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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또는 잊혀짐에 대하여


BY 단목 2000-05-10


네 누워 잠든 곳에서 나와의 거리만큼
그리움은 솔직하지 않다.
영혼의 부스러기 같이 하얀 알약을
서른 알도 넘게 삼켰다는 너는
그 하얀 알약이 다 필요하지도 않을
약한 목숨이었던 것을
알고 나 있었을까.

깃털하나 남기지 못하고
날아갈 맨 몸이
하얗게 표백 되었어도
늦은 가을 맨드라미 꽃 같이
말아 붙은 입술로
이제야 네가 내게서 고갈되어 가야 할
이유를 말하고 있다.

검게 탄 정맥의 연결고리 같은
내 정신의 배고픔으로도
너를 위해 내가 울어 줄 수 없다는 것은
삶을 잘 못 배워
끝내 버리지 못 하리라던 삶의 미련 만큼
너무 쉬운 우리의 목숨에 대한 이야기

내게 남았던 치열한 투쟁의식마저 잦아들고
사기조각에 베인 상처 같은 너를
품고 살아야 하는 내 반쪽짜리 심장.
그리움을 말하려 해도
너와 나 기억의 깃발을 꽂아 둘
땅 한 평 가슴에 가지지 못한 지금
아, 너무도 명확하여라
네가 말하는
우리 종말의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