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재신다 와일더 조회 : 152

마담 엑스 6화

 

 

 

 

#06

 

 

 

“그래, 시간 다 됐어.” 윌리엄이 작게 통화하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 일찍부터 예약을 잡다니 짜증나 죽겠어. 아니, 아버지가 가라고 한 거야. 무슨 시시한 실무 연수 같은 거라더니,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방법이라나 뭐라나. 자신을 제어하는 뭐 그런 이상한 거야. 

 

아냐, 인마. 그런 거 아니라고. 그건 안 돼. 아냐, 진짜라니까.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면 안 돼.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이것도 말아먹으면 난 완전히 끝장이야. 야스민 그년한테 한 짓거리 때문에 지금 아버지랑 완전 살얼음판이야. 

 

그래서 지금은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니까. 

아버지 말 무시하면 어떻게 되겠냐? 공식적으로 회장 자리를 없애고 이사회에 모든 권한을 넘기겠지. 그 노인네가 은퇴해도 한 푼도 못 받아. 벌써 문서 작업 다 해 놨어. 나한테 보여 주더라니까. 아니라고, 이 자식아. 내가 두 눈으로 봤다고. 알겠냐? 판사한테 보석으로 나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한 다음에 그렇게 했어. 아버지가 그거 완전히 덮으려고 돈을 엄청나게 썼단 말이야. 

 

야스민 그년한테 입 다물고 살라면서 거의 50만 달러나 줬다니까. 내 계획? 내 계획은 일단 이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서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린 다음에 다시 제대로 게임을 하는 거지. 회사에,

 

그러니까 이사회에 친구들이 좀 있거든. 그 친구들 말로는 아버지 운영 방식과 안 맞는 임원들이 몇 있다더라고. 내가 한 일이 년 얌전하게 지내다가, 뒤로 손을 써서 꼰대 뒤통수를 한 방 먹일 수 있지 않겠냐. 진짜 제대로 된 쿠데타지. 내가 회사에 들어가기만 하면 말이야. 계획은 완벽해. 다 짜놨다고. 안 돼. 오늘 밤에는 시간 없어. 다른 일 있어. 

 

아니야, 그 계집은 놔 줬어. 비명을 엄청 질러대더라고. 이건 다른 년이야. 선물처럼 아주 꽁꽁 싸놨어. 홀딱 벗기고 수갑 하나만 채워 놨는데, 어찌나 잘 싸 놨는지 재갈 물릴 필요도 없더라고. 됐어, 이 새끼야. 네 도움은 필요 없어. 지난번에 맡겼더니 완전히 망쳐 버렸잖아. 

 

그때 네 놈이 한 짓거리를 떠벌리지 못하게 하려고 그년한테 돈을 얼마나 줬는데. 내가 말했잖아. 그 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 들어, 새끼야. 나 늦겠다. 이제 끊어야 해. 수업인지 나발인지 진행하는 년도 완전 얄짤없어. 그건 나중에 공짜로 실컷 얘기해 줄게. 

 

 

하여간 나 이제 정말 가야 해. 브래디, 잠깐. 너 진짜 우리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알았냐? 농담 아냐. 그년 근처에 조금이라도 얼씬거리면 너 진짜 죽는다. 알았어. 끊어.”

 

 

 

 

나는 문에서 재빨리 몇 걸음 물러섰다. 그러는 사이 심장이 요란하게 쿵쾅거렸다. 다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심호흡하고 집중해. 내겐 갑옷이 있어. 빈틈이나 균열은 안 돼. 냉정하고, 차갑고, 매끄럽고, 절대로 뚫지 못하는 갑옷을 입어. 손가락 끝에 손톱 대신 갈고리 발톱이 달려 있다고 상상해. 독사의 눈빛을 하고, 가슴에 얼음을 품어.

 

 

 

똑똑.

 

 

 

시계를 보았다. 6시 17분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문손잡이가 돌아가더니 문이 활짝 열렸다. 

 

 

“드레이크 씨.”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늦으셨네요.”

 

 

 

윌리엄이 팔을 들고 손목을 털자 고가의 블랑팡 시계가 보였다. 혐오스러웠다. 팔을 들어 올리고 손목을 앞으로 튕기는 동작. 자만심에 가득 차 허세를 부리는 행동일 뿐이었다. 그리고 저 시계는 대체? 30만 달러는 충분히 나가는 시계였다. 미국산 악어가죽, 18K 금, 사파이어 크리스털······.

 

 

 

자신감 없는 부자들이 과시용으로 두르고 다니는 장식품일 뿐, 매력 없는 물건이었다.

