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남편이 술을 마시고 밤12시가 넘어서 가슴을 움켜쥔 채 들어왔다.
평소와 다르게 말없이 가슴만 잡고 거실에 멍하게 앉아 있다.
생각에 잠겨 있는것 같기도 하고 충격을 받은듯 하기도 하다.
별일이다.
결혼한지 30년이지만 술 마시고 들어와 이렇게 조용해 보기는 처음이다.
날이면 날마다 술을 마시지.
술을 마시면 시간 상관없이 끝없이 말을 해서 술을 깨는 스타일이다.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말을 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잔소리하고,
조금전까지 같이 마셨던 사람부터 생각나는 사람은 다 나쁜놈이라고 욕하고,
자식들은 자기 뜻대로 안되니 다 맘에 안들고,
마누라는 지금 자기말 옆에서 나긋나긋 안들어 주어 맘에 안들고.
그럴때 내가 하는 일은 지칠때까지 떠들다가 잠들도록 가만히 두는 것이다.
억장 무너지는 소리에 대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웬만하면 참는다.
그래야 빨리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도 빨라야 한시간, 보통은 두세 시간이다.
다른날과 달라 한마디 해야 될 것 같아 “왜 어디 다쳤어요?” 하니
콩만한 놈들한테 맞았단다.
콩만한 놈이 누구냐고 물으니 놀이터에 모여있는 중학생들이란다.
속으로 킥킥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상상이 간다.
집에서 하던 행사를 김일성도 무서워 한다는 중딩들한테 했겠지~
그날밤 밤새 끙끙 앓았다.
돌아 눕지도 못하고 일어나기도 힘들어 했다.
갈비뼈가 나간 것 같다고 하며 밤새 괴로워했다.
내가 봐도 뭔가 아작이 난 것 같아 걱정이 되긴 했다.
다음날 일찍 정형외과에 가서 증세를 말하니 의사도 갈비뼈를 다친 것 같다며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사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며 MRI를 찍으러 영상의학과 병원차를 불러 주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CT며 MRI 다 찍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다행히 근육만 타박상을 입어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녀야 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그날 이후 보름 넘게 기침을 해도 아프고, 누워도 아파서 돌아눕기도 힘들어했다.
그 일로 나도 이때다 하고 맘껏 잔소리를 했다.
이제 제발 좀 나서지 말고 성질 좀 죽여라.
늙어가면서 참을 줄도 알고 다른 사람 입장도 좀 생각해야 된다.
내맘에 안든다고 남욕 하지마라. 남들도 당신이 마음에 안들기는 마찬가지다.
내 자식 단속도 하기 힘든데 남의 아이들까지 가르칠려고 하니 이꼴을 당하지.
요즘 아이들 얼마나 무서운지 뉴스도 안 봤냐, 맞아 죽는 수가 있다.
등등의 잔소리를 약 발라 주면서 하고,
파스 붙여주면서 하고, 병원 따라 가면서 했다.
남의 충고나 잔소리를 절대 못 듣는 버럭 성질의 남편이 웬일로 고분고분 다 들었다.
나중에 상황을 들어보니
술취해 오다보니 아파트 놀이터에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아이들이 모여 담배를 피며
웅성이고 있었고.
남편이 이 시간까지 집에 안가고 너그들 뭐하냐 고 잔소리를 했고,
아이들이 “그냥가지” 라고 했고
남편이 “이 호로 자식들 에미 애비한테도 그래 말하나” 하고 멱살을 잡았고
아이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마구 패고 달아났고.
그랬었단다.
내가 보기엔
자기 말대로 콩만한 아이들이나, 환갑이 가까워 오는 자기나 밖에 내놓기
위태롭기는 마찬가지 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