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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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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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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처럼 여울지다


BY 오틸리아 2022-09-14

의 기타 소리는 오전 오후를 가리지 않고 잊을만하면 들려오곤 했다
어떤 날은 연주회라도 나가는 사람처럼 어느 한 대목을 줄곧 되풀이해댔다
그럴 때면 온 신경이 기타소리에 쏠려서 막힌 대목이 제대로 풀릴 때까지 다른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하고 덩달아 손가락이 근질거릴 만큼 안간힘이 써졌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취집에서 여름방학을 나고 있는 현실을 내가 굳이 신경 거슬려 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의 존재를 의식하다가는 단 하루도 내 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수시로 울려대는 기타 소리도 차츰 내 일상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끔씩 나도 모르는 새에 기타연주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청소를 하거나 책을 보는 순간도 있었으니
 
무엇보다 곤혹스러운 것은 더운 한낮에도 커튼을 꼭꼭 닫고 지내야 하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이런 생활을 해야 할지 기약은 없지만 김영규가 그토록 신경을 쓰던 일이라 이 머무르는 동안은 저 베를린 장벽도 아닌 뒷집 담장을 가리고 사는 일만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골키퍼 있다고 공이 안들어가냐는 그 오만한 생각을 꺾어주고 싶었다.
 
서울로 간 김영규는 일주일이 되어가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가 떠나던 날 터미널로 배웅을 가지 않은 것은 슬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였고 그런 내 모습을 보게 되면 김영규까지 힘들어질 것 같아서였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교련복을 입은 김영규가 불쑥 나타나 내 볼을 어루만질 것 같고 내 등 뒤에 서서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볼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순길의 덕분에 민주가 우리 집에서 함께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영어가 부족한 민주와 수학이 부족한 나는 서로의 핸디캡을 챙겨주는 동지가 되었고 김영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고마운 존재로 부각되었다.
민주는 부모님과 진로에 대한 생각이 달라 갈등하는 중이었다부모님이 원하는 법공부보다는 의대나 약대 쪽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과 기질이 맞는 민주에게 자신이 하고픈 분야에 도전하라는 충고를 해주던 날 반가운 편지가 도착했다.
 
안녕울보 혜주.
편지가 좀 늦었지많이 기다렸을 거야
나도 서울 오자마자 편지를 쓸 생각이었는데 학원 알아보고 등록하고 또 누님 식구들과 이런저런 일정을 보내다보니 며칠이 지나버렸네미안.
나 없는 동안 별일이나 없는지 조금 걱정이 돼
그날 절대 배웅 같은 건 하지말자 해놓고 사실은 혜주 니가 터미널에 나왔을까봐 두 번이나 버스표를 반환하고 기다렸었어
네 군데의 출입구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혹시라도 너와 길이 엇갈릴까봐 정신없이 돌아다녔지
생각해보니 나보단 혜주가 훨씬 이성적이던걸
어제부터 여름학기가 시작 되서 일선 고등학교나 마찬가지인 수업을 받고 있어
여긴 그야말로 전쟁터야숨소리도 내지 않고 강의를 듣는 옆 사람들을 보면 도저히 나태해질 수가 없다
게다가 매형께서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친구 분을 개인교사로 묶어주신 바람에 잠자는 시간 외엔 온통 공부공부 지옥이야
혜주도 이런 분위기에서 공부를 해야 치열한 경쟁의식을 느낄 텐데 왜 그렇게 고집을 피우고 혼자 남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아.
뒷집 친구는 아무 일 없는 거지그쪽 창문은 꼭꼭 잘 닫고 지내야 해
날씨가 더워서 힘들겠지만 다른 창문들을 열고 그쪽만은 절대 열지 말 것그리고 커튼도 꼭 닫아두기
나 너무 쪼잔한 남자 같지하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해
왜냐면....... 혜주가 무언가에 골똘해 있는 모습을 훔쳐보면 묘한 충동을 일으키게 되거든그건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건데
내가 맨 처음 도서관에서 혜주를 보았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이나 뒷집 친구가 혜주를 보며 느끼는 감정이 아마 비슷할 거야
어쨌거나 지금은 혜주를 지킬 사람은 혜주 자신뿐이니까 절대 흐트러지지 말고 목표점을 향해 정진해 주길 바래
 
그 목표점엔 나 김영규도 꼭 끼워줄 것
 
p.s 우리 학원 스케줄 표랑 책 몇 권 보내줄 테니 참고하고 늘 나와 같이 있는 것처럼 시간표를 짜서 공부하도록.
 
