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우리 앞에 왔는데
이 하지[夏至] 날
어머니 당신에게 드리는
이 전화 한 통에 손끝이 떨려 옵니다
이제 얼마를 더 통화를 할 수 있을까
이 지상에서
어머니 당신의 몸 속으로부터
걸어 나오던 날부터 들어왔던
그 눈물의 목소리 속에서
나는 행복했습니다
그 소리가 그리워 울어야 했습니다
지구 반대에 서 있어도
어머니 당신을 떠올리며
밤을 지새우며 별을 헤고
달 속에 집을 지었던
그 수많은 시간들을 어이 잊겠습니까
이제
어머니의 당신의 몸 속에
피가 말라가고
파아란 힘줄이 뼈 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어머니 당신의 영혼까지
환히 비쳐 다 볼 것 같습니다
내 귓가에
어머니의 당신의 목소리는
전화 저편에서 잔잔히 파문져 올 때
나는 흐느낌으로 입술을 깨물며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고향이라는 당신의 목숨 같은
그 손바닥만한 땅을 일구며
당신의 일생을
씨앗으로 묻고 살아왔습니다
이 좋은 세상에서
세상의 구경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그 산비알에 허리 굽혀 호미자루에
한평생을 다 보낸
어머니 당신의 세월이
온 하늘에 수 놓아져 있습니다
손발이 닳게 빌고 비는
그 정성의 눈물은
어머니 당신의 몸 속을 뚫고
하늘에 별로 박혀 있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별이 이렇게 다가오는데
어머니 당신을 위해
해드리는 것이 없는 나는
전화통을 부등켜 안고
가슴을 찢으면 찢을수록
어머니 당신의 사랑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철모르던 시절에는
세월을 털올처럼 풀고 싶었는데
우리가 맞이하고 싶었던 날들을
맞이하고 순간부터
다시 세월을 되돌려놓고 싶어졌습니다
어머니!
이제 당신과 내가
이별을 앞에 놓고 줄다리기를 합니다
힘이 센 내가
이별이 아닌 영원을 끌어 당겨
어머니 당신과 살고 싶지만
이미 승부는 끝났습니다
어머니 당신이 돌아가야 할
그 시간이 내 발등을
도끼 날로 내리 찧고 있기 때문입니다
꿈을 찾아 질주했던
내 마음 반이라도 떼어
어머니 당신에게 드리고 살았다면
이 참회의 눈물이
내 가슴 속을 염산을 뿌려 놓은 것 같은
서러움에 몸부림치지 않을 것입니다
귓가에 나부끼는
저 갈대빛 도는 머리
한 올 한 올이
나로 인한 속 썩음이었고
나로 인한 뼈 아픔의 흔적입니다
어머니 당신의 손을 잡고
교회 유치원에 가던 날이
어제 갔는데
초등학교 입학 하던 날이
어제 갔는데
그 어여쁨의 자태는 소태 껍질로 변하고
더 어진 웃음이 환하게 달처럼 떠 있습니다
조금만 더 보게 해주세요
어머니 당신의 그 달덩이를
이제로 나를 세워두고
오동잎이 지듯이 그렇게 져버린다면
어디에서 나는 살아가야 합니까
당신의 몸 속에 있는 것
다 주고도
이 다음 저승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 힘까지 이승에서
다 주고 가려고 하시는
어머니 당신!
아!
앞으로 10통화!
아니 20통화!
그 다음 어머니 당신이 계시는
고향집에 전화를 들려도
아무도 받지 않고
빈 벨소리만 울리다가
멈출 때
그 서늘함의 눈물겨움을
어찌 해야 합니까
한 세상 살면서
너무 많이 길에서 걸어 와
그 발은 차라리 돌이 되어
이미 비문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머지 않는 날에
우리는 이 비문 앞에서 읽어야 하는
이 뼈아픔을 무엇으로 돌려드려야
편안히 이승을 떠나 저승에 가시겠습니까
허리 휘고
거동이 불편한 그 몸으로
그 먼 길을 가려고 합니까
함께 동행하려고 나서지만
이미 당신은 손사래 치며
잘 살아라!
이 풀빛 목소리 속에
예전에는
귀 넘으로 바람처럼 여기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 풀빛 목소리 속에는
너무나 큰 세계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눈물의 수행이 아니고서는
깨달을 수 없는
아! 어머니!
그 작은 몸 하나로
세상 모진 풍파 다 이겨내고
또 그 몸으로 저승 어디에서
방패막이가 되어주겠다고
저 언약의 눈빛이여!
하늘의 그림자 한 점 밟지 않으려고
옷깃 여미시며
들로 산으로 바다로 강으로
어머니 당신의 발길이 닿은 곳은
다 빛이 꿈틀거립니다
아니 내 성스런 성막을
세워 놓은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겁 없이 살아 왔고
어머니 당신의 뜻에 순종한 적보다는
거스름의 세월이었습니다
세상! 움켜질수록
모래알처럼 다 빠져나가고
남은 상처와 후회 뿐입니다
이제 생을 조금씩 알아가려고 이는
이 싯점에서
어머니 당신은
준비하고 계십니다
내가 불러도
바람으로 대답하고
강물로 대답하고
새소리로 대답하고]
갈대 소리로 대답하고
가을밤
거러기 울음소리로
대답하실 어머니!
당신의 생전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비디오 담고
마지막에는 내 가슴에 담지만
당신이 빈 이 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야 합니까
늘 비워 있어
어머니 당신을 부르면
내 가슴은 예리한 날에 베어져
피를 흘릴 때
씻어 줄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아! 어머니!
