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를 거느리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1970년대. 겁도 없이 나는 두 딸과 두 아들을 두었다.
“양장점마담은 또 배가 부르더구먼.”
이구동성(異口同聲)의 떠드는 소리를 칭찬으라고 자위(自慰)했다.
“개는 건드리지 마. 큰일 난다. 사 남매가 몰려오면….”
친구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내겐 힘이 되었다,
훗날.
“몇 남매나 두셨나?”묻는 이들에게,
“둘 둘 두었습니다요.”라고 자랑삼아 말했다.
“집에는 용돈도 많이 얻어 쓰겠다.”라면,
“고~롬.”힘 주어 대답했다. 아이들이 잘 자라주어서 힘이 드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사단은 막내 딸아이한테서 일어났다.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아무리 알아듣게 일러도 딸년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 어느 거물급 정치인이 말했지.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아이를 낳는 일보다 낳지 않는 일이 더 어렵다.”며 설득을 하지만, ‘쇠 귀에 경 읽기.’
애초부터 말을 들어먹지 않는 망난이도 아니었고 누구보다 어미 말에 순종을 잘 하던 아이.
왜 냐고 물으니,
“엄마와 언니가 주범(主犯)이라면 주범이지요.”한다.
“….”
“엄마는 세월을 잘 못 만난 게 아니라, 우리 땜에 아무 것도 못하셨어요.”
“언니도 마찬가지구요. 아이들 뒷바라지에 허리 한 번을 제대로 펴지 모사잖아요.”
그러니까 자식들에 희생(犧牲)하느라고 기지개를 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자식들 뒷바라지만 아니었으면, 엄마도 언니도 아주 잘 뻗어나갔을 것이라 한다. 정말 그랬을까? 딸아이의 눈에 비친 에미가 정녕 그리도 잘난 어미더라는 말이지.
“너희들만 아니었으면 진즉에 혼자 살았다.”라고 푸념을 한 적은 있었지만,
“너희들이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고 생각한 적은 추호도 없었거늘. 고얀지고.
지금도 나는 좌청룡우백호(左靑龍右白虎)를 거느리고 거들먹(?)거리며 지낸다. 자식에 관한 한 남 부러울 것이 없다는 말이지. 왜 딸년은 한 면만 바라보고 뒷면은 감지를 못했을꼬. 저희들이 나한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있는데 그걸 몰라. 힘이 든 만큼 보람도 크다는 것을 어찌 말로 설명을 할꼬.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대(大) 부대(部隊)를 거니리고 왕림(枉臨)하지 않는가 말씀이야. ‘바라만 보아도 든든하겠다’고들 부러워하거늘.
노후(老後)를 걱정하니,
“그때는 자녀를 둔 사람이나 안 둔 사람이나 모두 외롭다.”한다. 어차피,
“노후는 스스로 책임을 질 세대.”라나?!
“나도 엄마랑 언니를 닮아서, 자식을 두면 인생을 걸고 ‘All in’할 것이라.”한다.
“그러니 내 인생은 없어지겠지요. 차라리 젊어서 멋지게 살래요.”라고.
딸아이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다. 도저히 말로는 내가 따르지 못하겠다. 시댁어른들이나 사위가 ‘브레이크’를 걸어주기를 기대했으나, 이미 손발이 척척 맞아서 나는 입도 떼질 못하겠다. 사십에 결혼 2년차로,
“지금 낳아서 언제 좌청룡우백(左靑龍右白虎)를 만든다요.”하니 것도 틀린 말은 아니로고. 내 나이나 적어서 길러주마 할 것도 아니니 오늘도 힘없이 물러나 앉는다. 에~라 모르겠다.
보림아~!
고모가 할미의 높은 뜻을 우찌 알겄냐. 답답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