 

 

 

“겨우 2분이에요, 엑스.” 윌리엄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자, 그의 향수 냄새에 속이 거북해졌다. 이리 지독하게 냄새를 풍길 정도면 향수로 목욕을 한 게 틀림없었다. 

 

“세상에, 정말 냉정하네요. 뭐 대단한 일이라고. 2분 늦긴 했지만 어쨌든 이렇게 왔잖아요.”

 

 

나는 여전히 두 팔을 내리고 현관문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빳빳하게 든 채 윌리엄을 노려보았다. 

 

 

 

“아니죠,드레이크 씨. ‘어쨌든’은 필요 없어요.” 나는 문을 가리켰다.

 

“이제 그만 가세요. 오늘 수업은 이걸로 끝이에요.”

 

 

 

그래도 윌리엄은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을 정도의 교양은 있었다. 

 

“엑스, 이러지 말아요. 2분이잖아요. 고작 2분 늦었다고 따지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잠깐 통화하느라 늦었다고요.”

 

 

알고 있었다. 이미 들었으니까. 하지만 내 입으로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2분 늦었다고 따지는 사람 여기 있어요. 1분이든, 30초든, 아주 잠깐이든, 늦은 건 늦은 거예요. 당신은 6시 14분에 저 문을 두드렸어야 했어요. 시간 엄수야말로 성공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드레이크 씨.”

 

 

“제 아버지는 이사회 회의에 항상 늦으시던데요.” 

 

 

 

 

현관문에서 안으로 세 걸음 걸어 들어온 윌리엄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이렇게 반론했다.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당신 아버지는 강력한 힘을 지닌 기업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이고, 또 최대 주주잖아요. 그분은 권력자예요. 

 

그 권력 덕분에 회의에 늦게 나타날 특권이 있는 거고요. 이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분이기 때문에 언제든 본인이 원할 때 회의실에 나타날 수 있는 겁니다. 

 

윌리엄 당신이 지금 행사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은 아버지가 주는 돈을 받아서 쓰고 있겠죠. 사람들은 단지 당신을 참아 주는 것뿐이고요. 지시 받은 일을 하고, 오라고 하는 장소와 시간에 맞춰 나타나는 게 당신의 의무예요. 그러니까 0.0001초도 늦지 말아야죠. 

 

당신 아버지가 바닷속에서 가장 덩치 크고 잔인무도한 상어라면 당신은 그저 송사리예요. 안녕히 가세요, 윌리엄. 다음 주 방문 땐 현관문 밖에서 전화기에 대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내 시간을 낭비하기 전에 신중히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제 시간은 당신 시간보다 훨씬 귀중하니까 말이죠.”

 

 

 

세 걸음 떨어져 서 있던 윌리엄이 재빨리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한 손으로 내 목을 움켜잡는 바람에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멍이 들 것 같았다. 내 눈을 바라보고 있는 그

의 두 눈은 분노와 공포, 증오로 가득했다.

 

 

 

“이 쌍년이 뭘 들은 거야?”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눈을 깜박여 보았다. 몸이 위로 들리는 바람에 발가락이 바닥에 닿을락 말락 했고, 하이힐이 발에서 흘러내렸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깜박이는 노란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윌리엄의 팔이나 손목을 잡으려고 두 팔을 허우적거리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렇게 계속 그와 눈을 맞췄다. 그런 다음 의도적으로 시선을 위로 돌렸다. 카메라를 숨긴 천장의 구석 쪽으로. 윌리엄이 나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카메라는 잘 숨겨져 있었으므로 그는 못 보았겠지만 내 의도는 확실히 전달되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윌리엄이 나를 내려놓았다. 나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간신히 다리를 모아 두 발로 똑바로 일어섰다.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이며 목을 문지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당한 태도는 나를 지키는 갑옷이었다.

 

 

 

딩동.

 

 

 

엘리베이터 문이 쉭 소리를 내며 열리자, 윌리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현관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윌리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뒤로 물러섰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건장한 남자 넷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네 사람 모두 검은 양복에 흰 셔츠를 입고, 가느다란 검정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오른쪽 귀에는 이어폰을 꽂았고, 검은 코드

가 셔츠 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저희와 같이 가시죠, 드레이크 씨.”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지만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말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윌리엄에게 정중히 행동하는 건 당연했다. 윌리엄은 수십 억 달러 규모 자산의 회사를 물려받을 상속인이니까. 하지만 그는 내 몸에 손을 댔고, 케일럽은 그런 행동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절대로. 그 누구라도. 만약 윌리엄이 이렇게까지 한심하고 비열한 인간쓰레기가 아니었다면 그에게 동정을 느꼈을지도 몰랐다. 이 사람들은 정말 자비심 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하지만 자비심이 없기로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윌리엄은 숨을 잔뜩 들이마셨다. 심사가 잔뜩 뒤틀려서 입술을 비죽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오지 마, 씨발. 나한테 이러면 안 좋을걸.” 

