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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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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후 9 - ' Words, Don't come easy to me'


BY CALM 2016-02-05


포츠 머리에 착 달라붙는 청바지 그리고 흰 운동화의 백골단 2명이 핏발 선 눈으로 내 앞에 섰다. 그때, 막대기 두 개의 군인이 나와의 팔장을 풀며 말했다. "내 가방에서 기차비 좀 꺼내줘, 대한민국 육군 체면이 있지...수원 두 장이요"    빡빡이 둘 중 하나는 사라지고 나머지 하나는 개찰구 철봉에 걸터 앉아 우리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일등병은 가방을 다시 둘러메며 내 손을 잡고 때마침 경적이 울리는 풀랫폼으로 뛰어들어 갔다. "집이 어딘지/ 다음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면 통금(*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 금지) 전에... 아참 이제 통금이 없어졌지요. 아직 전방에는 통금이 있어서..."라고 말하며 내가 기차에 오르도록 손을 내밀어 준 그의 명찰에는 '이 의준' 이라고 써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수원 가세요?" 그는 대답 대신 자기 손에 들려 있는 기차표를 들여다 보았다. 아까 손을 잡을 때 느꼈지만 크고 투박한 손이다. 지성 오빠가 기타로 조개 껍질을 묶으면 (*윤형주의 노래) 여자 애들이 넋을 놓고 쳐다보던 하얗고 고운 손과는 다른 이 사람 손을 부지중에 잡고 뛴 것이 생각나 내 손을 얼른 스웨터 호주머니 안에 감추었다.   '조금만 더 가도 되겠지. 어차피 수원까지 끊었으니 거기서 내려 어떻게 해보자.' '내 차비를 갚으며 고맙다는 말을 하자. 그리고 무사히 복무하시고 제대하세요 라고 말하며 악수를 하자. 그리고 바이 바이... '        나는 늘 가지고 다니는 워크맨을 틀어 <Words, Don't come easy to me>(*URL-Youtube) 흘러 나오는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군인 한 명이 내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의 어깨에는 총이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총을 팔려고 하는 걸까? 나는 고모부의 허리 띠 값을 지불하고  총을 샀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쏜 것 일까?  흰 눈밭에 선혈이 낭자하다. 총을 숨겨야한다.  마침 눈무덤이 옆에 있다. 그곳에 총구가 하늘로 향한  칼빈 총을 비석처럼 세우고 도망치려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보세요, 보세요. 일어나세요" 조심스럽게 흔드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차창 밖은 청명한 아침 햇살 아래  느티나무들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 너무 곤하게 잠이 들어, 혼자 두고 내릴 수도 없고, 차표는 동대구까지 연장했습니다." 그는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모자를 벗고 고개를 연신 꾸벅 거렸다. " 그쪽은 이 의준씨 /내이름은 한 혜현이예요. 현이라고들 부르죠. 사실, 내 친구들은 나를 '까치'라고 불렀다. '까칠한 고슴도치'라는 뜻이다. 하지만 아까 서울을 떠날 때 나는 도치의 가시를 벗어 놓고 왔다. 그리고  내친김에  1미터 80은 되어  보이는 이 사람에게 말했다. " 구미에서 내려서 갈 데가 있어요. 다른 중요한 약속 없으시면, 여기까지 왔는데 '상주' 곶감도 먹고  '나각산'의 뽕잎 밥에 간장게장은 먹고 가야지요. 우리 고모-엄마네 집이 나각산 자락에 있어요. 전화하면 고모부와 고모가  자동차에 '산불 방지' 깃발을 달고 구급차보다 더 빨리 나타나실 거예요." 어리벙벙해 있는 이 남자의 배낭을 내가 다시 메고  " 이 열차는 잠시 후 구미 역에 도착합니다 내리실 분은 미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의 안내 방송을 들으며 그의 팔을  잡아 끌었다. 구미 역은 방금  증축을 마쳤는지 여기저기 축하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고  온갖 광고가 풀풀 날리고 있었다. 밤 기차 역에서 내리면, "들어 오이소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묵고 쉬었다 가이소" 손님을 부르는  평상 위 아이들의 반 잠꼬대 소리도, 역 주위에서 단감 꾸러미를 흔들던 할머니들도 신축 지하 세계에 빠져버렸는지 다 사라지고 없었다. 

