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둘러 보시지
요즘 만석이가 바쁘다. 누가 일을 시켜서도 아닌데, 난 스스로 일을 만들어 바쁘게 산다. 요즘은 시골집 손질에 흠뻑 빠졌다. 10여년 비워뒀던 집이라 일이 많다. 굴뚝을 낀 안방의 벽은 습기가 찼고, 아예 바닥으로 물이 흘러내린 흔적도 있다. 여기저기엔 거미줄도 주렁주렁. 이런이런~! 너무 무심했구먼. 끊어놓았던 전기도 수도도 다시 연결을 청한다. 다시 전기가 흐르고 수돗물도 흐른다는 것이 기이하기까지 하다. 아직도 선이 살아 있었다는 게 고맙다.
수도며 전기는 사람을 불러서 해결을 하지만 바닥에 쌓인 먼지는 어쩌나. 요사이 농촌엔 모내기로 사람을 살 수가 없다 한다. 거금을 투자하자 하면 어려울 것도 없겠지만, 먼지를 털어내자고 기십만 원씩이나 투자할 만큼 만석이는 여력이 없다는 말이지. 아니, 아예 사람이 없단다. 앞마당의 터밭도 손을 보지 못한 지 오래이어서, 서툰 농부의 손엔 여간한 고역이 아니다. 한양으로 유학(?)을 한 영감으로는 도저히 힘에 붙이는 일이다.
아무튼 우선은 안방의 한 구석을 쓸고 닦아서, 엉덩이 붙일 만큼은 확보를 했으니 장한 일이로고.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긴 한데, 따라 붙는 흙먼지는 감당이 되질 않는다. 옆 댁의 강아지가 ‘컹’‘컹’짖으니 서울 집에 홀로 남은 ‘세돌이’ 생각이 난다. ‘배가 얼마나 고플까.
“에미야. 내가 시골 와 있다.”
“며칠 묵겠으니 아침저녁 가서 세돌이 밥 좀 주거라.”이웃의 며느님에게 청(請)을 넣는다.
내 손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서, 남의 하는 일은 지루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비가 내려서 일을 못하겠네요.”
“일하는 사람이 오늘 안 나와서 일을 못하겠어요.”
하루면 끝이 날 것 같은 수도공사가 사흘이 지나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알고보니 두 곳에 일을 벌려놓고 놓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오가는 덕에 영감만 속이 터진다.
시골에서 아직 집을 나서기 전에 며느님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몇 시에 도착하느냐고.
“저녁 한 술 사먹고 들어가면 아마 늦은 저녁에나….”
“네~~.”하는 며느님의 단답(單答) 문자에 가슴이 서면하다.
영감을 두고 나만 올라온다 했으니,
“밥하기 귀찮으실 텐데, 저의 집으로 오셔서 저녁 잡숫고 가세요.”하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결국 복용하는 약이 바닥을 보이자 상경(上京)을 하는 수밖에. 저녁 늦게야 집에 들어가려니 어설프다. 집 어귀에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니 세상에~~~~~. 일주일 분의 신문은 대문 사이에 끼인 채. 재활용을 담아 대문 밖으로 내놓았던 망태는 대문 밖에서 딩굴딩굴. 음식물 찌꺼기를 담아 내놓았던 사각의 통도 대문 밖에 그대로다. 우편함에 쌓인 우편물들도 자리가 비좁아 떨어지기 일보직전(一步直前). 세상에나~~~! 여기 우리 집 맞는 겨?
고개를 외로 꼬우고 앉아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보지만, 섭섭하기는 마찬가지다. ‘다 그런 거지, 뭐.’라고 자위(自慰)를 해 보지만 섭섭한 건 섭섭한 거다. ‘아니지. 섭섭한 건 섭섭한 거구 모르는 건 가르쳐야지.’생각이 여기에 다다르자 가슴이 벌렁거린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졸렬한 여인이 된 거야?’ 최대한 톤을 낮추고 차분히 말하자. ‘나무라는 의미’가 아닌, ‘타이르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터인데 말이지.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고 마중 차 두른 며느님을 부른다.
“말이지. 음식물 쓰레기통이랑 재활용 망태기를, 집에 드나들 때 대문 안에 좀 들여놓지.”
“죄송해요.”
“죄송한 게 아니고, 남들이 너 드나들 때 봤을 텐데 그거 좀 들여놓지 않고 며칠씩 그냥 드나든다고 욕 했을까봐,” 그래도 저녁밥 이야기는 꺼내 보지도 못하면서, 안심이 되지 않아 부연(敷衍)의 설명을 붙인다.
“내가, 너를 나무랄 땐 나무라더라도, 남들이 내 며느님 흉보는 건 싫거든.” 이건 사실이고 진심이다.
“그러게요. 죄송해요. 생각을 못했네요.”
그랬겠지. 미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게 분명하다. 강아지 밥을 주라 했으니 강아지의 밥만 열심히 준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일주일간이나 대문을 드나들면서도 그걸 보지 못해? 요상타. 아니지. 강아지 밥을 주라고 이르면서 쓰레기통이나 재활용 망태기를 좀 챙기라는 말은 하지 않았잖은가. 그렇게 그렇게 자위를 해 본다.
보림아~!
엄마를 보림이가 좀 갈켜 줘야겄다. 그려도 할미는 에미를 사랑혀~. 보림이 에미니께니^^
그녀도 때론 실수를 한다^^ 잘하려하면 더 안 되는 법이걸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