 

 

 

그러더니 잽싸게 나를 밀치고 지나갔다. 네 걸음 정도 걸었을까. 그는 현관문을 지나 복도로 나가더니 구석으로 사라졌다. 큰 실수하는 거야, 윌리엄. 거긴 카메라가 없다고. 

 

경호원들 중 한 사람이 먹이를 사냥하는 코브라처럼 재빠르게 그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쇠망치 같은 단단한 주먹으로 그의 복부를 가격했다. 윌리엄은 축 늘어진 밀가루 자루처럼 고꾸라져서 바닥을 뒹굴며 끙끙거렸다.

 

 

 

“렌.” 

 

 

 

내가 이름을 부르자 경호원들 중 목이 가장 굵은 사람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나는 손짓을 해서 그를 가까이 불렀다.

 

 

렌이 내 앞으로 와서 뒷짐을 지고 섰다. 

 

 

 

“부르셨습니까?”

 

“저 사람이 아까 문 밖에서 친구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불미스러운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아요.” 

 

나는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켜 보였다. 

 

“저 마이크가 여기서 통화한 소리도 잡을 수 있나요?”

 

렌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저는 무슨 말인지 잘······.”

 

“사람 무시하지 말아요, 렌.”침묵이 흘렀다. 

 

“녹음테이프를 확인해 보죠.” 윌리엄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정말 저질이군요.”

 

“범죄자예요, 렌. 정말 역겨운 짓을 하고 있어요. 여자를 감금하고 끔찍한 짓을 벌이는 것 같아요. 이미 저지르지 않았다면 말이죠.”

 

“이 씨발년이!” 바닥에 쓰러진 윌리엄이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증거 있어?”

 

 

 

경호원 한 사람이 구둣발로 그의 목을 짓밟았다. 광을 낸 구두가 반짝거렸다. 

 

“마담 엑스한테 그런 말버릇은 안 돼지.”

 

“우리 아버지가 네놈들을 가만둘 것 같아?” 윌리엄이 협박을 해보았다.

 

 

 

렌이 코웃음을 쳤다. 

 

 

“세상에는 네 아버지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들이 많단다. 우리 높으신 분에 비하면 네 아빠는 풀 죽은 새끼 고양이나 다름없어.”

 

윌리엄은 이제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흘긋댔다. 

 

“엑스? 매춘부 따위가 무슨······.”

 

 

 

구둣발이 그의 목을 더 세게 짓누르며 숨통을 조였다. 렌이 그에게 다가가더니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꼬맹아,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마구 지껄이면 안 돼. 저기 내 친구들 이랑 나는 그저 체스판 위의 졸병일 뿐이야. 그럼 엑스는 뭘까? 엑스는 바로 여왕이야. 

 

그럼 너는? 너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도 않아. 그럼 네 소중한 아빠는? 네 아빠라면 나이트 정도는 될 수도 있겠네. 잘 봐주면 말이야.” 

 

 

 

렌은 양복 주머니에서 계약서 사본을 꺼냈다. 

 

“그리고 이 계약서는 말이다, 이건 법적으로 효력이 있단다. 너랑 네 아버지가 서명을 했으니까. 그리고 여기 깨알같이 작은 글씨들이 잔뜩 있는데 말이야, 무슨 내용인지 알아? 이 작은 글씨들에 따르면 이 친구들과 내가 징징대는 너를 실컷 밟아 뭉개고 난 다음에,

 

너는 우리한테 네놈의 그 더러운 놀이터를 보여 주어야 하고, 그러면 우리는 널 가장 가까운 경찰서로 끌고 가서 넘길거야. 그런 다음 우리 높으신 분이 네 아버지한테 소송을 제기해서 받아낼 수 있는 돈과 주식을 모조리 받아내겠지. 이걸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알아들······ 이봐!”

 

 

 

윌리엄은 떨고 있었다. 큰소리치며 허세를 부리고 싶었겠지만,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협박당한 적은 없었겠지. 신체적인 고통을 느껴 본 적이 있기나 할까. 온실 속의 잡초 같은 인간. 

 

하지만 렌의 강철 같은 회색 눈동자를 보고 있자면 면도날이나 차가운 금속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그의 눈빛은 그냥 차가운 눈빛이 아니다. 얼음도 차갑고, 겨울도 차갑지. 