Edgar Allen Poe의 'Annabel Lee'  원문을 외우는 것을 돕겠다고   까만 롱 드레스를 입고 'Annabel'이 차가워지며 죽는 장면까지 연기하던 고모가 월남전 끝나기 전에 입었을 것 같은 월남 치마에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매고 빨간 새한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고 나타나 우리 둘을 차에 태우자마자 20X2 고개를 시작 하였고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계신 고모부도 연신 고개를 끄덕 거리며 " 음,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지, 건강하게 생겼구만, 밥 먹고, 소라 바위까지 누가 빨리 오르나 해볼까?" 하시다가 고모의 눈총을 받았지만, 사람 사는 집이 된 것 같다며 좋아 하셨다.  언론 통폐합의 울분을 나각산의 소라 골짜기에 대고 소리 지르기를 멈추지 않은 덕분에 고모부의 건강은 나아지는 듯 보였다. 고모가  장학 퀴즈를 하는 아나운서처럼  차곡차곡 물어보는 통에, 이 사람이 3남의 둘째이며 막내 동생의 학비 부담을 덜기 위해 휴학 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군대에 입대한 나보다 2살 많은, 애인이 없는 K 대학 공대생인 것을 알았다.  "이등병을 달고 나온 첫 휴가에..."라고 씩 웃는며' 형님과 함께 살고 계신 홀 어머니께서는 아직 자신의  깜짝 휴가를 모르고 계신다'고 덧붙였다. 고모는 ' 이 죽일 놈의 세상에 딸이나 마찬가지인 조카를 돌봐준 귀하신 분인데 아침겸 점심을 대접해야 한다'며 내가 우려했던대로, 씨암탉을 잡겠다고 옆 집 할머니를 부르러가고,고모부는 약수를 뜨러 가셨다. 나는 전혀 나답지 않았던 조우의 유난스러운 환대가 쑥스러워 '우리 집에는 씨암탉이 넘쳐 흘러 처치 곤란이었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나는 씨암탉이 어떤 닭인지 모르고 있었다.  혼자서는 딸 수 없었던 홍시를 같이 따며 내 볼이 홍시처럼 붉게 보일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황금 빛 저녁 노을이 흐르는 낙동강을 함께 바라 보았다. 그는 임짐왜란 당시에 황산강으로 불리었던 낙동강에 대한 '한음 이 덕형의 한시 [ 우거진 명승지가 전쟁터로 변하였으니][다시 온 요학은 홀로 마음 아파하네][강산은 인간의 한을 상관하지 아니하고][옥거울 강과 눈썹 같은 산이 석양을 짝하네]  나직히 읊으며 또한번 보기 좋은 웃음을 보였는데, 자작 한시로 수업료를 대신 할 수  있는 훈장 할아버지 덕에, 한시를 서예로 배우며, 외우게 되었다고 했다. '먹을 갈며 잡는 마음의 평정'이 글의 힘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벼루로 발등을 으깼던 이후로 엄두를 내지 못했던 나는, 짙은 먹을 갈아 여고 때 외운적인 있는  '오성  이항복'의 '철령 높은 봉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로  화답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그러나 한음의 시를 칠흑의  청송 광덕산 절벽 아래 흐르는 반변천을 바라보며 읊게 되고 오성의 시를,  철령을 굽이쳐 흐르는  한탄강에  풀게 될 줄 그때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와의 늦은 밤 상행선 기차는 내가 수녀원의 <순명>을 지키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게 하였지만 수원성 돌담길을 자박자박 오르는 내 발걸음과  보폭을 맞추기 위해 땅에 떨어진 단풍잎을 자주 줏어 드는 그를 보며 <믿음>은 함께 지킬 수 있을 것 같다는 나만의 기대를  <효원의 종각>(*서장대 밑 기원의 종) 소리에 가만히 날려 보내며 지키지 못하는 서원이 먹구름으로 변할까 / 가을 바람에 약간 몸을 떨었었다. 