나한테 잘 해줘서 고마워!"
그녀의 목소리에서 왠지 모를 불안한 생각이 밀려왔다.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것일까?
왜..................
"나한테 너무 미안해 하지마!"
"오빤 충분히 날 지켜주었으니까........"
"영원히 잊지 못할거야!"
"그리고.......영원히 사랑할께!"
"여보세요!희서야!"
희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끊기고 말았다.
이별의 전주곡이 울려 퍼지듯 가슴에 흐느낌이 전해진다.
머피의 법칙이라 했던가?
텍시기사들이 눈이 멀었는지 도대체가 서지를 않는다.
서 있는 차라도 훔쳐 티고싶은 심정이다.
다급한 마음에 따라주지 않는 지금의 현실이 원망스러울뿐이다.
희철은 답답한 마음에 정신나간 사람처럼
머리를 쥐어 뜯으며 울부짖었다.
한참을 흐느꺼 우는 희철의 뒤에서 차들이
요란한 신호음을 울려댄다.
아무리 빵빵거려도 희철의 귀엔 정적만 흐른다.
그녀가 없는 세상엔 그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자동차 경적소리는 희철을 잡아 먹을듯 사납게 짖어댔다.
정신나간 사람처럼 맥없이 그렇게 방황하고 있었다.
발길을 멈춰서니 어느덧 병원앞에 와 있었다.
병실에 들어서는데 간호사가 부르는 소리가 났다.
"은희서 환자 방금전에 퇴원했는데요!"
희철은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세상을 살아간다는게 두려웠다.
이제 눈앞에 존재하는건 온통 어두움뿐이다.
그녀를 볼 수 없기에 이미 희철의 눈은 빛을 잃었다.
그녀라는 이름을 말할 수 없기에 희철의 입은 이미 말을 잃었다.
그녀의 음성을 들을수 없기에 희철의 귀는 이미 소리을 잃었다.
가슴에 내리는 우울의 눈물이 희철을 더 멍들게 한다.
차라리 이 세상에 없었다면 이런 아픔이 없었을텐데........
이제 희철이 살아야할 이유도
사는 의미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로 간것일까?
도대체 어디로 간것일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은 무엇으로 달래라고.......
떠난 것일까?
곁에 있어도 그리운 그녀였는데...
희철에게서 희서는 곁에 없어 더 그리운 그녀가 되어버렸다.
성치않은 몸으로 어딜 방황하고 다니는 것일까?
희철은 그녀의 이름을 미친 듯이 부르며 찾아 헤맸다.
대답없는 공허한 메아리만 울려퍼진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그녀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애써 참아왔던 눈물이 와르르 흩어져 내렸다.
희철은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얼마나 더 눈물을 흘려야 그녀를 만날 수 있는것일까?
다시는 기약할 수 없는 그녀와의 추억들을......
그리움의 눈물을 하나 둘 가슴으로 흘려 보냈다.
온몸을 휘젓고 다니며 그리움의 아픔이 희철을 미치게 한다.
처방전조차 외면당한 불치병에 걸린듯
희철의 몸은 중병에 걸려 있다.
희철에게는 그녀라는 이름의 치료약이 필요한데..............
아무리 주머니를 털어도 그 약은 살 수가 없다.
약기운이 떨어져 통증을 호소하듯
희철의 가슴엔 아픔의 메아리가 울려퍼진다.
그녀로 인한 금단현상이 희철의 몸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이 놈의 눈이 미쳤나보다.
왜 자꾸 눈물이 흐르는 것일까?
아무리 울지 않으려 고개를 떨구어도......
그의 눈물은 마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라는 생각에 미친듯이 전화를 받았다.
희철의 아버지였다.
희철은 자신도 모르게 울화가 치밀었다.
"희서랑 헤어졌으니까 다신 내 앞에서..........."
희철은 목이 메어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결혼얘기 꺼내지 마세요!"
희철의 아버지는 알았다는 대답만 남기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희철은 며칠전 보러 간 아파트가 생각났다.
그녀와 함께 산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벌써 희철의 머릿속에는 그녀와의 행복한 나날들이
그려지고 있었는데....
그 모든 기대와 설레임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없는 그 집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날개를 잃은 새는 하늘을 날수가 없듯이
한쪽 날개로만 버텨야하는 희철은 이미 까맣게 타버린 존재다.