 

하지만 렌의 눈빛은 공허한 차가움이었다. 아주 먼 우주같은 차가움. 그리고 영화 〈제로 켈빈〉 같은 차가움. 그래도 생명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먹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표범처럼 언제나 위협적인 눈빛을 내뿜고 있으니까. 하지만 표범의 눈동자에는 핏빛 진실이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법이다.

 

 

 

렌이 내게 말했다.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죠.”

 

나는 이 말을 안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문 옆에 서서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 귀를 기울였다. 듣고 있자니 속이 메스꺼웠다. 퍽 소리, 찰싹 때리는 소리, 으지직 하는 소리. 그리고 점점 소리가······ 질척해지고 있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돌아섰다. 드디어 ‘딩동’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제 다시 혼자였다. 다음 고객의 예약 시간까지는 아직 47분이 남아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차를 한 잔 준비했다. 얼그레이에 우유를 넣었다. 입에 머금은 마지막 한 모금을 삼키자 다시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렸고, 곧 현관문이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고객이 아니었다.

 

 

그의 검은 두 눈이 분노에 잠겨 더 어둡게 빛나고 있었다. 잔뜩 찡그린 채로. 그는 어깨를 거칠게 들썩였고, 주먹을 쥐고 있었다.

 

 

 

“엑스, 괜찮아?” 

 

지평선 위에서 으르렁거리는 천둥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일은······ 불쾌했지만,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침착하게 말했지만 목은 잔뜩 쉬어 있었다.

 

그는 부드럽고 강한 손으로 내 어깨를 붙들었다. 그리고 두 눈으로 내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멍들었군.”

 

 

나는 윌리엄이 움켜잡았던 부분을 살짝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피부가 만져졌다. 내 어깨를 붙든 그의 손에서 조심스럽게 몸을 빼내어 작은 장식용 테이블 위에 걸린 거울 앞에 가서 섰다. 내 피부는 캐러멜 색, 아니 보통의 캐러멜보다 조금 더 진한 빛이다. 쉽게 멍들지 않는 편인데 목 위에 손가락 모양으로 멍이 남아 있었다.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다. 목이 쉬어서 쇳소리가 났다.

 

 

 

등 뒤에서 분노로 달아오른 그의 존재가 느껴졌다. 

 

“망할 녀석, 운 좋았군. 내가 오기 전에 렌이 대신 손봐주었으니.”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윌리엄은 이제 다시 예전의 잘생긴 얼굴로 되돌아가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아니면 예전만큼 건강하게 살지 못하거나. 

 

 

“난 괜찮아요.”

 

“그 녀석 때문에 금전적으로도 손해를 봤어. 적어도 오늘 하루는 당신이 쉬어야 할 테니까. 어쩌면 며칠 더 쉬어야 할지도 모르고. 그렇게 멍든 상태로 고객들을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잠깐의 걱정은 그걸로 끝인 모양이었다. 나는 씁쓸한 기분을 떨쳐내려고 애썼다.

 

 

 

“렌이 녹음테이프를 확인했나요?” 내가 물었다.

 

“당신이 왜 그런 일에 신경 쓰지?”

 

“그 사람이 자기 친구한테 하는 말을 들었어요. 그가 뭔가 꾸미고 있다면 막아야 해요.”

 

“보고서는 만들어 놨어. 경찰이 조사할 거야.” 

 

 

 

내 말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하긴 나도 애당초 카메라나 마이크의 존재에 대한 설명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카메라와 마이크의 존재를 내가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카메라와 마이크는 암묵적인 비밀이어서, 나마저 내 말과 행동이 감시당한다는 사실을 모른 척해야 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모른 척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오늘 있었던 사건은 이런 내 믿음을 충분히 증명해 주었다. 하지만 오늘을 제외하면,

 

 

이렇게까지 사생활을 침해당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고, 시간이 갈수록 더했다.

 

 

 

“내일은 일할 수 있을 거예요.” 내가 말했다.

 

 

 

“이따가 호로비츠 박사가 진찰하러 올 거야. 오늘은 푹 쉬어.” 

 

 

그는 내 귀 뒤쪽의 머리카락 에 코를 파묻었다. 숨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쉬었다. 의도적으로 아주 천천히. 내쉬는 숨에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당신이 괜찮아서 정말 다행이야. 앞으로 다시는 아무도 당신한테 손대지 못할 거야. 이제 고객들을 받기 전에 좀 더 철저하게 조사해야겠어.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안 되니까. 당신이 심하게 다쳤다면 내가 무슨 짓을 했을지 나도 몰라.”

