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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쿠지에서 피로를 풀고


BY 만석 2017-09-01

쟈쿠지에서 피로를 풀고

 

미국 이야기를 하라 하니 더럭 겁이 난다. 나보다 미국을 더 잘 아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는 척하는 것도 한도가 있지. 나로 말하자면 한국의 촌 할미가 며칠의 미국 여행으로 얼마나 미국 이야기를 할 수 있을가. 입을 잘 못 놀렸다가는 아는 척이 될 것이고 아는 척을 하자 하니 어디보자.’ 벼르는 이들의 적수가 되기 십상이겠다. 그래도 듣겠다 하는 이들이 있어 입을 열자 하니 자연스럽게 일기 형식이 되겠다.

 

76.

이제부터는 딸 내외에게 모든 걸 맡겨야 한다. 거금을 들여 불러 준 것도 막내딸 내외지만, 도대체 얼바인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니 전적으로 그들의 의사에 맡길 수밖에. 서울 집을 이사할 계획이어서 그리 긴 시간을 보내지는 못할 것 같다. 출국 전에 살던 집을 매매하기로 계약을 했으니, 중도금을 주고받기 전까지만 미국에서 보낼 생각이다. 새로 이사할 집도 좀 더 둘러 보아야 하고. 온통 마음은 서울로 향하고 있다.

 

막내딸의 방학과 사위의 휴가와 큰딸 네 네 식구의 유럽투어와 시간을 맞추느라고 우리가 좀 무리를 한 셈이다. 아니었으면 이사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국을 했을 것을. 그래도 운 좋게 모두의 시간을 맞출 수 있어서 기분좋은 여행이 되겠다. 큰딸 네 식구들은 벌써 집을 떠나 네바다주에서 여행을 즐기는 중이라 한다. 아마 12일쯤에는 우리와 합류할 수 있을 것이라 하니, 잠시 서울 일도 잊고 손녀딸들 볼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다.

 

막내딸 네는 켈리포니아의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얼바인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다. 사막을 개간하여 세운 기업형 도시라 해서 별 기대도 없었다. 그러나 마주하는 얼바인은 어디에서도 사막의 냄새는 맡을 수 없다. 잘 조성된 정원이 차라리 숲이라 하는 표현이 옳겠다. 시간 맞춰 쏟아지는 분수식 물주기도, 도대체 사막의 한 가운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수고로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되었을까.

 

오늘은 14시간의 비행기 여독도 풀고 시차적응을 위해 별다른 계획 없이 쉬기로 한다. , ‘쟈쿠지에 대한 설명을 좀 해야겠다. 미국에서는 빌라가 아파트의 상위 개념이라 한다. 그 빌라의 동마다 주민의 건강을 위해 야외수영장을 운영하고, 그 수영장마다에 작은 온천욕이 붙어 있어서, 나같이 뜨거운 물에 몸 담그는 걸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서 아주 잘 꾸며져 있다. 이름하여 쟈쿠지’. 일본에는 노천탕이 있더니.

 

쟈쿠지에 몸을 담그니 물결이 온 몸을 맛사지하 듯 주물러 준다.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안성맞춤이나 젊은이들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야외수영장보다 쟈쿠지가 더 맘에 든다. 볼품 없는 육체에 수영복을 걸쳤으니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가히 용감하게 탈의하는 동지들이 많아서 나도 용기를 내 본다. 특별히 시선을 끌 매력이 있는 몸매도 아니니 입으나 벗으나 별 시선은 느끼지 못한다. 아니, 그들에겐 볼거리가 되지 못한다.

 

수영장에서 탈의를 하지 않은 것은 무도회장에서 정장을 입은 꼴과 진배가 없다. 소위 말해서 가관이라는 말이지. 나도 이제는 맘 놓고 수영복을 입는 용기가 생겼다. 영감 앞에서도 사위 앞에서도. 하하하. 모두 벗었고, 특별히 별난 육체도 아니니 시선을 끌 일도 없고 말이지. ‘쟈쿠지는 넓은 평수도 아니지만 혼욕을 한다. 그도 한두 번 해보니 별스럽지도 아니한지고.

 

일본의 노천탕이 생각난다. 유황냄새가 나지는 않지만 더 따끈하고 기운 찬 물결의 움직임이 온몸을 맛사지 하는 기분이어서, 내 적성에는 더 잘 맞는다. 사실 일본의 노천탕은 추웠던 기억이 있다. 노곤한 몸이 스르르 잠을 부를 때쯤 딸아이가 부른다.

엄마. 너무 오래 계시는 거 아녜요?” 허긴. 몸이 더 지칠 수도 있겠다. 내가 자쿠지에 너무 빠닌 거 아냐? 아마 미국에 있는 동안 자주 애용할 것 같은 느낌이다.

자쿠지에서 피로를 풀고​                                                 이른 아침의 쟈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