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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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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나물


BY 낸시 2017-06-15

남편과 싸우고 답답해서 집을 나섰다.

갈 곳이란 뻔하다.

내가 가꾸고 있는 꽃밭이 있는 곳으로 갔다.

서울 거리에 사람이 넘치듯 거리에 사람이 넘친다.

라이브 뮤직 축제가 유명한 곳이고 지금이 바로 그 축제 기간이라고 한다.

도시 전체가 술렁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음악을 즐길 줄 모르는 내게는 강 건너 불이다.

남편과 싸우고 나면 모든 것이 낯설어 질 때가 있다.

내 아이들처럼 사랑스럽던 꽃과 나무도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오가는 사람도 꽃과 나무도 바람과 태양도 그저 낯설기만 하다.

텍사스의 거친 바람과 햇볕에 말라가는 흙속에서 꽃과 나무들이 갈증을 호소하지만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

세상이 너무 썰렁하고 황량하고 그 속에 던져진 내 모습도 처량하고 쓸쓸하다.

꽃밭 사이를 하릴없이 왔다갔다 했다.

아무런 의욕도 일지 않는다.

자꾸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걷는 것도 힘들어 쪼그리고 앉았다.

넋을 놓고 바라보는 꽃밭에서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메마르고 푸석한 땅에 그것만은 야들야들 연하고 싱싱한 녹색이다.

모두가 시들시들해 보이는데 혼자서만 생기가 넘친다.

돌나물이다.

 

이사하던 날, 전에 살던 집 뒷뜰에서 남편이 뜯어온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남편은 돌나물을 화분에라도 키우겠다고 하였다.

정작 나는, 화분에서 자라면 얼마나 자란다고...시큰둥이었다.

꽃과 나무, 나물을 가꾸기 좋아하는 나는 뜰이 있는 집에서 아파트로 이사하는 것이 못마땅하였다.

돌나물은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나물이다.

하지만 미국에 살면 구하기 힘든 나물 중 하나다.

남편이 한국마켓에서 파는 것을 발견하고 내가 좋아하는 나물이라고 사들고 왔었다.

먹기엔 너무 쇠었지만, 반가워하며 뒷뜰에 던져두었더니 자리를 잡고 잘 자라고 있었는데 다시 이사하는 것이 속상했다.

나는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서 자라는 돌나물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다.

아니, 갇혀사는 감옥살이를 연상시켜 오히려 외면하고 싶었다.

그랬던 것인데, 이곳에 꽃밭을 만들면서 한 구석에 던져두었더니 이리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생기 넘치는 돌나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니 스멀스멀 그 강한 생명력이 내게로 전달되는 느낌이다.

나도 모르게 웃었다.

잠시 더 바라보다 돌나물에게 말을 걸었다.

"너 참, 대단하다. 이 거친 환경에서 유난히 싱싱한 비결이 뭐지?"

"......"

여리디 여리게만 보이는 돌나물이 텍사스 햇볕에 조금도 위축되어 보이지 않는다.

고향집 텃밭 두덕에서 보던 것보다 오히려 더 싱싱하다.

"날더러 너처럼 씩씩하게 살라고?"

"......"

돌나물은 말이 없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오히려 더 씩씩하게 자라는 돌나물을 보면서 내 자신을 돌아본다.

돌나물은 환경을 탓하지 않는데 나는 남의 탓을 하고 있었구나...

부끄럽다.

남편 탓이 아니고 내 탓이지...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돌나물에게 말을 건넸다.

"알았어, 남의 탓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께."

쪼그리고 앉았던 자리에서 엉덩이 툭툭 털고 일어섰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집에 가자.

그래, 남편이 돌나물도 사다주고 이사올 때도 챙겨오고 그랬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처음 화단을 조성할 때 에세이 방에 올렸던 글인데 꽃밭에 관한 글을 이곳에 모아보려고 다시 올립니다.

십 년도 훨씬 더 전 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