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은 마이클을 곧잘 따랐다.
홀홀단신 믿을 사람하나 없는 곳에 무슨 베짱과 용기로 왔는지도
본인조차도 모를 정도이니...
마이클이 얘기설명해 준 데로
숙소 근처에 있는 빅토리아 파크와 퀸 스트리트를 내려가 다운타운 까지의
거리를 하루 종일 걸어다닌다.
한국의 공원과 비교하면 당연히 크기면에서 클 수 밖에 없기에
그 규모에서 놀라면서 푸름은 천천히 공원을 돌아다닌다.
마치 영화에서만 보듯이 공원을 걸어다니면
우연히 한 눈에 반할 외국인이라도 만날 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속으로 내심 웃는다.
이런 한가로움이 얼마만인가.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구름낀 하늘에 비해
나무와 풀들은 짙은 녹색을 띄고있고 공원은 조용하다.
그런 한적함이 푸름은 몹시다 좋다. 마치 이 넓은 공간에 혼자 있는 것 같다.
백펙에서 지낸지도 어느 덧 2주가 지났다.
푸름은 이제 슬슬 백펙 생활이 아닌 방을 각각 나눠서 쓰는 플랫을 슬슬 알아보기 시작한다.
알수 있는 정보가 없던터라 한국인 카페를 활용하여
한국인의 가정집으로 들어간다.
당시 플랫과 쉐어 개념이 없던 푸름은 쉐어로 놓은 것을 플랫으로 잘못 알고
디파짓을 하고 들어가기로 약속을 한다.
방 하나를 가지고 2명이서 같이 공동 사용을 하다보니 이만 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2달간 쉐어를 살면서 왠지 모를 눈치를 보게 된다.
아무래도 같이 방을 쓰는 사람과의 생활패턴이나 샤워부스의 사용도 문제도 있고,
모두들 자는 시간에 나와서 물 한잔을 마시더라도
작은 소음이라도 들릴까 신경을 쓰는 탓에 푸름은 빨리 플랫을 구해서 나가고 싶어한다.
쉐어를 사는 동안에 어학원에 등록하여 정규대학에 입학 하기 전
어학원에서 기본적인 코스를 먼저 밟는다.
불편한 쉐어하우스에 있는 것 보다 할 일없이 어학원에 있는 편이 편했다.
어학원에서 제법 친해진 일본인 친구와 맥주한 잔을 하기로 약속을 한다.
마이클과도 꾸준히 연락을 하면서 쉐어하우스에서 지내는 불편함을 호소한다.
틈틈히 마이클이 하우스 아래로 찾아와준다.
근처의 커피숍에서 커피한잔을 하면서 짧은 기간 사이의 힘듬을 얘기한다.
어느날 마이클이 자신의 친한 동생이라는 '폴'을 소개한다.
푸름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호주에서부터 십년간 유학생활을 하다가 뉴질랜드로
영주권 신청때문에 건너온 젊은 친구였다.
아무래도 푸름보다 언어적인 면이나 이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면에서
더 자연스럽고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푸름은 점점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이클, 폴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한 푸름은 어느 새 자신이 뉴질랜드에 왜 왔는지조차
잊은 채 살아가는 것 같았다.
주변엔 어느새 외국인 친국보다는 한국인들이 늘어나 있고, 한국인 식당만 찾아가고
영어보다는 한국어를 더 많이 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매일 이어지는 술자리가 문제였다.
셋이 때로는 4명,5명이 몰려다니면서 한국인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방을 가고
물론 모든 술값과 노래방 비용은 푸름이 대고 있었다.
푸름도 자신이 그것을 왜 대고 있는지도 모르채 계산을 하는 듯 하다.
어느 날 잔고를 확인하 던 중 푸름은 자신의 잔고를 보고 그제서야 '아차'하는 생각이
든다.
당장 알바를 해야한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실제로 당장 알바를 시작해야 할 만큼 잔고가 텅 빈것은 아니었다.
퀸스트리트를 걸어다니던 중 한국인 식당 앞에 part time을 구인 광고를 보고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자리에서 면접을 보고 바로 일을 시작한다.
"여기 자리 좀 닦아주세요'
"아까 닦았는데요?"
"이게 닦았다구요?"
"네. 아까 정리하면서 다 닦았어요?"
"이게 지금 닦은 걸로 보여요?"
"제가 그럼 닦지도 않은 걸 닦았다고 거짓말 하겠어요?"
"그럼 이 이물질은 뭐에요" 사장이 테이블에 묻은 이물질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얘기한다.
"그거야 제가 어떻게 알아요? 쟁반을 가져다 놓으면서 묻은건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지금 장난해요?"
"아니 제가 분명히 닦았다고 얘기했잖아요."
"나가세요. 당신같은 사람 필요없으니깐 당장 나가요!"
"저도 이런 식당 같은 가게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어요."
알바를 한지 2시간만에 한국인 사장과 싸우고 나왔다.
서러웠다. 한국에선 그래도 능력을 인정받던 대기업 사무직에서 근무하던 푸름은
이런 식당 따위에서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 너무도 한스러웠다.
이제 그녀의 고비가 시작된 것이다.
그녀의 발길이 자연스레 빅토리아 파크로 향한다.
Mp3를 꺼내서 음악을 들으면서 조용히 공원을 거닐면서 생각을 한다.
그때 누군가 말을 건다.
"Hello?"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본다.한 외국인이 푸름의 걸음을 멈춰세운다.
"Are you Japanese?"
"No, I'm Korean."
"Oh, I'm sorry."
"It's Ok."
"I'm Marco. And what's your name?"
"I'm Vivian"
푸름은 그때까지도 그 낯선 남자가 왜 자신에게 말을 거는지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