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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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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신 2000-10-19

억겁의 색채가 깨져도 고요한 너는 연금(軟禁)이 풀려도 무채색인가. 푸르게 금이 간 자리마다 아직도 남은 여세를 몰아 오묘하게 돌아치는 물여울, 빙빙 휘몰려 부풀 듯 더러 짧은 햇빛에 젖은 숲도 때늦은 철쭉으로 속살을 벗는다. 서녘 빛에 취한 물잠자리 한 마리, 제 자리에서만 첨벙거릴 때 송사리떼 입질들만 실 같은 인연들로 부서지는가. 침묵을 흘려 무심히 사라질 수 있는 돌, 발음의 촉수 밀어올려 아래 위로 대글거린다. 마음의 벽을 뚫는 단단한 모서리마다 산의 인연을 물고 응결된 정점들이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절묘한 무늬로 서기까지 바람과 별이 휘두르던 정적을 보라. 닫힌 가슴 분분이 열어 다가서지 않아도 만져보지 않아도 세상과 무관하게 돌과 흙, 다른 것으로 살아날 수가 없다. 이미 봄날의 바람이 울고 간 자리, 씨앗의 파문 긋는 낮은 땅에 누워 빈 하늘 받고 있을 뿐, 표면 위를 차지한 그리움은 모래알로 시간 풀어 놓는다. 나무 아래 묵묵히 서 있는 일대의 정적, 풀꽃에 감춰진 어둠으로 스러져 내려도 맑게 깨어 날 꿈이 있었으므로, 이름지울 수 없는 것들로 끈질기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으므로 기척을 끊은 적도 자른 적도 없다. 언제나 모습은 별이 빚은 숨결을 빌어 숨쉬고 있어 흙이 가진 심장 하나로 얼굴만 바뀌어 살아날 수 있는 너를 본다. 연금(軟禁)이 풀린 공간에 의연하게 누운 시간을 본다. 억겁의 색채가 깨져도 고요할 수밖에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