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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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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일기-1


BY 솔바람소리 2017-07-02

일어나, 밥 먹고 준비해라!”

7월을 맞이하는 첫날, 토요일 아침 820분에 나는 부탁대로 딸을 깨웠다. 그리고 정신을 깨워줄 물 한잔과 갓 볶아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볶음밥을 담아낸, 금빛으로 화려한 플라스틱 쟁반을 들고서 방금 전 활짝 열어놓은 방 문턱 앞에 섰다. 달님의 어깻죽지까지 내려오는 진갈색으로 물든 머리카락이 담장을 타고 오르는 넝쿨처럼 침대를 타고 흘렀다. 슈퍼 싱글 침대의 길이를 알뜰하리만치 가득 채운 모습으로 잠의 늪에서 조금씩 헤어 나오는 딸을 찬찬히 관찰했다. 빗님이 그리운 나날들. 창문 아래 누워있는 달님을 비추는 햇살이 오전부터 눈이 부신다.

빨랑!”

19년째 키우는(?) 중인 딸에게 그 한 마디가 집착처럼 매달리는 잠과의 연을 끊는데 힘을 실어준다는 것을 알기에 5분후쯤 알람처럼 한마디를 보탰다.

...”

완전히 눈도 뜨지 못하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운 달님에게 나는 무릎 위에 들고 있던 쟁반을 올려주었다. 힘겹게 머그잔을 들어 올려서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곧이어 밥숟가락을 입에 물던 달님이 한쪽 엉덩이를 치켜들더니 내렸다. 그리고 한숨을 쉰다. 또 시작이다.

이왕이면 반대방향으로 자리 잡지? 굳이 엄마가 자리한 방향이어야 할까?”

내가 못마땅한 말투로 말하자 다시 한 번 밥 한 숟가락을 베어 물던 달님이 반대방향으로 엉덩이를 치켜들었다.

뽀오옹!

방귀의 조금은 주눅 든 듯 움츠린 작고 짧고 경쾌함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달님이 다시 한 숨을 쉰다. 말 많은 처녀가, 게다가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이며 손발이 다 닳도록 저를 키우고 싶어 했던 엄마를 곁에 두고서 숨 쉬듯 아무 때나 개의치 않고서 방귀를 뀌어대는 배은망덕한 딸을 나는 달관한 시선으로 덤덤히 관찰했다. 단지 방귀보다 밥술을 깨작거리는 것이 눈에 걸렸을 뿐이다.

맛 없냐?”

설마~. 맛있...”

뽀오오옹!

“...어요!”

나의 물음에 대답을 하던 중간에도 달님의 엉덩이는 기특하게도(?) 어미를 배려하고 있었다. 3차 가스배출을 시도했으나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이 마치 밥을 씹으면서도 똥을 씹는 듯하다.

엄마, 정말 맛있는데요, 위에 가스가 찼나 봐요.”

위인지, 장인지 어떻게 알어?”

분명 나의 표정은 서서히 하행선을 타고 흐르기 시작한 감정으로 일그러져 있었을 게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던 달님이 씩 웃더니 명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에 가스가 차있거든요.”

발끈했던 나는 생각했다. 장의 위치보다 위쪽이다. 맞나? 하고... 순간순간 얼굴로 열이 오르는 것이 화가 아닌 갱년기 탓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 주 선자는 올해로 47살이 됐다. 7년 전 이혼을 했다. 남매의 엄마이자, 영업직 사원이다. 155cm의 신장과 결코 마르지 못할(?) 체중으로 하루에 6천보이상 걷는 것을 목표로 둔 3개월 차 고혈압 환자이기도 하다.

나의 딸, 최 달님은 19. 170cm에서 168cm를 오가는 훤칠한 키와 슬림과 글래머의 경계성 체중의 소유자다. 빠른 년 생으로 올해 대학을 들어간 새내기이기도 하다. 달님은 여러 가지 취미를 갖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에게 취미가 뭐니? 물으면 잘 모르겠단다...나는 알쏭달쏭 불가사의에 가까운 딸을 관찰하고 분석해보려고 무던히 노력중이다. 그 많은 취미중 하나가 약속하기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졸업하기까지 시험만 끝나면 다음 성적향상을 약속했다. 성적표를 갖고 오는 날만큼은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 때마다 나는 혹시나, 를 기대했다...그리고 머지않아 고대를 하게 된다. 언젠간 역시나, 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말이다. 성적향상에 대한 약속은 지금도 일관성 있게 현재진행 중이다.

그런 달님이가 이번엔 방학동안 토익 800점을 약속했다. 영어울렁증 지병을 앓고 있는 달님이가 벌써 8개월 전에도 같은 말을 했기에 토익 책을 두 권 구입해줬다. 하지만 그 책은 뽀얀 속살 한번 제대로 보여준 적 없이 주인과 단절 된 체 책꽂이에 수용중이다. 여아일언중천금을 사명처럼 여기는 나에게서 돌연변이가 태어난 것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했다. 나는 토익학원을 찾아냈고 방학특강 7주 코스 44만원의 학원비 결제하는데 이틀을 넘기지 않았다. 교재비는 별도. 달님이에게 총 4권의 토익 책이 생겼다.

!!! 너 책 수집하니? 그동안 자습서를 비롯한 네 책, 산 돈만해도 몇 백이겠다! 공부는 안 해서 책들마다 깨끗하고! 지난 책은 그냥 버려지고 말이야!!!”

배신감이 쌓인 어느 날, 달님이에게 발끈했었다.

에이~ 우리 엄마 귀여운 거 봐봐. 근데 그건 아니다. 그냥 버린 적 없어요. 책을 고물상에 팔아서 6천원이나 받았었는데...”

당시 생글거리며 대꾸하던 달님은 몇 달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혹시 모른다며 남겨놓은 자습서 몇 권을 뺀 나머지를 2차적으로 팔아서 3천원을 더 벌었다고 했다. 헌책방에 가져다주면 더 받을 수 있었다는 때늦은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많은 책을 어떻게 헌책방에 가져가요? 허리 다치면 병원비가 더 나올 걸요?”

달님의 말은 묘하게 나를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점점 나의 불호령이 앙탈로 치부되기 일쑤다.

 

오늘은 달님이가 주말알바를 시작한지 2주째 되는 날이다.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모습엔 아쉬움이 가득하다.

~! 침대에서만 지내고 싶다. 요즘은 침대에서 컴퓨터도 하고 책도 읽을 수 있도록 손만 뻗으면 뭐든 가능할 수 있도록 가구가 만들어진다고 하던데...”

, 변기 달린 매트는 없어?!”

, 역시 울 엄마, ~! 좋은 아이디어! 그거 만들면 진짜 대박 나겠다.”

말하는 거 하고는... 나가지 말고 아주 욕창 나도록 누워만 있어라!”

달님이 출근하고 난 집안의 고요함에서 평온한 마음으로 숨고르기를 해본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속에서 참 바삐도 살아내고 있다.

오늘은 퇴근해서 또 어떤 이야기로 한보따리 풀어낼지... 어미 새가 아기 새의 날개 짓을 지켜보듯 조심스럽다.

 

 

 

 

# 잘들 지내시죠? 분위기가 새로워졌네요. 글이 쓰고 싶다, 쓸 것이다. 입 버릇처럼 되새겼는데 막상 자판을 잡게 되니

더한 바보가 되었네요. 너무 오랫동안 멀리한 것 같아서 억지로라도 시작해보려구요.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어서 이름을 바꿨는데

ㅎ ㅎ ㅎ. 묻어나는 얘기는 결국 저를 벗어나지 못하더라구요. 더위 잘들 나시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