이별이 이렇게 가까이 와
어머니 당신은
한 줌의 재로 흙 속으로 돌아가고
나는 세상 속으로 돌아가 산다 해도
다시 어머니 당신을 뵈올 수 없으니
내 손 끝에는
빨간 동백꽃물이 들어 있습니다
당신의 그 사랑이
내 가슴에서 그렇게 피어났는데
이 꽃잎에 젖어 들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나였습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밥 먹고 살만 하니까
이별은
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너 딱 걸렸어!
제 몸 속에 숨겨놓은 갈고리를 꺼내어
나를 찍어 허공에
풋주간 고기 덩어리처럼 걸어 놓습니다
한 낮의 더위는
내 살갗을 파고 들지만
내 가슴은 한 겨울 입니다
북풍한설이
내 마음 전체를 휘감아
흘리는 눈물까지 다 얼 것 같습니다
이 하지가 지나면
낮의 길이는 점점 짧아지고
밤의 길이는 점점 길어져
그 옛날 어머니 당신은
길고 긴 밤도 잃고
우리들의 옷가지를 다 꿰며
불러주던 그 노래 가락들
우리 꿈 속에까지 따라와
울려 퍼졌고
우리는 그 꿈의 천국에서 뛰어 놀았습니다
그 이후
우리는 그 꿈의 천국에서 떠나와
살아가는 세상은
티끌의 만남이었고
그 만남까지도 소중히 여기라는
어머니 당신의 그 음성을
떠올리면서 손내밀어야 했던
아!
어머니!
어머니!
누가 나를 위해서
희생을 하겠습니까
당신이 아닌 누가
나를 위해서 봉사하겠습니까
이해타산이 있기에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
이해타산이 떠나면
우리는 서로 티끌의 형체로 돌아가
살아가는 것을 알았습니다
전화를 끊으려고 하면서
또 다시 어머니 ! 하고
불러보는 내 가슴은
이렇게 많은 칼날들이 일어서서
내 아픔의 기억들을 잘라내고 있습니다
잘해드리는 것은
기억 어디에도 없고
오히려 엄마!
무엇을 알아!
몰아세웠고
내 등 뒤에 섰던
어머니 당신은
그 흙이라는 하늘이 준 교과서를
다 떼고
그 깊은 진리를 온몸으로
깨달아 일생동안 빛을 발했는데
이 빛이 무슨 빛인 줄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몇 번을 더 통화할 수 있을까
아 ! 어머니
언젠가 수의를 어루만지며
장롱 속에 고이 접어 넣던
그 뒷모습에
이별이 오고 있는 것을
지켜봐야 했는데
우리는 세상일에 빠져 들어
어머니 당신은
언제나 뒤전이었습니다
당신의 몸은 아프면
머리에 수건 동여매고 버티고
우리 몸이 아프면
당신의 목숨을 다 주고
낫고 하고 싶어 안달하던
당신!
하나님이
어머니 당신에게
일평생 동안 희생과 눈물의
그 월계관를 쓰고 뛰라 명했습니까
우리는
가다가 가다가 주저 앉는데
어머니 당신은
일평생동안 지치지도 않으셨습니까
수 많은 고난의 난코스에서
오히려 웃음을 지어보이며
앞으로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던
그 순간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어머니 당신과
너무나 다른 어머니들을 보았습니다
아들 딸들을 출세시켜
호시호강하면서
떵떵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당신은
우리에게 늘 죄인처럼 살았습니다
너희들을 공부를 시키지를 못했다
돈이 없어 너희들이 하고 싶은 일을
도와주지 못했다
죽은 뒤에라도 꼭 갚겠다는
어머니 당신의 그 결의는
눈빛 깊은 곳에 숨겨두었습니다
남의 아이들같이 키우고 싶어
먹고 싶은 것
안 안드시고
입고 싶은 옷 한 가지
안 사 입고
자고 싶을 때 마음 놓고
편히 쉬지도 않고
모든 것을 당신의 몸으로
참아내고
견디어 내고
버티어내며
여기까지 우리를 이끌고 왔습니다
여기 있어야 할
고향집에서
어머니 당신이
홀연히 떠나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고
아침이 오고 저녁이 오고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어머니의 무덤가에 풀이 돋아나
하늘거릴 때
이것이 이별의 완성입니까
다시는 어머니를 만날 수 없기에
이것이 이별의 완성입니까
눈물의 천사여!
이 세상 어디에서도
눈부신 적은 없었지만
어머니 당신이 흘리신
그 눈물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해처럼 떠올라 비추고 있었습니다
눈물의 천사여!
이별을 처음으로 돌려놓고
이 지상에서 당신의 손을 잡고
함께 가는 하늘의 길은 없습니까
저녁 놀빛과 손잡고
이제
내 앞에 와 있는 이별을
외면 할 수 없습니다
끌어 안으려고 해도
이별은 한없이 낮설고
내 품 속을 떠나
남겨 놓은 것은 그리움이라는
이 탯줄입니다
어머니 당신은
또 한 번
당신의 몸 속에서
이 이별의 탯줄을 자르고 있습니다
나는 얼마나를 지나야
이 그리움의 품 속에서
눈을 뜨고
걸음을 걸을 수 있고
온전해지는 내가 됩니까
지금은
어머니 당신은
이 그리움의 탯줄을 자르려고
죽음의 고통 속에 놓여 있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전화를 끊지는 마세요!
이대로 영원히 통화할 수 있게
전화는 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