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씨에 가볍게 길을 걷고 있는데 초등학교가 눈에 보인다.
입학식을 앞두고 교문에 걸어놓은 플랜카트에 써 있는 문구가 나를 붙잡는다.
'따뜻한 추억을 만들어 가는 0 0 학교'
따뜻한 추억이라는 말을 되새기는 순간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 아니 우리 아이들의 초등학교 시절이
그림이 되어 나의 눈앞에 펼쳐진다.
생일이 2월 29일인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고민을 좀했다.
어리숙한 말투에 하는 행동도 어눌해서 엄마의 눈에는 아들을 7살에 초등학교에 보내기엔 미덥지 않았다,
남편도 나의생각에 동의를 하면서도 한쪽으로는 남자아이니까 일찍 보내는 싶어하는 눈빛이 보여서 일단
대학 병원에가서 진단을 받아 보기로 했다.
아이의 사회성, 인지, 학습능력, IQ...
며칠이 지나서 상담결과를 듣는데 역시나 생각했던대로 사회성이 떨어졌다.
다행히 학습인지와 IQ는 평균이상이어서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 입학을 며칠 앞두고 사립학교를 알아보았다.
난 우리집 뒤가 바로 공립학교라서 그곳을 보내고 싶었는데 남편은 사립을 보내고 싶다고 나를 설득했다.
남편의 고집을 꺽을 수 도 없지만 나도 마음 한쪽에는 사립에 대한 로망도 없지않았으므로..
뒤늦게 알아보니 내가 원했던 학교는 높은 경쟁률에 입학을 하려면 기부금을 내야했고,
앞집에 사는 언니의 추천으로 K학교를 가보니 전통과 역사가 있고 학교를 이전해서 건물또한 깔끔해서
입학수속을 밟았다.
그곳에서 N엄마를 만났다.
그녀는 다른 학교에서 추첨을 했는데 붙지 않아서 이곳에 왔다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깨끗한 외모와 반듯한 말투가 맘에 들어서 우리는 그날을 계기로 생각지도 않게 친하게 되었다
나이가 나보다 세살어린 그녀는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좋아했다.
나또한 그녀를 동생처럼 잘 챙겨주니 서로 연락도 자주하고 적극적인 그녀가 나를 많이 찾아와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며, 학교에 대한 이야기, 체험학습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그녀는 칭찬을 잘하고 작은일만 있어도 나를 찾고, 심지어 학교에서도 나와있는 시간을 즐겼다.
그녀의 아들은 운동도 좋아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주 똘똘한 아이였다.
반면에 우리 아들은 운동에는 젬병이었다.
잘지내던 그녀완 헤어졌다.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다고 했다.
서로 많이 섭섭해고 슬펐지만 그녀는 종종 소식을 전한다고 했다. 그러곤 끝이다.
우리 아들은 잠이 많아 늘상 아침에 스쿨버스를 타려면 헐레벌떡 거리며 정거장엘 나가야헸다.
그것도 아버님 손에 이끌려 겨우겨우 버스를 타거나 놓치면 내가 학교까지 태워다 줘야헸다.
한달쯤 지났을까...
학부모 면담을 하는데 그당시 나와 나이가 비슷한 여선생님이 우리아들에 대해서 말씀하시길
"성실하고 공부는 열심히 잘하는데 무언가를 활동할 때면 두번정도 이야기를 해야 알아듣습니다."
"아마 생일이 늦어서 그럴꺼니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그말이 걱정이 되어 집에 와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니 역시나 우리가 염려했던 부분이라며
둘은 한숨을 돌렸다.
첫째아이인 만큼 부모도 경험이 없어서 아이에 대해 놓친 부분이 많았던게다.
한번은 하교하면서 스쿨버스를 놓쳤다는 연락을 받고 학교에 데리러 갔더니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노느라 버스를 놓쳤단다.
두어번 버스를 놓쳐서 하루는 약속을 받고 학교를 데리러 가질 않았다.
혼자 알아서 오라고 하면서 끝까지 엄마가 안갈꺼라고 하니 할 수 없이 학교에서 1시간이상 걸어서
집까지 혼자 왔다.
아들이 올 때까지 난 걱정반 우려반으로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다음부턴 아들은 버스를 놓치지 않았다.
아들반 엄마들이 무슨 모임이니 하면서 함께 하자고 했는데 난 왜그리 그런 모임이 싫었는지
모임을 하지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모임은 하나정도 가입해도 괜찮았을텐데 왜 독불장군처럼 그랬는지...
아들은 가까이 사는 친구들과 그룹으로 영어와 과학실험공부를 했다.
운동을 싫어하는 아들은 수업중에 있는 수영도 무서워했다. 그렇지만 수업의 일부분이니 빠질 수는 없고
달래고 격려해주면서 수영수업에 들어간 아들이다.
다른 운동은 아들은 내키지 않아해서 시킬수 도 없었지만 좀 허약한 아들에게,학교에서
특별활동시간에 하는 태권도를 권했다.
마지못해 시작한 태권도지만 꾸준하게 하니 언제부턴가 재미있어하고 그또한
아들에게 힘이되고 자신감도 붙게한 것 같았다.
어버이날에 부모들을 초청해서 다과와 간단한 게임을 했는데
그룹별로 앉아 게임을 진행하는 가운데 가벼운 사람을 업고 먼저 나가는 게임이 있었다.
옆에 앉은 덩치좋은 엄마가 나를 번쩍 등에 업고는 뛰어나갔는데 그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넉넉하고 맘씨 좋았던 그 엄마는 지금도 넉넉한 마음으로 잘살고 있겠지?
간간히 떠오르는 장면을 생각하니 짧은 웃음도 허탈한 웃음도 나온다.
우리아들은 자기의 초등학교시절을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아들이 벌써 20대 중반 나이가 되었으니
내 나이도 좀 많아졌지....
이러면서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들이다.
창밖의 파란순이 예쁘게 돋아 오르는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