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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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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 2


BY 생각하는 이 2004-11-24

겨울강 2

 

그 날 봄 볕 한자락을 간신히 보듬고 담 밑에 앉은 아버지는

불길한 꿈 속에 빠지곤 했다.

 

빈혈처럼 표류하는 삶의 끝물은 언제나

단단한 닻줄이 되지 못하고,

 

가을이 끝나 갈 무렵 객지 노동판에서 돌아온 아버진

몇 년은 더 늙어 보였다.

굴속같은 방구석을 치우다 말고 어머니는

소매끝으로 눈물을 훔치고 밤새 소낙비가 내렸다.

 

속히 허해 어지럽다고 며칠씩 깡소주를 마시던 아버진

아침 밥상에 진홍빛 코피를 자주 쏟았다 .

쓴 익모초즙이 한 대접씩 늘 때마다 식구들의 불안한 눈빛은

길 모퉁이의 바람이 되었다.

 

더 이상의 절벽도 없을 것 같은 겨울강을 건너

아버지는 다시 미장공이 되었다.

그러나 그 겨울강을 되돌아 온 아버지의 손바닥은

온통 시멘트 독이 퍼져 있었다.

 

허물같은 살집이 벗겨지고 시퍼런 핏줄이 툭툭 불거진 손에

연고를 발라주던 어머니가 뒤돌아 앉아 눈시울을 붉히고

덜컹거리는 창 밖으로 눈발이 퍼붓고 있었다 .

 

한줌 햇살도 그리움이 되는 눈 녹는 아침이면

빈 쌀독에 긴 한숨을 쏟는 어머니의 쌀바가지에

푹푹 짓이겨지던 보리쌀에 눈멀미가 나고

식구들은 언 동치미국을 꺼내어 잦은 챗기를 쓸어 내고

마른 풀처럼 쓰러져 누운 아버지의 머리 맡에서

문풍지를 들썩이는 바람을 보듬어 쿨럭이는 감기를 앓았다.

 

그 겨울의 끝자락은 우리 집 담장을 쉽사리 넘지 않았다.

강 가장 깊은 곳에서 속앓이를 하던 잡풀들이 용솟음 치던

그 날들에 죽음처럼 통보 없는 연탄가스가 서너번

잠자리를 다녀간 후 마당 가장 자리에 풀꽃이 돋았다.

 

아버지의 허옇게 타들어간 손바닥도 새살이 돋고

겨우내 한섬한섬 베개에 파묻히던 침묵이 기지개를 켜던 날

어머니는 달맞이 꽃처럼 새벽을 자맥질하며

공사장 잡부로 닻을 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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