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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후 11- One More Cup of Coffee


BY CALM 2016-02-14

산 모퉁이를 돌아 내려오다 ,이마에 주름을 잔뜩  모은 '까치'- 하숙집에 있었던 강아지를 고모부가 내 별명으로 부르셨는데 이 늘씬하고 품위 있는 놈한테 좀 미안한 이름이다-가  고모부의 냄새를 맡으려고 하는 것인지  원추리 꽃 사이를 킁킁거렸다. 하루 밖에 살지 못하면서도 꽃말이 '기다리는 마음'인 이 꽃들을 고모부가 심어 놓으시며 꽃대에서 꽃이 계속 나오니'죽어도 죽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었다.  나는 '죽어도 죽지 않는 것은 없다. 그것만이 산 것들에 대한 공평함이리라' 생각하며 고모부 산소 곁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고 서성이는 고모를 기다렸다. 내 재판의 날들에  하얗게 되어버린 머리카락을 틀어 올려,  긴 중국제 젖가락으로 쪽진  고모가 '까치'의 새끼들-'들까치 & 산까치'-을 안고 내려 오셔서 내 옆에 앉았다.            "고모 이제 이 원추리들 뽑아 버려요. 고모부가 계실 때는 잘 말려 독성을 제거 할 수 있었지만... 잘못하면 위험해요.  "이제 고모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내가 원추리의 대를 끊으며 말했다.    "아서라 그것도 생명이다." 고모가  떨어진 원추리 꽃대를 주워 산까치의 귀 뒤에 꽂으려고 하니, 귀찮은지 낮게 요들 송 소리를 내며 제 어미에게 달려간다.       두 여자들은 석양이 지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나는 출옥한 후  한동안 '가시성 시력 장애'라는 진단과 함께  때때로 앞을 보지 못했다.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 볼 것을 다 본 후에 , 볼 것 많은 세상에 나와  뒤늦게 찾아 온 시력 장애를 두고 Dr.Flu는 ' 결국 새로운 세상에 적응 못하는 홀로코스트의 심리적 현상'이라고 고모를 이해 시켰기에  그녀는  내가 한국을 떠나기를 고집하셨다. 

    짙은 가을이 물러나며  오리온이 서쪽 하늘로 사라져 갈 때   전갈 자리로 태어난  내  생일은 엄마의 제사날이기도 하다. 고모는 나의 생일을 양력으로, 엄마의 제사날을 음력으로 상을 차렸었지만 대학생이 된 뒤로는 내 손으로 양력에 엄마, 아빠의 제사밥을 올리고 훌쩍 여행을 떠나는 길을 허락해 주셨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한웅큼씩 빠지자 고모부의 일거리를 구경 시켜 준다며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양수리 요트장이었다. 막 유행하기 시작한  Sun Block Cream 화장품 광고를 찍으려고  당대의 유명 여배우 '장 00' 씨가 요트의 흰 돚 앞에 서서 한 손으로 쏟아지는 햇볕을 가리고 서 있는데 아래 앉아 있는 남자 배우 ' 이 xx'씨가 선 크림을 들어 받치며 우러러 보는 씬'을 여러번 찍으며 사이 사이  화운데이션을 덕지덕지 바르는 것을 보고있자니  선 블락 크림의 성능이 의심스러워졌었다. 하지만 세찬 물결을 거슬러 45도 각도로 저항을 조절해 가며 흰 돚을 폈다 접었다 하는  요트는 의심스럽지 않고 금방 친숙해졌다.  ' 뱃사람의 기질을 타고 태어 낳는지 배를 띄우기 전 제일 중요하다는 풍향과 세기를 제법 잘 맞춘다'고 칭찬하시는  고모부의 말을  옆에서 들으며 고모는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제사상을 물리고 훌쩍 양수리의 선착장으로 달려가는 나를 붙잡지는  않으셨다.' 첫 눈이 내리려나?' 하늘을 자주 쳐다 볼 때쯤이면 그 해의 마지막 레이스 연습을 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는데 올해는  유난히 파리하게 보였던 전갈이 일찍 추위를 몰고 와 호수를 꽁꽁 얼렸기에  대부분의 배들은   서둘러 끌어 올려져 덥개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다행히 불씨가 꺼지지 않은 연탄이 구들방을  데우고 있어 나는 하룻밤을 묵고 갈 계획으로  짐을 풀고, 조갯살 된장에  감자와 매운 고추를  푼  뜨끈한 국물을 밥에 비며 먹으며 한 명이라도 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준씨에게  편지를 쓰려면 혼자 있는게 더 좋다는  생각으로 위안를 삼았다. 안으로 잠그는 자물쇠에 숟가락. 포크. 중 3 속리산 수학 여행 때 사두었던 은장도까지 끼워 놓고 추위를 모면해 볼 요령으로 슬리핑백 안으로 몸을 집어 넣는데 누군가 문을  나직히 두드렸다. 

