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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으로의 산책


BY 얀~ 2002-02-16

고향으로의 산책


탱자나무 울타리 돌면 8살 딸과 친구가 된다. 딸이 다니는 신탄진초등학교 가는 길목 안쪽, 고층건물에 가려진 고향이 있다. 대청에 올라서면 파도치는 대숲이, 마당에 강아지와 참새가 실랑이하는 곳.

비석이 콘크리트 바닥까지 파여 쓰러진, 토사가 흘러내린 낮은 언덕에 딸의 손을 잡고 오르니, 곳곳이 파인 봉분(封墳) 그림자에 겨울 채소가 서늘하다. 이곳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곧 번듯한 건물이 들어서겠지, 산사람을 위해 죽은 이가 떠난 곳.

건물에 숨은 낮은 집, 허리 굽은 어른이 집 지키고, 비가 새면 버린 장판 씌우고, 돌을 얹거나 못질하여 성한 곳 없는, 세월이 지붕에 무겁게 내려앉은, 30년 전 내 고향 닮은 곳.

기형의 집들, 도로 공사로 한쪽이 잘리고, 담장이 넘어가 나무로 지탱하고 굵은 철사로 얽고, 폐 벽돌 쌓아 요새가 된, 생뚱 맞은 섬마냥 떠있는 곳.

폐 벽돌, 폐 장판, 나무, 돌 잡동산이 쌓아 조막만한 텃밭을 일구고 오랜 세월, 그렇게 일궈진 요새 속 지붕만 보일랑 말랑, 폐품수집으로 경비를 세운 야릇한 곳.

현재보다 추억이 가까운 곳, 땅주인과 건물주가 달라 헐거나 새로 지을 수 없는 곳, 추억 보존 지구로 형성되어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에 바람만 공허한 손님이 된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