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정리하며
벌써 몇번, 몇해째인가
버리겠다 내려서는
이리저리 비춰보고 대어보다
이제라도 군살줄여 입어낸다 작정하며
또다시 걸어두던 일들이
그러나 나는 안다
다시는 입을수도, 입지도 못할 것을
그런데도 해마다 철마다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함은
그 꽃무늬 원피스가 값져서가 아니라
누군가에, 어디론가 보내지면
물 올랐던 스물도
팽팽한 서른도 함께 따라가 버릴 것만 같아
오늘도
내렸다 걸었다를 서너 번 반복한 후
그래도 다시금 걸어 놓음은
옷장 안 깊숙히
잘 나가던 한 시절을 걸어두고
혼자서 가끔씩 추억해 보고 싶어서인 것을
시집 < 며칠 더 사랑하리 : 집사재 > 중에서
저자의 말
어느 부분에서 우리들은 스스로 느끼면서
자신에게, 혹은 타인 앞에 인정하기 싫은 부분이 있습니다.
서른세살인가 맨처음으로 어느 아이가 < 아줌마 > 라고 불렀을 때
느꼈던 당혹감 같은것이겠지요
요즈음도 가끔 백화점에서 젊은 취향의 예쁜 옷을 쳐다보거나 만져볼때가 있습니다.
싹수없는 종업원은 나의 아래위를 ?어보며 < 누가 입으시게요 > 하고 물어옵니다.
나는 샐샐 웃으며 < 우리 딸한테 선물 하려구 . . 왜? > 하면
그 종업원은 갑자기 친절하게 다가옵니다.
그때 나는 그 종업원을 길게 눈흘겨주며 속마음으로 < 아줌마가 되면 귀엽고 예쁜 옷을 만져보지도 못하냐? > 하며 그냥 지나쳐갑니다.
스무살 종업원들이여 . . 그대도 곧 아줌마가 되어 그런 질문을 받을날이 있으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