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님과 김치
“어머님. 저 왔어요.”
“오 그래. 왔구나.”
보림이의 등굣길을 배웅하고 들어온 모양이다. 토요일엔 년 중 행사로 들르더니 어제는 약속이 있다며 기다리지 말라는 아들의 전화가 왔었다.
‘김치 담궈놨다. 갖다 먹어라.’이건 아들의 전화를 받고 내가 며느님에게 보낸 문자 멧세지였다. 김장김치가 아직도 많이 남아서 새 김치를 담구면 김장김치가 쳐질라 싶어서 이제야 새 김치를 담궜거든. 반가왔을까 득달 같이 답이 왔다. ‘네. 어머님 감사합니다. 낼 들를게요^^’ 묵은 김치 먹느라고 애를 쓰기도 했겠지만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김치통 뚜껑을 열어 손가락으로 건져 먹으며,
“맛 있어요.”연신 희색이 만면하다.
“맛은 장담을 못한다. 간을 맞추기가 점점 어려워.” 일절로는 모자라서 이절을 읊는다.
“이젠 김치도 해 버릇 해라.”나도 시어미인 것을.
“아이고 어머님. 김치 담그는 건 너무 어려워요. 걍 여기저기서 얻어먹을래요.” 저는 눈웃음을 치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지만 시에미 근성이 어디 가겠어?
“이젠 김치도 담궈버릇하고, 담궈서 나도 좀 날라다 주고.”
“아이고 너무 큰 걸 바라세요. 솜씨도 없고 힘이 들어서….”
며느님의 고운 음성이 ‘바랄 걸 바래야지!’하는 듯 예사롭지 않게 가슴에 박힌다. 결혼 9년차. 이젠 김치도 담글만 하지 않겠는가. 물론,
“예. 그래야지요.”하는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너무 당돌하고 당당한 거절에 오히려 주녹이 드는 건 내 쪽이다. 나는 ‘시에미’걸랑.
'감히...'
그러나 여기서 더 나가면 ‘잘 쌓은 공을 쏟아버리는 격’이 되겠다. 이쯤에서 그만 두자 마음을 접고 샛길로 턴한다.
“다음 번엔 부추김치를 담아 주마.” 헐 럴럴. 계산적이지도 않고 예상적이지도 않지만 그렇게 무릎을 꿇는 격이 되었다. 부추김치는 며느님이 아주아주 좋아하는 김치걸랑?! ㅎㅎㅎ.
“아침 먹었냐? 밥 한 숟가락 풀까?”아침밥은 먹은 뒤라면서도, 쪼그리고 앉아서 김치통으로 연신 손가락을 뻗는 며느님이 이 시에미가 보기에도 좋다.
“으~ㅁ. 맛 있어요 어머니.” 손가락을 쪽쪽 빨며 눈웃음을 친다.
“맛 있다니 다행이구나.” 김치가 맛이 있다 하니 며느님이 더 예쁘다.
보림아~!
네 엄마가 아주 약았어야~.
김치가 맛이 없다 했음 또 담궈 줄 마음이 동했건남? 나는 네 어미의 시어미걸랑 ㅎㅎㅎ.
김치는 못해도 뭐든 잘하려고 애쓰는게 이쁜 며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