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퇴근해서 돌아와 따뜻한 우거지국을 먹고 누우려다가
문득 앞 골목 지하방에 사시는 할머니 생각이 났다
국이랑 반찬 떡을 싸가지고 4층에서 내려갔다
온종일 서서 아이들을 돌보다보면 계단을 오르기도 힘이들지만
힘든것도 사랑하는 맘 앞에서는 힘이 나나보다
다리야 아프든 말든 얼른 갖다 드려야지
할머니는 밤 11시 되어서 저녁을 드신다.
십년 넘게 공부하는 사십이 다된 아들이 있고
마흔이 넘은 미혼의 딸은 사업하다 빚갚느라 시장에 나가
밤늦게 일하고 새벽에 들어오고
팔십이 넘은 남편은 밖에서 살다가 힘없고 돈 없어
들어와 살게 해달라고 자식들에게 애걸하여
엄마를 괴롭히지 않는 조건에서 들어와 방하나에서 밥은 혼자하시고
반찬은 냉장고에서 꺼내 드신댄다
할머니는 젊어서 양장으로 돈을 많이 벌었는데 할아버지가 다 쓰시고
딸이 사업한다고 또 없애 지금은 지하방에서 월세를 내고 사신다.
들어보면 기가막힌 인생이시다
소녀처럼 곱고 고운 마음씨며 옷 만드는 솜씨며 말씨며
참으로 곱고 고우시다
살림이라곤 할줄도 몰라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신다고 한다.
가끔씩 복지 단체에서 반찬을 갖다주면 그걸로 드시고
방 안에서 문밖엘 안나오신다.
몸도 무거워 한걸음 내 딛기가 천근만근이신데
재봉틀 앞에서 안경도 안쓰시고 옷을 만드시는데
그 돈을 벌어 자식 책값과 방세를 내시며 사신다
가끔씩 늦은밤 할머니 방에서 누워있노라면 옛날 이야기를 듣는것만 같다
그래도 해맑은 할머니 미소로 나도 한번 웃어보기도 한다.
한시간을 함께하다 일어서려는데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이사람 저사람이 쌀을 많이 갖다주어 넘친다며 내게 10키로 주고싶다고 하신다
반찬이 없어 아들이 라면을 자주 끓여먹어서 쌀이 썩게 생겼다고 제발 가져 가라고
얼른 일어나 한푸대를 쥐어주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하방에서 사시는 분들이 벌써 몇 분이나 내게 쌀을 주시던 기억이 난다.
먼저 살던 집 지하엔 개쳑교회 목사님이 누가 문앞에 쌀을 놓고 가신다며 내게 넘친다고 주시고
한번은 또 사랑을 나누어 드리던 지하방 할머니 ( 지금은 고인이 되신 )가 몇번이나 전해주시던 쌀
두번째 할머니는 마지막 위급상황에 남편이 업어서 병원에 모셔 임종을 지켜드리던 할머니시다
세번째 할머니는 홀아비된 아들에게 반찬을 이따금씩 문에 걸어놓고 오곤했는데 나중에 아시고
우리 음식점에 찾아오셔서 정을 나누시며 시골에 가시더니 쌀을 두번씩 보내주시던 할머니
네번째 할머니가 되신 이 할머니 쌀을 받아들고 오면서 어렵고 외로운 할머니들께 받는 사랑이
슬픈것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려주시는 것 같아 힘든 맘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앞으로는 더 맛있는 반찬 많이 나눠드려야겠다.
난 엄마 생각에 할머니들이 좋다
울엄마도 시집을 갈때 시어른 모시는것이 그렇게 좋았다고 하셨었는데 아마도 저 하늘에서
딸을 바라보며 기빠하실게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고 싶고 귀한 존재란다
사람은 처음부터 외롭고 가난하고 싶지 않단다
소외되고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며 살아가라고 늘 말씀하시던 엄마를 만난것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