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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식후,나의 삶은 외줄 줄타기와 삶의 치유


BY 새우초밥 2017-06-15

   2000.6월,

 

   4월초에 이식하고는 얼마나 병원에 있었을까,

   병원 생활한다는것은 어떻게 보면 지루하기도 하지만 병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그 자체가 정말 힘들다.

   어떤 사람들은 병원 특유의 알콜 냄새 때문에 힘들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입에 맞지 않는

   병원 밥 때문에 힘들다고 하지만 난 그때 2달하고도 보름동안 병원에 있으면서

   정말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것 같습니다.

   하루는 병원 안을 순찰(?)하다보니 바로 밑 병동에 서고가 있는것을 발견,

   읽어보고 싶은 책 몇 권을 가지고 병실로 가져와서는 읽었고 또 신문을 구입하고는 읽어보는데

   그래도 세상밖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가보고 싶었지만 수술후에 몸이 약해져 있기에

   병원 안에서만 마치 삶을 이어나갔습니다.

 

   4인실로 왔을때 하루는 바로 옆 사람의 아는 사람들 11명이 한꺼번에 4인실로 들어오는데

   그때 처음 땀이....

   같이 병원에 입원해있는 사람들은 모르지만 외부인들이 들어오니까 그 사람들 그것도 11명,

   그들이 뿜어내는 열기 때문에 병실이 얼마나 더운지 그래서 창문을 열었습니다.

   

   퇴원 몇일 앞두고 이미 고인이 되신 이시래 원장님은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고

   수치는 4 밑으로 더 이상 내려갈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이건 찬물도 더운물도 아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그저 찬물에 따뜻한물을 혼합한 미지근 물처럼 내 인생도 이제부터는 미지근하다?

 

   박사님의 잘가라는 말 듣고는 몇일 후 퇴원했습니다.

   병원비 2500만원..그 시절에는 보험도 되지 않았으니 ㅋㅋ

 

   그래도 만성 신부전시절,

   대학병원에서 내원하면서 디닐때 한번은 건강 검진서인가..

   그것을 한번 받아보는데 맨 밑줄에 이런 글귀가.

 

       "이 사람은 평생을 신부전으로 치료요망.."

 

   이때 얼마나 허탈했는지..평생을 이렇게 살아야하나?

   그래도 이식후 퇴원하면서는 마음이 담담했다고 할까요.

   마치 해탈한 도사처럼,

 

   그렇게 집에 오면서 챙겨 온 면역 억제제하고 몇 가지 약들,

   아침 10시에 복용해야하는 억제제를 보면서 실퍠한 마당에 이 약을 먹어야 하나 싶은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고 한달동안은 제 시간에 약을 맞춰 복용했지만

   실패한 이식에 크게 신경쓰지 말자는 생각에 한달후부터 어머니에게는 운동간다면서

   동네 PC방에서 아침 10시 넘어가는 시간까지 인터넷하면서 제가 즐겨 만나는 카페 사람들하고

   인터넷 카페에서 그렇게 놀고 또 놀았습니다.

   실패했는데 막 놀자는식으로 그리고 10시 넘어서 집으로 들어가고...

 

   6월달에 방통대 2학년 출석수업이 다가왔습니다.

   일주일동안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출석 수업을 받기 시작하는데 이틀날인가..

   닥닥한 의자에 앉아 있다보니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집에 가야지  이 생각으로 나오고 싶었지만

   그래도 수업 다 받고 가고 싶은 생각에 허리 아픈 가운데서도 5시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마침 이때 돌아가신 이시래 원장님이 봉생에서 나오면서 개인병원을 개업할려고 준비중일때

   따님이 운영하는 개인병원에서 잠깐 진료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동생 사는 부산대학교 근처 전셋방에서 가끔 살면서 방통대 수업 듣고

   가끔 따님이 운영하는 개인병원 안에서 진료 받을려고 검사해주고 돌아오면서

   동생 집에서 수치가 얼마나 되는지 전화로 여쭤보면 3정도 나오고...

  

   출석수업 마지막날,

   동기이면서 갑장이였던 여자 학우가 저에게..

 

        "5일동안 수업 받을때보니 힘들어하던데 괜찮아?"

 

   이 질문에 나를 이기고 싶었고 집에 가는건 진짜 하고 싶지 않았다고...

   내년,

   2001년에는 어차피 다시 투석해야 하고 투석하는 인생으로 살아야하는데 뭔 미련이 있겠냐고..

   우울할 필요도 내가 왜 이렇게 되었냐고 자책할 필요도 그저 인생 흘러가는 순리대로

   살면 된다는 답변을 했는데 한번은 국사출석 시간,

   대학교에서 나온 남자 강사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그저 책만 읽고 있기에

   학생 300명 중에서 180명이 다들 집으로 가버렸을때 나도 집에 갈까 이 생각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남아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참 끈질기다는 생각을...

  

   사람은 환경에 어떤식으로 적응하는가 따라서 빨리 적응하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살아가는 미래의 삶이 투명하게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하루 하루 살아간다는

   그 삶이 곧 나 자신이라는 생각으로...

   그때 문득 생각난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저에게 잘해주었던 그 사람들에게 너무 죄송하고

   그것도 400만원 보내주면서 응원해주셨는데...

   그래도 이식 실패했지만 인터넷으로 계속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픈것을 잊었던것이

   곧 나에게는 치유하는 능력으로 발휘된것이 아닌지

   아무리 인생에 대한 삶에 대한 그리고 배려에 대한 책을 읽어본들 직접적인 삶을

   체험하지 않으면 그 책에 보이는 검은 글자 한줄이 그저 검은 먹물로만 보일뿐,

   삶이란 어차피 줄타기하는것과 같으니까.

 

   그리고 2001년 3월......다시 운명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