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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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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식성


BY 길목 2017-06-08

나는 아주아주 어렸을때부터 육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식성을 갖고 있다.

육류라면 국물 한방울이라도 들어간 음식은 입에 넣지 않는다.

육류가 묻은 국자나 고기를 집은 젓가락조차 내가 먹을 음식에는 절대 사용금지다.

내 혀 또한 어쩌다 고기 한점이 다른 반찬에 섞여 입속에 들어가도 기막히게 잘 걸러낸다.

 

고기를 먹으면 두드러기 같은 알러지 반응이 일어나는것도 아니고

소화를 못시켜 속이 불편하거나 그런 이상증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언제부턴지도 알수 없지만 먹지 않게 되었고 고기 냄새를 싫어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나의 부모 형제도 모를 뿐 아니라 나 자신도 모르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릴 적에는 시골에서 살았지만 할아버지가 계신집이라 고기국이나 닭고기 요리를

자주 했는데 나는 냄새가 싫어서 밥그릇을 들고 혼자 다른방으로 가서 먹었다.

어릴때 몸이 약한 편이라 고기를 먹여 보려고 친정엄마는 무진 애를 썼다.

시락국에 몰래 고기를 넣어 시침 뚝 떼고 담아 내어도 한숟갈만 입에 넣어보면 금방

알아차리고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시골에서 살다 중학교때 대구로 이사하게 되었는데 어느날 친정엄마는 나를 시장에 데리고 갔다.

시장통 통닭집에서 기름에 막 튀겨져 나오는 통닭이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데

“봐라 얼마나 구수한 냄새가 나노. 저 맛있는 거를 한번만 먹어보면 니 입맛이 바뀔끼다”

하면서 다른 식구 몰래 니만 사주겠다고 꼬셨지만 나는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니 할수없이 그나마 먹는 계란이라도 주구장창 먹일수 밖에 없었단다.

밥위에 계란을 얹어 쪄주기도 하고 도시락 밥위에는 항상 계란 후라이를 덮어주었다.

그렇게 아주 어릴때부터 계란을 많이 먹었는데도 지금까지 좋아하는 게 계란이다.

 

그래도 오랜 동안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식단이 고기보다는 야채가 많을뿐 아니라 된장이며 김치며 우리 고유음식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즐겨먹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자식들이 자라 고기를 좋아하지, 집안행사에 음식상 자주 차리니 고기요리 필수로 있어야지~

하지만 내가 먹어 보지 않았으니 맛을 낼줄도 모르고 간도 보지 못한다.

요리는 하되 맛은 책임질수 없는 나를 잘 알고 있으니 그냥 맛있다고 먹어 주는건지

아니면 오랜세월 그렇게 하다보니 손맛이 음식맛이 되었는지 맛있다는 말을 듣기도 하니 참~

 

부부모임이나 친구모임등이 있을때는 장소 정할때도, 메뉴 정할때도 민폐가 시작된다.

고기를 안먹는 사람 때문에~

고기가 안들어간 음식이 어떤건지~

따로 특별히 고기빼고 해줄수 있는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매끼마다 반찬 담을때 이건 먹을수 있나요, 이것도 안먹나요?에 답해야 하니 참 민망하다.

김치로만 먹을수도 있고 집에서 반찬을 좀 담아갈수도 있지만 어쨌든 신경 쓰이게 하니

민폐가 아닐수 없다.

 

살다보니 식성이 많이 변했는데 육고기만은 50년이상을 한결같이 거부하는 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