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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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앓느니 죽지


BY 만석 2017-02-07

앓느니 죽지

 

오늘따라 영감의 어깨가 더 처져 보인다. 밥솥 운전을 사흘 하고는 이리 늙은 걸까. 칠칠치 못한 내 마음이 그새 요동을 친다. 자꾸만 주방으로 들어가고 싶다. 언제 적부터 호강을 누렸다고 다 늘그막에 영감을 부려먹누. 시엄니 눈에 띄면 주걱 들고 납실라.

 

쌀은 이만하면 될까?” 거짓말을 좀 보태자면 반 말은 실하게 쌀을 퍼놓고 묻는다.

밥물 좀 봐봐.” 죽을 쒀도 그만큼은 아니지.

뜸이 들었을까?” 아직 돌솥이 눈물을 질질 흘리는 중인데 불을 끄겠다 한다.

 

손가락은 아직도 저릿저릿 좀 더 쉬라하는데 마음은 다 접고 나서자한다. 차라리 팔뚝이 요절이 나서 깁스라도 했다면 몰라도 손가락이 사단이 났으니 남들 볼라치면 꼴불견스럽겠다. 멀쩡한 마누라가 그럼직도 않은 영감을 부려먹는 꼴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손가락이 불어진 것도 아니고 금방 요절이 날 것은 더 더욱 아니니 조심해서 여차저차하면 밥을 못 해먹을 정도는 아니다. 이참에 영감을 좀 길들이고 나도 때로는 주방에서 벗어나고도 싶었기에 이런 지경을 만들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어요. 둘 중 하나 먼저 누우면 남은 사람이 시중들어야 하니 연습 좀 합시다.”늘상 하던 입버릇이었지만 정작 내가 고장이 나니 영감 행색이 말이 아니다. 오히려 나로 인해 탈이 났다.’는 마누라의 앙탈에 눌려, 아니 낯선 주방 일에 어설프기가 짝이 없다.

 

~. 일어나자.’

무거운 돌솥이나 들어 달라 하고 밥 시켜먹는 건 그만두자. ‘도둑질도 해 본 넘이 한다.’지 않던가. 시켜 먹는 것도 해 본 사람이나 하는가 보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안치니 영감이 등 뒤에서 말한다.

내가 할게. 이젠 잘~.”

그러면서도 내가 일어난 게 몹시도 좋은가 보다. 돌솥을 들어다 주고 수도꼭지까지 틀어준다.

 

오늘 아침 영감이 왜 이리 작아 보이누. 차라리 돌솥을 집어던지며,

못해먹겠다!”고 으르릉 거리는 영감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늙어 꼬부라져도 영감은 여원히 키다리아저씨로 있었으면 참 좋겠다.

 

보림아~!

할미가 일어나니 속은 편.

할미가 할아버지 부려먹을라믄 아직인갑다. ‘밥쟁이 정년퇴임사흘만에 끝이여~^^

 

                                      앓느니 죽지             

                                                            (일본 ooo공항의 식당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