      "고모, 고모도 이미 아시지요. 의준이가 죽기 전 저와 하루 밤을 같이 보낸 것을..."  고모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내 등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셨다.                                                                                           "현이씨 계세요. 늦은 밤에야 도착하게 되었네요. 저, 의준입니다.  생일이 되면 여기 온다는 말을 들은 것이 기억나서 무작정  와 보았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리어,갈라지는  얼음 조각 소리를 내며  문 사이로 끼어 들어왔다. 나는 잠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렇게 혼자 있었던 밤도, 그 밤 사이에 남자가 들어 오겠다고 한 것도 다 처음이었다. 하지만 우선 문을 열어야한다.     칼바람이   호수 위를 미친 듯이 휘몰아  눈회오리를 만들며 내일 새벽조차 용납하지 않을 기세로 불고 있는 밤이다.     다시 은장도를 빼내고, 포크를 끌어내고, 숟가락을 걷어내고, 자물쇠를 푸는데 한참 걸리고 나니 / 문 앞에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쓰고 서 있는 군용 점퍼의 남자 역시 어쩔 줄 모르고 얼어가고 있었다.  한 낮에도 걸어 들어오기 힘든 길을 걸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몸이 구부러지지 않아 들어오기도 힘든 그를 끌어 들여 놓고, 허둥지둥 양은 냄비에 밥과 찌개를 비며 쩔쩔 끓는 아랫목 슬리핑백  아래에 놓고 따뜻해 지기를 기다리며 무심한 듯 물었다    "혹 탈영했어요? "  "탈영했으면 현이씨를 만나러 안 왔겠지요" 그의  대답에 안심과 서운함을 동시에 느끼는 내가 이상했다. 밥을 한 그릇 뚝딱 비운 그가 배낭 안에서 Px용  커피 가루를 꺼내 놓고 군용 보온 병을 내려 놓았다. 들어오는 입구의 가게에서 얻었다는  뜨거운  물을 밥 공기에 부으니 진한 커피 향이 퍼지며 얼어 탱탱하게 보였던 그의 얼굴을, 서늘한 날씨에 보관해 두었던  연한 포도주 빛을 띠게 만들었다.       "동상이 걸린다해도   이 커피를 꼭 같이 마시고 싶었어요"두 손으로 밥 공기를 감싸고 아주 조금씩 마시는   그에게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내 커피를 나누어 따라 주었다. 한참을 말없이 차가운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그가 Bob Dylan 의 노래를 휘파람 소리로 나직히 불렀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우연히  Frazey Ford의 음색으로 <One More Cup of Coffee >(*URL-Youtube)를 미국 땅에서 듣게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을 흘리며 -그날처럼 눈보라는 휘몰아쳐도  문 밖에는 아무도 서있지 않은 줄 알면서도 - 커피 머신에 자꾸 물을 붓던 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