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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쥐어지는 행복


BY 만석 2017-04-27

손에 쥐어지는 행복

 

앞 댁 지하실에 이삿짐이 들고 난다. 소문도 없이 젊은이들이 집을 사서 이사를 간다 한다. 남의 일이지만 고마운 일이다. 가는 길에 인사라도 하고 가면 더 좋으련만, 누구를 탓하겠는가. 인사를 받을 제목이 되지 못한 나를 나무라야지. 좀 더 살갑게 굴지 못했음을 탓한다. 그런데 늙은이가 젊은 사람들에게 살갑게 군다는 건 좀 그렇다. 그래도 그랬어야 했나 보다.

 

불이는 이삿짐이 한창 내 대문 앞을 점령하고 있는데, 또 다른 댁의 새댁이 부른 배를 내밀고 섰는게 눈에 띈다. 가게로 좀 들어와 앉으라 청했으나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젓는다. 가게로 들어오는 것을 퍽이나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장사하는 집이라는 선입견에서겠다. 간이 의자를 내다주며 앉아서 구경하라 권해본다.

 

그제야 의자를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와 앉는다.

좋은 기술 있어서 좋겠어요. 저도 아기 낳고 나면 배워보고 싶어요.”로 시작한 그녀는 제법 넉살을 떠는 스타일이다. 존댓말의 꼬리를 꼬박이 잘라 먹는 재주(?)도 있나 보다.

얼마나 배우면 이만큼 하나요?” 오십 년은 걸려야 한다는 내 말을 그저 농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사 오는 사람들이 나이가 많은 거 같아요.” 묻지도 않는 말에 답을 하는 모양새도 그렇고 말투로 보아 그리 교양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너무 가까이에 두지는 않아야지 싶다. 이왕이면, ‘이사 오시는 분들이 연세가 좀 높으신 거 같아요.’라 했더라면 어땠을까. 내 놓고 훈계를 할 사이가 아니라서 맘에만 담았지만, 이래서 나는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나 보다.

 

저렇게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남의 집살이 다니는 거 보면 참 안 좋아 보여요.”

그렇긴 하지요. 그치만 다 사정이 있겠지요.”

우리는 3년 만 월세 살 거예요. 시부모님이 집 팔리면 작은 아파트라도 사 준댔어요.”

저 댁도 그런지 모르지요.’라는 말로 다스려보고 싶었으나 도통 짬을 주지 않는다.

 

도대체 말마다 존대말은 싹뚝 잘라먹는 꼬락서니가 제 신랑 말을 할라치면 교양을 부린다고,

우리 신랑은 이러셨어요.”

우리 신랑은 저러셨어요.”할 위인이로세. 아서라. 이러다간 만석이 인심 잃게 되겠다.

조용하기에 돌아보니 가게 이곳저곳을 시선으로 살피는 중이지만 나는 그저 웃지요.

 

듣기에 거북한 소리를 하게 되겠다 싶어서 말꼬리를 돌려,

몸은 언제 푸나요?”하고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칠 개월째 들어섰다 한다.

힘들겠네요. 순산해야 할 터인데.”

걱정 없어요. 제왕절개 할 거구요. 시부모님이 경비는 다 대 준댔어요.” 말마다 잘라먹는다.

 

새댁은 앞 댁 지하실로 이사를 온 노부부에 대해서 거품을 물어 딱하다 하며 수다를 떨었다. 새댁이 자리를 뜨자 내 마음이 평정을 되찾는다. 그러고 보면 새댁의 말이 과히 틀린 것은 아니지. 앞 댁으로 이사를 오는 노부부는 우리네보다 두 살이 연상이라 한다. 이제쯤 내 집을 가지고 편안하게 살만한 나이이긴 하다.

 

나는 얼마 전부터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당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만 만족하자고 작심을 했다. 그런데 그것이 좀 아이러니 하다는 말이지. ‘저이가 갖지 못한 것을 나는 가지고 있어.’하는 자만감에서 얻어 지는 행복. 그건 아이러니가 아니라 악덕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저들에게는 내가 가지지 못한 그 무엇이 있어서 나와 다른 행복이 있을 수 있을 텐데 말씀이야.

 

이왕에 앞 댁 노부부를 끌어들였으니 그들 이야기를 좀 더 하자꾸나. ‘저 노부부가 갖지 못한 집을 나는 가졌다 치자. 비록 보잘 것 없는 고옥이지만. 그러나 그들에겐 내가 볼 수 없는, 나보다 더 나은 행복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지. 예를 들자면 자녀들이 내 자식들보다 더 잘 풀렸다든가. 그것이 집까지 없애고 뒷바라지를 한 결과라면 누가 얼마큼 더 행복한 것일까.

 

어디엔가에 더 좋은 주택을 소유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아니면 나보다 더 건강해서 약 모르고 병 모르는 노후를 지내는 행복한 부부일 수도 있겠지. 다음에 새댁이 우리 집에 나들이를 하게 되면 좀 일러 주어야겠다. ’행복은 반드시 손에 쥐어지는 것만이 아니라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행복이 아니라고말씀이야.

 

보림아~!

할미는 걍 이대로 행복할란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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