인생을 걸고 잘 해준 여자는 그렇게 희철의 곁을 떠나갔다.
통지서도 없이 날아든 이별의 슬픔은
그렇게 화살이 되어 가슴에 꽂혀 버렸다.
아픔의 화살이 깊숙이 파고들어 희철의 가슴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그녀가 없는 절망적인 거리를 거닌다는건 힘이 든 일이었다.
어두운 삶속에서 유일한 희망이었던 그녀를
눈에서 지워 버린다는건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의 가슴에서 그녀를 지운다는건 가혹한 형벌이었다.
차라리 한강변에서 뛰어드는 아픔이 덜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시나 그녀가 있을지도 모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희서야!”
“어디 있니?”
“넌 내 인생의 유일한 희망이었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거니?”
“제발....”
“너로 인해 하루를 사는 날 위해서라도...”
“돌아올 수 없는거니?”
대답없는 공허한 메아리만 강물을 타고 아프게 귓가를 스쳐갔다.
그녀와의 추억이 묻어있는 이 곳에서
아프게 이별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어두운 강변을 환하게 가로지르며 유람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희철에게 그녀는 그런 등불같은 사람이었다.
그의 가슴에 더 이상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을것만 같았다.
그녀의 빈 자리가 절망으로 다가왔다.
그녀로 인해 꿈꾸어왔던 지난 행복한 시간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눈물이 앞을 가렸다.
더 이상 살아야할 이유도...
존재해야 하는 이유도...
남아있지 않았다.
차라리 지금의 이 아픈 이별이 꿈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아픈 가슴을 부여잡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을 감지않아도 세상은 온통 어둠뿐이다.
숨을 쉬어도 살아있는게 아니었다.
산 송장처럼 우두커니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가슴으로 흘렸던 아픈 눈물이 눈가에 가득 흘러 내렸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로 떠나버린 것일까?
머리를 움켜쥐고 세차게 흔들며 절대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영원히 멀어져야 하는 사랑을 견뎌내기 힘들었다.
==벽에 기대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는 순간 울컥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가 선물해준 라이터였다.
그리운 그녀의 얼굴이 눈물속에 아른거렸다.
불을 붙이려 해도 눈물이 흩어져 도저히 라이터를 켤 수가 없었다.
그녀의 따스한 숨결이 느껴지는 라이터를 슬프게 어루만졌다.
그녀가 다시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는것만 같았다.
이별이 아닌 잠시동안의 먼 여행을 하는것이라
눈빛으로 속삭이는 그녀가 느껴졌다.
눈을 감고 라이터를 품에 안았다.
그녀의 아픔이 느껴진다.
그녀의 눈물이 느껴진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미치도록 그녀가 보고 싶었다 가슴 가득 느껴지는
서러운 이별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바닥에 죽은 듯이 쓰러져 누워버렸다.
립술을 깨물며 참아 보아도
심장을 맴도는 추억의 편린들이 고통으로 다가왔다.
캄캄한 밤하늘에 드문드문 별이 떠있다.
하지만,희철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에도 별이 사라져 버렸다.
눈앞의 그 어떤 아름다운 별빛도
가슴속의 그 어떤 아름다운 별빛도
그에게는 영원히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절망의 늪에서 헤매야 하는 긴 어둠의 시간들이 두려웠다.
죽어서라도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라면
미련없이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눈을 감았다.
그녀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인다.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밝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웃음 가득하던 그녀의 얼굴에 슬픈 눈물이 느껴진다.
그녀를 품에 안으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루만졌다.
영원히 그녀를 곁에 두고 사랑할 수는 없는것일까?
그냥 이대로 그녀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녀의 입술위에 사랑을 속삭였다.
떨리는 그녀의 입술이 슬프게 느껴진다.
우울함이 가득한 그녀의 눈동자에 힘든 시간들이 느껴진다.
행복이라 생각했던 지난 추억들이
그녀의 가슴에 상처만 남겼나 보다.
인연의 끈을 놓아버리려는 그녀의 간절한 바램을
외면하고만 싶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억지로 붙잡아 두는건
자신만의 이기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마 그녀앞에서 가지말라 소리내어 울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