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수를 돌아 오며...
푸른 이파리를 아직도 채 감추지 못한 갈잎은
붉고 노란 수줍음을 드문드문 간간이 떨구어 놓았을 뿐
호수를 가로질러 숲 속을 헤집고 들어온 바람만이
살그락거리며 들락거리고 있었다.
십 년도 넘은 옛 기억을 더듬어 올라 간 오솔길은
들뜬 연인들의 어설픈 몸짓에 행여 낙상이라도 당할까봐
벼랑길 옆으로 난간이 쳐 있는 게 달라 졌을 뿐
예전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호수를 휘돌아 구불구불하게 나 있던 좁다란 그 길엔
그때도 나를 맞아 주었던 서너 마리의 잠자리 떼와
드물게 피어 있던 들국화와 다람쥐 먹다 남은 도토리 몇 개가
발 밑에 동동거리며 뒹굴고 있었다.
쉬이 왔다 쉬이 지나 갈 수 있었던 그곳
가늘게 떨고 있는 호수의 흔들림마저 없었더라면
심심하게 지나고도 말 길이었다.
하지만, 뜨거운 햇빛을 흡수하여
별빛처럼 부서져 토해지는 일렁임 위로
둥둥 떠 휘젓고 다니는 연인들이 속삭임이
오늘은 살갑도록 사랑스럽다.
아 맞아요.
그대도 나를 위해 저렇게 노를 저어 주었지요?
따가운 햇살을 가리라고 내 머리에 푸른 손수건도 얹어 주었지요?
힘차게 저으며 물살을 가르던 작은 배 위에 우리의 꿈도 함께 탔었지요?
그때보다 조금 힘들게 제일 가파른 오솔길에 다다르니
때 늦은 개나리 두 송이가 호수 위의 연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비탈진 오솔길 한 모퉁이에도 햇살은 비추고 있었다.
어느날 훌쩍 이 외진 곳으로 유배당해
태어날 시기도 모르고 늦은 개화를 시도했지만
결코, 저들도 아름다운 그 꿈을
영원토록 물밑에 잠재우지 말았으면 좋겠다.
소소소 살그락살그락
바람 따라 나는 또 호수를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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