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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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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쟁이 정년퇴임


BY 만석 2017-02-06

밥쟁이 정년퇴임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 영감 흉 좀 보려구요. 남들은 뭐 무슨 영감이냐고 아직 새신랑같다고 하지만 정년퇴직하고 삼식이가 된 지 오래고 손주도 넷이나 보았으니 영감이 맞지요. 안 그래요?!

 

젊어서는 사 남매 키우느라고 고생도 했지만 뭐, 고생은 자기만 했나요? 나는 고생을 안 했냐구요. 남들은 아침밥은 안 먹고 다닌다는데 우리 영감은 아침밥 못 얻어먹고 나가면 큰일이 나는 줄 알더라구요. 오히려 안 먹고 나가는 날은 내가 더 걱정이 되어서 꼬박꼬박 먹였어요.

 

아침밥 뿐인가요? 직장에서 혹시 나로 인해서 책 잡힐 일이 생길까봐 그저 전전긍긍하고요. 직장에 나가는 건 당신이지만 이건 뒤에서 뒷바라지만 하자니 생색도 안나고. 자기는 가방만 들고 나가면 되지만 저는 양말 손수건 챙길라. 게다가 외식을 하고도 집에 와서는 밥을.

 

좋게 생각해서 그래, 자기도 고생하고 나도 고생했다 칩시다. 아니, 그랬으면 이제 자기는 편해졌는데 나는 뭡니까. 출근도 하지 않는 영감 꼬박꼬박 아침 지어 먹여야 하고 먹여놓으면 자기는 띵까띵까 하고 나는 뭡니까. 끝이 없는 밥쟁이 신세에 심통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작전을 세웠지요.

여보. 밥을 먹었으면 빈그릇 좀 주어다가 설거지통에라도 좀 넣어요.”

그랬더니 처음에는 별 일을 다 시킨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나를 한참 바라보더라구요.

 

출근할 때는 바쁘니까 못했지만 이젠 좀 해 봐요.”

사실은 어정쩡하게 빈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발을 떼는 모양새가 좀, 아니 많이 어색하더라고요. 측은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기왕에 빼 든 칼이니.’ 하고 야무지게 말했지요.

 

수저도 갖고 가요. 이것도 같이.”

갑자기 왜 그러냐는 듯이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그래도 주방 설거지통에 갖다 넣더라구요. 그런데 역시 하는 일이 어찌나 어색하고 안 어울리고 측은하기까지 하더라구요.

 

꾹꾹 참고 내친 김에 그랬지요.

이젠 돌솥밥 졸업할래요. 당신 돌솥밥 짓느라고 내 손가락 관절이 다 절단이 났어요.”

그이는 줄기차게 돌솥밥을 고집해왔고 전기밥솥의 밥을 마다했지요.

 

어쩌다 전기밥솥에 밥을 지으면 영락없이 두어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하고 나가기 일쑤였지요. 그러니 하루 종일 나가서 힘들게 일하는 사람을 그렇게 내 보내고 저는 편하겠습니까요? 결국 다시 돌솥을 꺼내고 맛있게 밥을 먹는 영감의 뒤에서 주먹질은 할망정 맘은 편합디다.

 

그런데요. 그 돌솥이라는 게 무게가 장난이 아니라구요. 돌을 파내어 솥단지를 만들었으니 무겁지 않겠어요? 거기에 뚜껑까지 돌이니 40년을 견뎌낸 내 손가락이 대견하지요. 내 손가락이 절단이 났다고 해도 남편은 막무가내였지요. 그러나 그동안은 부려먹으려니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여지껏은 그랬지만 이참에 아주 결단을 내야지하고 작심을 했지요. 밥을 먹거나 말거나 남기거나 말거나 줄기차게 전기밥솥에 밥을 지었지요. ‘배고프면 먹겠지하고요. 일부러 간식도 없애고 나만 더 맛이 있는 듯이 밥을 팍팍 먹었어요.

 

전기밥솥밥 못 먹겠음 당신이 해 먹어. 난 이제 손가락 관절이 다 절단이 났다구 의사가 무거운 거 들지 말래요.”알아듣기 좋게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을 해 주었지요. 제가 절대로 악처가 아니라는 걸 의사의 말을 빌어 좀 말해 주었지요.

 

영감은 김치 하나에라도 집밥만 고집해 왔어요. 반찬은 투정을 안 하는데

밥이 질다.” “밥이 되다.” “밥쌀이 나쁘다.”하고 밥 타령을 잘해요. 자기 말대로라면,

나는 촌놈이라 그렇다나요? 시골 출신이라 검정 가마솥의 밥에 길들여져서 그렇다네요.

 

다음 날부터 영감이 돌솥밥을 안치더라고요. 생전에 주방출입을 모르던 양반이 밥을 하더라는 말씀이지요. 대학 다닐 때 자취를 했다더니 아주 고실고실하게 밥을 잘 지어놓더라구요. 가만히 살펴보니 오기가 났는지 돌솥도 설거지까지 싹 해놓고는 내 손이 안 닿게 하더라구요.

 

한 사흘 동안은 신경전을 벌렸지요. 나는 반찬만 해놓고 그이는 밥을 지어 들어다 놀고. 이 참에 아예 버릇을 들이려고 돌솥은 손에 들지를 않았어요. 반찬 장만하고 장 차리고 그렇게만 해요. 하하하. 이젠 저도 밥순이 정년퇴임 했어요. 참 좋으네요. 크크크.

 

보림아~!

혹시 할미집에 왔다가 할아버지가 주방에 계셔도 그러려니~’ 혀라이~. 좀 지나믄 할아버지 밥 지을 때 할미는 허리 펴고 눕기도 할겨. 할머니도 밥 짓기 신물이 났당께.

 

                                                                         밥쟁이 정년퇴임

                                                                                  나이라가라폭포 앞에서 촬영에 열심인 영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