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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식대로 산다


BY 만석 2017-06-19

내 방식대로 산다

 

영감은 시방 건넛방을 뒤지고 있다. 나는 안방을 이 잡듯 뒤지고 있는 중이다. 언제부터인가 뭘 보관해 놓으면 그걸 다시 찾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걸리고 찾으면 다행이나 십 중 팔 구는 아예 찾기를 포기하고 만다. 별 일이다.

 

분명히 거기에다 잘 두었는데 되찾으면 없다. 영감 말대로라면 너무 깊숙이 잘 두어서 그렇단다. 가방 속에 넣었나 싶으면 책장 속에서 나오고, 찬장에 넣었나 싶으면 옷장 속에서 나오기도 한다. ‘, 그랬지.’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치매는 아니라고 자위(自慰)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영감 말대로 너무 잘 두어서? 그럼 잘 보이는 데에 두라는 말씀이지? 열쇠나 핸폰 따위는 늘 놓는 자리를 정해 놓으면 되는데, 자질구레한 것들은 어쩐다? 할 수 없지, . 늘어놓는 수밖에. 언제나 볼 수 있는 곳에 전시를 해 놔?

 

옳거니. 좋은 방법이다. 전시를 해 두자. 안방 경대 위에는 화장품을 두자. 시방 쓰고 있는 화장품이 떨어지면 쓸 화장품을 예비해 놓는 습관이 있어서, 나는 화장품이 좀 많은 편이다. 어느 때는 사놓은 화장품을 찾지 못해서 다시 사기도 한다. 한 줄을 세워놓으면 탈이 없겠지.

 

건넛방 장식장 위에는 약 종류를 늘어놓자. 한 달 치씩 두 달 치씩 받아다 놓은 약도 차례를 정해서 즐비하게 줄을 지어놓자. 장식장 속에 진열하는 습관을 없애고 말이지. 고개를 돌려 눈을 들으면 모두 입력이 되는 그 방법이 좋겠다.

 

작은 방의 탁자 위에는 문구류나 병원진료서류 등을 얹어두자. 절대로 절대로 끼워놓지 말고 얹어만 두자. 지저분하다고 말하거나 말거나 쫙 펴서 널어놓는 거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말씀이야. 봉투에도 넣지 말고 차례차례 날짜별로 펼쳐 놓자는 말이다.

 

베란다의 골방에는 아이들이 맡겨놓은 서류들로 채우자꾸나. 필요하다고 엄마를 부를 때면 망설이지도 말고 찾아주자. 몇 안 되는 보석류도 자랑삼아 줄줄이 늘어놓자. 머리핀도 줄줄이 줄을 세우고 장식용 핀도 한 눈에 보이는 데에 늘어놓자.

 

ㅋㅋㅋ. 그러고 보니 방마다 장식장 위에 장이 섰다. 만물상이다. 이만하면 뭘 찾느라고 쩔쩔매지는 않겠지. 영감한테 정신 없다고 구박을 받지 않아도 되고. 그런데 장식장 위가 너무 어지럽다. ㅎㅎㅎ. 어지러운 게 무슨 대수람?

 

이젠 정신이 없어서 물건을 찾지 못하는 게 아니라, 물건을 늘어놓아서 정신이 없다. 어린아이가 없어서 손 탈 일이 없는 건 천만다행이다. 그러구 보니 이젠 찾는 일이 확실히 적어졌다. 방마다 늘어놓은 것들을 탓하는 이가 없는 것도 좋다. 잔소리를 할라 치면 골치 아프걸랑.

 

밴드가 어디 있나?”이건 영감의 호출이다.

건너방 장식장 위에 가보세요.”이건 자신이 있다는 내 우렁찬 대답이다. 흠하하 것 좋구먼.

오늘 병원 가는 날이네요. 작은 방에서 진료카드 챙기세요.” ㅋㅋㅋ. 역시 좋구먼.

 

보림아~!

할미 네 집이 방마다 어지러버도 이해 좀 하거라이~.

 

아~ 예날이여~! 2007년봄(그때가 옛날)

                                                     내 방식대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