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셋을 안낳기 다행이지.
건망증이 가끔 나도 잃어버리게 하고
어제 본 책 제목은 너무 쉽게 잊게 하니
두아이가 엄마 나는 잊지말라고 할 정도다.
나는 길맹이다.
갔던 길 서너번 가야 이제야 한 번 온 것같다고.
남편은 용케 집은 잘 찾아오는 것도 고맙다고 한다.
운전을 하면 길은 알고 있는 거 아니냐고.
내가 아나 고속도로 한 번 들어가면 뒤도 못 돌아 보게 하니
길이 알아서 만든 길이니 내가 몰라도 간다.
문제는 시골을 양쪽으로 끼고
가끔 너구리니, 고양이니 개구리니
이게 도로냐 우리가 이 집 저집 마실 가기 좋게 넓게
놀다 내 자동차 바퀴에, 아니면 엔진소리에, 아니면 달보다 더 환한 라이트에
내가 가슴이 오그라지고 숨죽이는 목처럼 긴장할 때이다.
정작 그네들은 나보다 더 한
스트레스를 말한 번 내비치지도 못하고 있슴을 숨기고 있다.
가장 약한 산 자락을 비벼댄 길을 운행 할 땐
아예 차에서 내린다. 걷는다. 포장도 안 된 흙 위.
산이 내어준 그 만큼이 지구 한 구텅이마저라도 아스팔트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는 항변. 아직 화장할 줄 모르는 어린 여자얼굴.
그 위에 무거운 바퀴자욱보다 내 발자욱이 더 어울릴 것.
사람만 책을 읽는 줄 알았다.
땅도 내 발자욱을 읽고 싶어했고,
길 끝에서 이제 다시 시작하자고 책걸이도 걸판지게
할 요량이었다. 미련한 사람 같으니 포장안된 불편한 길이라
누구도 오지않아 무성한 풀빛만 요란하다.
책을 잃어버리면 나는 기분이 좋다.
설사 불소시게로 사용된다 한들 그 건 내 알바가 아니다.
단지 흙이든. 나무든, 하늘이든, 모두 독서중이기에
무엇으로 어떤 느낌으로든 나에게 돌려주러 온다.
내가 읽은 것이 아니었다. 읽힘을 당하므로 원래 먼저 그들이
주인이었다. 오래되어 이눔의 건망증이 과감히 잘도 잊게 한 것이다.
그들은 나를 잊어먹지도, 잃어버리지도 않았는데.
소외되었다고, 업수이여겼졌다고, 아직 날만 안잡았지, 내 목숨 오늘도
길다고 생각한 날. 상수리나무 그늘 밑에서 같이 읽혀지고,그들의 목숨이 바람도 되고, 말도 되어 내 뺨을 상기시켜 도로 살게하는 힘.
내가 그들에게 읽혀지고, 책 갈피에 꽂아놓은 낙엽보다 더 소중하게 기억된 걸.
나에게 전부가 된다. 모두가 전부다.
오랜동안 망설인 글입니다. 혹시 어려워 혼자 독백한 글입니다. 살다가 별 일도 다 있건만 ,,,, 내가 글을 써서 누구를 설득하거나 강요라든가 주장을 한 다는 것이 꿈에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습니다. 꼭 누가 언제까지 숙제 해오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 같이...
참고로 저는 컴맹입니다. 집엔 피씨도 없습니다. 없다고 불편하지도 않았습니다.
일부러 피씨앞에 컴맹을 앉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