고모는 극구 사례를 사양하는 그에게 작년에 말려 두었던 곶감을 꺼내, 모양이 눌리지 않게 찬함에 담아 그의  배낭에 넣는 것으로 차비와 아들의 늦은 귀가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 하였는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찬함을 찾아가야 한다는 이유로 상경까지 하여 아직 귀대하지 않은  그와의 시간을 꾸며 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대성산(*철원) 나각산, 백악산( *청와대 뒷산.안국동과 멀지 않다) 을 잇던 아슬 아슬한 그와의 인연는  제대 마지막  두달을  앞두고 그의 '자살 통지서'로 막을 내렸다. 그가 남들보다 자주 휴가를 나오며  대학가의 정보를 수집하여 군대에 가져다 주어야하는 <녹화사업>에 투입되었다는 것을 온 몸을 떨며 고백한지 다섯 달 만의 일이었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이 고백을 들은 그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남을 수 있게 도우려고 했는데, 나도 무언가는 하고 싶었다.        무슨 무역 회사에 다닌다는 문 지성이 갑자기 나타나, 나를 보호한다며 고모에게 꼬치꼬치 내 신상에 대해 물은 후, 의준이가 무사히 군대 생활을 마치려면 대학의 차기 총학생 명단쯤은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며 -'총학생 명단이야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 이지만, 그래도 성의 표시로 들고 들어가라'- 건네준 명단의 학생들이 줄줄이 '00 해양 연구소'로 끌려 들어가 피 딱지가 온 몸의 피부 껍질이 되어 돌아온지 며칠 안된 날 밤, 그가 '자살'을 하였다고 그들이 발표를 한 날짜는 이상하게도 내가 그의 죽음에 대하여 들은 날보다 열흘이나 늦었다. . 나는, <'절단되어 없는 다리가 아프다'고 끊임없이 호소하게 되는 인간 '뇌'의 오작동에 대한 논문-환상 사지>을 번역하여 번 돈으로  제대 마지막 면회에 바리바리 싸가려고  고모와 함께 무지개 떡을 예쁘게 썰고 있다, 가죽 잠바들의  방문을 받았고 그들은 내 이불 호청까지 뜯으며 그의 소지품을 찾았지만 허탕을 치고 돌아갔다 실상, 의준씨는 내 집 앞에 와본 적도 없게 조심하였고, 외출 나오면 고시원에서 잠을 잘 정도로 떠돌며 제대할 날만을 기다렸었다.  가증한 폭력 위에 개인적 시기심까지 끼어들지 않게 조심하기 위하여 그와의 편지는 늘 간결할 수 밖에 없었는데 편지지 행과 행 사이의 여백에 있는 가파른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얼마 안 남았어요. 안 남았어요'했건만 끝내 그는 '함께 나각산의 구름다리를 건너며 낙동강에 관한 한시를 읊어 보기로한 약속'을 지킬 수 없는, 빈 무덤으로 돌아왔다.  나는 문 지성을 만나 소리치며  울부짖으며, 오빠와의 인연을 증오한다고 말했는데, 문 지성은 웬일인지 조용히 내 말을 다 듣고  '의사도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판사도 오판으로 사람을 죽이지만 메스나 판결 망치를 휘두르는 사람들은 그 자격으로 비난을 벗어 날 수 있으니 너도 그 자격이나 열심히 공부해서 취득해라'고 말하며 새 이불을 사라고 돈을 놓고 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떼어 낼 수 없는 <환상 사지>가 오버랩 되었다. 나는 그 돈으로 문 지성이 출세하고 있다는 무역 회사를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