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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아방궁


BY 만석 2016-11-30

나만의 아방궁

 

안방과 건너방을 수도 없이 오가다가 약봉지와 약간의 화장품이 든 작은 가방을 손에 들면 내 출근 준비는 끝이다. 안방 문을 열고 폭 4m의 거실을 가로지르고는 서너 개의 계단을 내려선다. 현관문을 열고 좌로 돌아 14개의 돌계단을 내려선다. 대문을 열고 우로 턴하고 셔터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만의 아방궁이다.

 

난로를 켜고 컴 앞에 앉으면 출근을 한 셈이다. 아침의 청소가 귀찮은 늙은 이 아줌씨(?), 그래서 전날에 퇴근을 하며 대충 정리하는게 일상이다. 허울 좋은 이름으로 그럭저럭 질서를 잡아 놓았기에, 바로 컴 앞에 앉아도 이상할 건 없다. 관심있게 들여다보면 거울도 지저분하고 윈도우도 출입문도 내 손을 기다리지만 아직도 먼 따스한 봄날을 기약한다.

 

그리 게으름을 부려도 딱히 나무랄 사람이 없다는 게 내 게으름을 더하게 한다. 가물에 콩 나 듯 주문이 있어도, ‘일감이 많아도 큰일이라는 핑계를 하며 이일저일을 끌어다 작업을 한다. 식구들을 위한 옷을 일감이라고 붙잡고 앉아 작업을 하는 척하는 요즘. 그래서 이웃에서는 놀지 않게 일이 꾸준히 있는 집이란 평판을 받는다 크~.

 

그런데 참으로 요상한 건 이층의 어느 곳보다도 여기가 내 자리라는 재미가 든 지 아주 오래라는 데에 있다. 그렇다고 이층이 맘에 들지 않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저 내려와서 여기에 앉아야 내 자리를 제대로 찾았다는 안도감이 든다는 얘기다. 뜨끈한 전기의자에 등을 지지며 TV를 시청하는 것보다 더 편안한 자세를 잡을 수도 없는 이곳이 말이지.

 

이제 조금 있으면 남주 네 어머니도 들를 것이고 앞의 딸부자집 마나님도 납시겠지. 찐 고구마라도 들고 내려온 날은 고구마를 물어뜯고 인절미라도 들고 들어오는 이가 있으면 것도 나누며 잡담을 한다. 어쩌다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은 지나가는 길손이라도 눈인사를 나눈다. 누구라도 그저 웃어만 주면 웃음으로 답한다.

 

작은 소방도로가의 작은 의상실. 누가 보아도 화려해 보이지는 않는다. 더러는 당연하다는 듯 수선거리를 내려놓지만 이 늙은 안주인은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우리는 수선은 안 해요. 맞춤만 합니다.”

웬일이냐는 듯 빤히 건네는 시선이 이젠 낯설지가 않다. 물론 꼴에.’하는 의도도 있겠지.

 

더러는 의상실이나 양장점의 개념을 모르는 어린 손님들도 래왕(?)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오히려 나는 그런 학생손님을 선호한다. 지금도 너무 짧다 싶은 치마의 단을 줄인다던가 너무 끼인다 싶은 교복을 그래도 더 줄여달라는 억지 손님도 있다. 앞섶의 단추가 벌어질 정도의 교복에 만족하는 어린학생손님에게는 차마 수선비를 받을 수도 없다.

 

왜요?!.”라며 의아해 하는 작은 숙녀에게 붕어빵 천원어치를 요구하고 친분을 쌓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선심을 쓰고 젊음과의 대화를 목말라하는 초로의 늙은이가 된 게다. 호기좋게 친구를 데리고 와서 같은 작업을 청하기도 하지만 밉지 않음은 내 마음이 아직 어리다는 증거일 것이다. 좋게 봐주면 소녀 같다.’하지만 유아틱하다고 보기도 하겠지.

 

아무렴 어떠랴. 내가 즐거운 데에야. 커다란 거울 저편 밖으로 어린 단골이 지난다. 가볍게 목례를 건네고는 지나치더니 붕어빵 서너마리가 든 종이봉지를 건네고 수줍게 달려나간다. 그러니까 나는 붕어빵을 좋아하는 인심 좋은 할머니가 된 모양이다. 틀림없이 저 아이는 꽃이 피는 따스한 봄날이 오면 공짜 수선을 바라며 또 교복을 들고 오겠지. 그래도 밉지는 않을 걸?!

 

보림아~!

할미는 이리 인심을 쓰면서 오래오래 살았음 좋겄는디. 보림이가 친구들을 데불고 교복을 줄이러 올라는가? 그때까지 할미 눈이 건재할라는가 몰러~^^   

    

 

 

 

           나만의 아방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