 

 

“아마도 새 마담 엑스를 키우겠죠.” 

 

 

 

말하고 말았다. 신중하지 못한 말. 바보 같고 어리석은 말을.

 

 

 

“다른 마담 엑스는 있을 수 없어. 당신 같은 사람은 또 없으니까.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야.” 확신에 가득 찬 그의 침착한 목소리와 그 대답에 담긴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당신은 내 사람이야, 엑스.”

 

 

“알아요, 케일럽.” 나는 간신히 대답했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력한 내 모습과 이상하리만치 낯선 그의 확신을 두 눈으로 확인할 용기가 없었다.

 

 

 

 

그의 손가락이 내 뺨을 어루만지다가 광대뼈를 향해 올라왔다. 나는 결국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 뒤에 서 있는 그의 검은 머리카락과 넓은 어깨가 보였다. 검은색에 가까운 어두운 눈동자가 거울 속의 나를 꼼짝 못하게 붙들었다. 손가락이 내 목선을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방향을 돌려 목을 감싸는 시늉을 했다. 그는 멍 자국 위에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씩 맞추어 보았다. 손가락이 목에 닿을락 말락 했다. 그 손길은 무척이나 다정하고 부드러

웠다.

 

 

 

“다시는 그런 말 하지 마.”

 

 

“알았어요.” 

 

 

나는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목이 아팠기 때문에, 그리고 어쩐지 더 크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지 못했다.

 

 

거울 위에 새겨진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굵은 팔에 맞게 재단한 진회색 양복의 슬림한 소매. 단추를 푼 재킷. 내 오른쪽 어깨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지만 완벽하게 삼각형을 이루는 진홍색 넥타이의 노트가 티끌 하나 없는 하얀 셔츠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강렬하고 어두운 두 눈동자와 내 목을 움켜잡고 있는 그의 손은 소유욕을 드러내면서도 어딘가 다정해 보였다. 그의 말은 협박이 아니라 약속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었다. 내 목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것이라고.

 

 

 

나는 숨을 거칠게 삼켰다. 거울 속의 나는 이미 혼자였다. 

 

멀어지고 있는 그의 넓은 등과 어깨를 바라보았다. 딸각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자 나는 비로소 참고 있던 숨을 쏟아 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손을 떨며 무릎을 움켜잡았다. 신고 있던 빨간 지미 추 하이힐을 벗어서 거울 앞에 내팽개쳤다. 한 짝은 똑바로 섰고, 다른 한 짝은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가 뱉었다. 한 번 더. 손을 털기도 하고, 주먹을 쥐기도 했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울음이 쏟아졌다. 참으려 해도 멈출 수 없었다. 울면 안 돼. 절대 안 돼. 내가 굴복하면 저 문이 다시 열릴 것이고, 그러면 위로 받으려는 욕망으로 무릎을 꿇고 말 것이다. 마음 한 구석에서 육체적 쾌락의 위로와 위안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혐오스러웠다. 증오였다. 그러니 욕을 퍼붓는다. 그의 넓고 강인한 어깨 뒤로 문이 닫히자마자 내 몸에 남은 쾌락의 기억을 씻어 지우고자 하는 은밀한 충동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원하고 있었다. 이다지도 섹시하고 관능적이며, 원초적으로 육감을 자극하는 탁월한 신체에 내 몸의 반응을 억누르는 건 힘든 일이었다.

 

 

 

소파 위에 놓인 장식용 쿠션을 감싸 안고 까끌까끌한 쿠션 위에 얼굴을 파묻은 채 그저 울었다. 카메라는 뒤쪽에 있다. 그저 소파에 앉아 아침의 사건을 되짚어 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반응처럼 보일 테지.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너무 떨어서 관절이 아플 지경이었다. 쿠션에 눈물이 스며들었다. 혼자 남은 지금에야 갑옷을 벗을 수 있었다.

 

 

눈물을 거의 다 쏟아냈을 때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의 방문에 잠깐이라도 옷을 벗지 않고 끝난 적이 있었는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례적이었다.

 

 

눈물을 닦고 호흡을 가다듬어 평정을 되찾았다. 쿠션을 옆으로 치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털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나약한 모습은 이걸로 끝이다. 혼자 있을 때라도.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48분이었다. 하루 종일 뭘 하지? 내 마음대로 하루를 온전히 쓴 적이 없었다. 이건 분명 아주 값비싸고 귀중한 선물이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진종일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뿐이라면?

두려워졌다.

침묵은 진실을 속삭이고, 고독은 내면을 보여 주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