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계획대로 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확인한 날이며,
작은 들꽃으로부터 위로 받은 날이다.
봄꽃이 피고 있는데 하늘은 미세먼지로 뿌옇다.
머리가 약간 아픈 듯도 하고 어지러운 듯도 하다.
아무래도 미세먼지 때문인 것 같다.
포근한 날씨 덕분에 몸이 가벼우면서도 약간 나른하다.
산뜻하면서 화창한 봄이 아니라는 게 아쉬웠으나,
모처럼 만나는 지인과 점심을 먹기로 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기분을 바꾸고 나갔다.
약속 장소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밖으로 나오니 뿌연 미세먼지 속에서도 봄기운은 완연했다.
척박한 그 주차장 바닥 한쪽에는
노란 민들레가 봄볕에 몸을 쬐고 있다.
가만히 보니 꽃다지도 노랗게 조그만 꽃을 피우고,
봄바람에 하늘하늘 자기를 알리고 있다.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조금 전의 나른한 기분이 달아나고,
봄바람을 제대로 쐬고 싶어 이런 저런 구상을 했다.
“여기 있었어요? 일찍 오셨군요.”
만나기로 한 그녀다.
옷차림이 산뜻하다.
옅은 연둣빛이 도는 재킷에 회색 바지차림이다.
연한 보라와 크림색이 섞인 목에 두른 머플러가 멋스럽다.
“아, 벌써 꽃들이 피었네요. 우리 맛있는 거 먹어요.”
내 말에 그녀는 상큼하게 미소를 지었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이상하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배터리가 방전된 모양이다.
“배터리 교환해겠는데요. 4년도 더 쓰셨어요.”
서비스센터 직원이 와서 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 배터리를 교환했는지 까마득하다.
지인의 직장 근처에서 식사를 한 후,
그럴 듯한 카페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듯싶다.
1시간 이상 시동을 켜두어야 다음에 시동이 걸린다니,
일단 차를 움직여야 한다.
분위기 있는 곳에서 식사하려던 계획은 어긋나고,
시동을 켜 놓은 채 근처에서 식사를 했다.
모처럼 만난 지인에게 민망했다.
항상 내게 따뜻하고 깊은 마음을 나누어주는 그녀이기에,
오늘은 내가 멋지게 한 번 대접하려고 한 것인데,
예기치 않은 일로 어긋나게 되다니 말이다.
그녀는 다음에 멋진 곳으로 가자고 한다.
그러나 또 시간을 잡기가 쉽지 않은 현실임을 안다.
그녀나 나나 하루하루가 녹록하지 않아 늘 분주하다.
말이 다음이지 쉽지는 않으리라.
마음이 거기에 미치자 머리에서 등에서 땀이 자꾸 흘렀다.
배터리 문제로 시간을 써버려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은 적었다.
아쉬운 마음 미안한 마음 등을 뒤로 하고 헤어진 후,
다음 일정까지 남은 시간을 산책하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벼르고 별렀던 만남이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만 남겼기에 기분이 약간 우울했다.
산책로에는 매화향이 짙게 풍기고 있었다.
향기를 따라 가니 매화가 부푼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그 옆에는 노란 산수유와 개나리 진달래까지 봄꽃 천지다.
박태기꽃도 봉오리가 부풀고 있었다.
나무 아래 보니 꽃다지와 냉이꽃이 벌써 활짝 피었다.
아니 어느새 봄이 이렇게 와있었구나 싶었다.
맥문동 잎이 푸르러지고 있는 옆에는 예쁜 봄까치꽃이 피었다.
봄바람에 흔들리며 무리지어 피어서 나를 붙잡았다.
가만히 앉아서 봄까치꽃을 들여다본다.
청색과 흰색이 섞인 자그마한 꽃,
봄이 온 것을 일찍 알리는 꽃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 보세요. 봄까치꽃이에요. 참 예쁘죠?”
내 말에 흘깃 보던 사람은 빙긋 웃고 그냥 지나간다.
시간이 될 때까지 나는 꽃을 즐겼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오늘의 상황이,
미세먼지로 머리가 어지럽고 아픈 듯하던 것이,
다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봄까치꽃 덕분에.
오늘 계획했던 대로 되지는 않았으나,
봄까치꽃 덕분에 속상한 마음을 달랬다.
그래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의미가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