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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후 10 - 차라리' El Condor Pasa'


BY CALM 2016-02-11

 

내가 의준씨의 장례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검은 드레스를 입었을 때  문 지성이 와서 " SEXY 한데, 나도 참석할 예정이니 같이 가자"고 했다. 이런 부류들 - '가미카제 정신으로 애국을 하고, 생체 실험으로 의학이 발달하고, 강간 당하는 여자들도 희열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는 감성의 소유자들' 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존재하고 떼어 놓고 살 방법도 없다는 것을 나는 책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곰팡이가 낀 의자에 같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때때로 이들이 온 세상 천지를 검은 곰팡이로 물들이며 그것을 '문화'라고 부르도록 강요해도 어쩔 수 없는 시대에는, 애국이 목덜미 뒤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문신 같아야 '안녕'이 되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날의 장례식은 괴이한 비참함이 배인 분위기에서 치루어졌다.  월남전에서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어머니가 키운 3 아들 중,큰 아들은 동생들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었고 연년생인 의준씨와 동생은 명문 대학에 차례로 들어갔다.그리고 제대 2달을 앞두고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다.식구들이 군대에서 연락을 받고 갔을 때는 이미 시체 처리도 다 되어 그 '없다' 였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영정 사진을 붙들고, "우리 아들은 자살할 이유가 많습니다.이래서... 저래서..." "그러니 여러분들은 이 사실을 그대로 믿고 공부나 하셔야 합니다" " 절대로 이 일로 다치는 학생들이 나오면 안됩니다" "나에게는 아들들이 둘이나 남아 있습니다..."  사시나무 떨 듯 와들와들 떨며 말하는 이 처참한 절규는 성황당에 걸린 얇은 흰 광목 천들이 되어 광풍에 미친 듯이 찢어지며 생 피가 터지는 아픔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이 영결식에서조차  낯선  청바지들과 눈빛을 교환하는 문 지성의 선량해 보이는 눈이 하이에나를 닮은 것 같다고 생각이 든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훗날, 소매치기로 들어왔다는 교도소 동기에게 사람의 눈빛에 대해 물으니 " 야 이 겉똑똑이야 내 눈을 좀 봐. 우리 부모가 부처도 흉내 못 할 눈깔을 주었는데 문제는 짝이 안 맞는 마음도 싸질러놔 별을 6개 달고도, 손이 근질근질해 죽겠는데… TV에 나오는 높은 양반들 눈깔 변하는 것 못 봐?” 하더니 자애로운 눈빛으로 내 양말을 꺼내 신었다. 

형사들이 다녀간 후 주인 집 아줌마는 내게 나가줄 것을 요구했었는데,  문 지성이 다녀가자 갑자기 다시 살뜰한 하숙집 아줌마로 돌아서 내 방의 연탄불까지 살펴 주려고 들어와 " 공부만 하는 줄 알았는데 남자도 잘 물었네, 학생 방 문을 차던 형사가 앞 집으로 들어가며 부장님/ 부르는게... 나이도 아직 새파랗게 보이는데 끝발 센 것 같던데... " " 아이구 이 연탄 좀 봐 활활 타오르던 놈이 밑에 붙어 있으니 제 아무리 새 연탄이라도 별 수 없지 / 여자 팔자 잘나야 거기서 거기지 서방에 달린거야 / 이것 좀 봐 밑의 놈은 불씨 하나 없는데도 딱 달라 붙어 떨어지지도 않아" 날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자기 한탄인지 계속 궁시렁거리며 연탄집게로 두 연탄재를 뻐개며 나를 계속 힐끔힐끔 쳐다 보았다. ' 이사를 하고 싶었지만 문 지성의 정체를 알 때까지는 이 집이 좋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나는 주인 아줌마로부터 그가 주었다는 명함을 볼 수 있었다. 

[<太光全. 業土 > 전화  XX 0516-1212 부장 문 주성] 이 명함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띄어쓰기의 오류와 오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기도의 어느 막다른 골목에 있는 그 회사를 찾았을 때 내 짐작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분명 <太光全. 業土 태광전. 업사>라고 회사 간판이 품질 좋은 송판에 새겨져 있었고 공중 전화에서 전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엔서링 머신만 돌아가고 있었다.               나각산으로 돌아가기를 차일피일 미루시던 고모는 나보고' 더이상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대신 '고모와 고모부가 있는데 명목 뿐인 후견인 - 그당시는 외국인이 후견인이 될 수 없었다 - 이 왜  필요하냐'고 화를 내었던 'Lago Sinclair' 수사님의 주소를 찾느라고 아버지의 유품함을 밤새도록 뒤적거려 '이 아이에게  칠레의 Almaviva (*살아있는 영혼이란 이름의 와인)를 직접 마시게 할 수 없느냐’는 은유적인 편지를 보냈지만 나의 영혼은 포도주를 마실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훗날 수사님을 만나, ' 우리는 후견인과 피후견인의 사이가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인간 탐욕의 저당물이었다'고 하니, 수사님은 웃으시며 '저당물이 아니라 '저항인 ' 이라고 정정 하셨다.

고모는 장례식 이후 내 눈빛이 달라졌다고 하였다. 나는 내 눈빛을 '까칠한 고슴도치'에서 고모가 다달이 주인집에 웃돈까지 얹어주며 들여논 <조용한 사냥개-Basenji>를 닮아 보려고 했다.  오래전부터 사냥에 쓰여진 본능으로 잘 짖지 않는 이 개의 눈은 아몬드 빛으로 아득한 들판의 자유를 그리는 것 같이 몽롱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사냥물이 정확한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자칼이 된다고 했기에...그러나...... 나는 실패했다. 나는 자칼이 아니라 털빠진 고슴도치가 되어 올무에 걸려들 날을 앞에 두고 있었다.

나를 다시 찾아 온 문 성에게 “오빠 이름이 명함에는 왜 성이냐’ 고 묻자 그는 간단히 대답하였다. “군을 섬기는 은” 나의 하이에나는 아마도 괴멜스(*독일 나치 시대의 총리)가 꿈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30 년을 뛰어넘어 하늘을 관측하며 한 계단씩 올라가는 인내심을 가졌을까? 고모부는 나의 출옥도 기다리시지 못하셨는데... 고모부의  무덤에 단감를 깍아 놓으며 고모가 말했다. '시대적 묘사만 다르지 어쩌면 이렇게 사람 사는 모양새가 같으냐, 저 웃동네 누워 있는 문선공 몇 대 손 인가도  귀향살이에 억장이 무너져 죽었다든데 네 고모부가 너를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에 깍은서방같은 고등학교 후배를 만났는데, ‘언론통폐합’이야말로  올림픽을 앞두고 국론분열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고 시끄러운 언론인 몇 명만 날리고 오면 자리 하나 만들어 주겠다며  명함을 준 것을 찢어 버리고 온 후로 다시 너를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시겠다는 꿈만을 빈 소라 껍질 속에 불어넣다 끝내 오토바이를 세우지도 못하시고 돌아가셨다'고 하셨다.. 이때 고모부가 로고 테라피를 받으셨다면 사실 수 있었을까?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멈추고 삶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에 대답하라   

를 권하는 Dr. Flu 에게 ' 간단하게 말해 -의미는 없어도 그냥 살아라-에, '기대'까지 덤으로 얹으라는 것 이라면 차라리' Simon & Garfunkel'의 <El Condor Pasa>(*URL-Youtube)에서 위안을 얻겠다고 해서 그의 얼굴을 테라피가 필요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