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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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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키다리아저씨


BY 만석 2016-07-29

나만의 키다리아저씨

 

다 늦은 저녁에 전화가 운다. 내 딴에는 애교라고 오랜만에 코에 바람을 넣고 옥희 버젼으로,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그리워 운다~.”해 본다. 그런데 영감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 아파.”한다.

.”

그답지 않은 반응에 말문이 막힌다.

 

여보세요?!”

전화가 끊겼나 싶은가 보다.

. 어디가 아픈데?”

왼손에 자가풍이 난 거 같아.”

자가풍이라니.’

 

자가풍이라는 게 뭔지는 몰라도 이라는 말미(末尾)에 기분이 언짢다.

영감은 뇌출혈로 병원 생활을 하고 난 뒤라 내 신경이 곤두선다.

왜 그런데?”

뭘 했는데?.”

오늘 뭘했냐구.”

 

보일러 손 좀 보느라고 힘을 썼더니 그게 힘이 들었나?”

뭐가 바쁘다고 힘을 쓰면서 일을 해요!”

나는 어린아이를 나무라 듯 악을 쓴다. 지금 생각해도 지나치게 힘을 주었던 것 같다. 어린아이 같은 건 영감도 마찬가지다. 아프다고 마누라한테 응석을 부리는 영감이 딱하기도 하고, 악을 쓰는 마누라에 제대로 댓구도 못하고 우물거리는 영감이 가엽다.

 

와요. 보따리 쌀 것도 없이 그냥 몸만 와요.”

시방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와야 병원을 가든지 쉬든지 하지요.”

괜찮아.”

괜찮으면 전화는 왜 했고, 그래서 왜 나만 불안하게 하느냐고 따지고 싶은 걸 꾹꾹 참는다.

 

거기 혼자 있음 뭘 해요. 와서 쉬기라도 해요.”

괜찮아.”

멋대가리라고는 반 푼어치도 없는 영감이다. 그냥 괜찮아만 연발한다. 결국 입을 연다.

괜찮은데 왜 전화는 해서 나만 불안하게 만들어욧!”

그러게. 공연히 전화를 했네. 허허허.”

 

어리냥을 부리려면 제대로 부리든지. 그리 걱정스러운 일은 아닌가 싶으니 웃음이 나온다. 179cm 80세의 영감이 이제는 150을 겨우 넘기는 자그마한 마누라한테 엄살일가? 어리냥인가. 내 체격에 모성애를 느낄만한 것도 아니고.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려봐도 키다리아저씨주디. , 그랬구나. 나는 주디가 아니지만, 영감은 분명히 내게 저비스 펜들턴이다. 늘 그림자 같이 나를 지켜보는 사람. 극적인 순간에 ~하고 나타나는 사람. 그랬다. 영감은 나만의 '키다리아저씨'였다.

 

그런데 이젠 아니다. 그이도 세월에는 당하지 못하겠나. 스스로 나만의 키다리아저씨를 포기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영감~! 영원한 나만의 키다리아저씨가 되어 있으시구랴^^

 

보림아~!

누구에게나 키다리아저씨는 필요하더구먼.

우리 보림이의 키다리아저씨는 어데 있을꼬?

우선은 '키다리아저씨'를 읽게 해야겠구먼. 할미가 책은 사 줄겨~^^

       

                             나만의 키다리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