김영규의 편지는 마치 내 옆에서 조곤조곤한 말로 다독이는 느낌이었다.
항상 그렇듯 부드럽고 다정하고 때론 걱정스런 톤의 다독임.
혼자 있었더라면 펑펑 눈물이 났겠지만 아직 김영규의 존재를 모르는 민주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일수 없어 치미는 감정을 억누르며 편지를 닫았다.
편지를 읽는 동안 반가움에서 촉촉한 눈빛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고 민주는 뭔가 짐작을 한 것 같았다.
나의 비밀스런 연애를 순길에 이어 민주에게도 오픈하면서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라는 유대감 같은 것이 생겼다.
민주는 김영규가 의대지망생이라는 것에 상당한 의미를 두었고 나중에 꼭 만나보고 싶다는 의향을 비쳤다
 
길디 긴 장마가 이어졌다
툭하면 빗줄기에 잠깐 햇살이 비치는가 싶으면 다시 이어지는 장맛비가 온 대지를 후줄근하게 적셨다
덕분에 아버지의 손이 필요한 일들이 집안 여기저기서 발생했다
걸레를 서너 개씩 들고 이 방 저 방 창문에 고인 빗물과 구석진 곳에 피어난 곰팡이들을 닦아내는 것이 아침 일상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부엌 천장의 한곳에선 빗물이 새어 커다란 솥단지를 받쳐두고 가득 차면 비우는 일을 여름방학 숙제처럼 해내야만 했다.
 
비오는 날에도 의 기타소리는 여전했다
솥단지에 떨어지는 빗물 소리와 묘한 앙상블을 이루는 기타소리를 들으면서 김영규가 보내온 책들을 열심히 독학해나갔다
그의 편지를 받고 허전함과 그리움에 뒤숭숭해하던 시간들도 차츰 일상 속으로 흡수되어 버리고 나는 다시금 혼자만의 은둔 생활에 적응해가는 중이었다민주가 함께이기도 한.
 
의 기타소리만 아니면 앞뒷집은 온통 정적만이 맴도는 딱 빈집의 모양새였다
박선배가 한번쯤 담장 위로 고개를 내밀고 나를 불러 비오는 날에 제격인 부침개나 칼국수를 먹자고 권유했을 만도 한데 며칠째 인기척도 없는 것이 아마도 농장 집에 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장맛비 덕을 본 것이 한 가지는 있었다
한여름에 꼭꼭 커튼을 닫고 살아도 그다지 거추장스럽지 않다는 것
한참 책에 몰두했다가도 솥단지에 떨어지는 빗물소리가 탕탕거리는 쇳소리에서 똑똑 맑은 소리로 변해가면 그때부터가 나의 쉬는 시간이 되었다
솥단지의 8부쯤 채워진 빗물을 개수대에 버리면서 나는 시계가 없던 시절의 어느 물 긷는 여인이라도 된 듯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있었다
 
그날은 밤 내 비가 쏟아져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하던 날이었다
솥단지로는 감당이 안 될 만큼 거센 비 때문에 아예 커다란 들통을 받쳐놓고 몇 번이나 비워내면서 날을 새고 말았다.
 
건너편 앞산 봉우리에 허연 비안개가 짙게 깔려있었다
며칠 동안 잠잠하던 뒷집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려왔다
그 어수선한 틈새로 간간이 누군가의 울음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그 울음소리 때문에 슬쩍 커튼을 젖히고 담장 너머를 살펴보았다.
 
남자들 몇 명이 분주하게 박선배네 마당을 오가며 무언가를 들어 옮기고 있었다
무심코 그 광경을 설핏 바라보다 막 부엌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서럽게 울부짖는 박선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심상치 않은 울음소리는 뒷집에서 벌어진 상황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내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들었다
 
가슴이 두방망이질하는 불안감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박선배에게 가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교차했다
선배의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남자들의 웅성거림도 점점 커졌다
그 상황이 왜 공포스럽게 받아들여졌는지 모르지만 차라리 귀를 막고 싶을 만큼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방문을 닫고 귀를 막아보았지만 찢어질 듯한 박선배의 울음소리는 이미 내 귓속 깊이에 저장이 되어 줄곧 되울림되고 있었다.
 
내가 환청 같은 울음소리에 시달리고 있는 동안 초인종 소리가 계속 울렸다.
그것마저도 환청일거라 생각하는 중에 이번에는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