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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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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문


BY 남상순 2000-04-30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문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

주님.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 버릴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삶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것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엔 친구가 몇 명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내 팔다리,머리,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히 들어줄
은혜를 어찌 바라겠습니까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 줄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주십사 하고 감히 청할순 없아오나
제게 검손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힐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주소서. 저는
聖人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만...
어떤 聖人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건 어쩔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는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들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줄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