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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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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후 4 - 그의 손이 떨렸었는지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BY CALM 2016-01-16

직히 나는, 뒤죽박죽 기억을 섞고 있다. 이것은 내 뇌가 저장과 출력에 미필적 고의의 실수를 저지르며 완강히 반항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내가 새삼스레 기억을 끌어올려,이미 오래 전에  메꾸어진 우물 속의 흙을 파내려고 하는가/ ' 안녕, 오랜만이네요.살아있으니 이렇게도 만나네요. 그렇게 하고 싶은 교수가 되었고, 장관도 바라 보는 것 보니,퇴락한 가문을 일으켜 세우셨나 봐요 아/ 그런데 중국에서 황사가 불어 걱정이 크시겠어요. 그토록 고군분투해서 이루어 놓은  청정 하늘인데.요즈음은 어느 나라 마스크가 좋은지 모르겠네요.그때 내 하숙집에 놓아 두고 가 증거품으로 둔갑한 일제 마스크가 여전히 좋은가요? 안녕히 가세요'로 브레이크를 눌렀어야 했는데 차는 Chicago의 얼어붙은 옥수수 밭을 지나 눈으로 백야를 이룬 Wisconsin의 산등선을 오르고 있었다.

" Song, 사야 할 집이 있어, 집 주인이 중국 사람인데, 꼭 동양 사람에게만 팔고 싶대, 물론 부동산 법에 따르면 불법이니,우리들끼리의 사정이야"  Dr. Flu가 내게 보여준 집은, 집이라기 보다 별장에 가까웠다. 뒤로는 산을 끼고  앞으로 Lake Geneva 에 개인 보트를 띄우는 주민들의 대부분은, Eagle Tower에 오르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뜸해질 때 쯤이면  저마다의 차에 보트를 매달고 사라졌다가 Violet(제비꽃-위스칸신의 꽃)들이 나지막히 올라오는 고속도로 옆 산을 바라보며 반 년 만에 되돌아오면서도, 집들을 주식 단지로 묶어 아무나 들어 올 수 없게 만들어 놓았었다. 내게 집을 팔고자 하는 중국계 미국인 'Jang'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시카고 대 화재 뒤에  바둑판 모양의 도로를 만들고 초고층의 야망의 건물들을 세우기 위한 값싼 노동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이민선에 몸을 싣고 들어와  온 식구가 석재를 나르느라 등이 꼬부라지고 , 핏물이 밴 손 안에 들어온 돈들을  하나 둘씩 Gold Bar로 바꾸어 두어 훗날 'FRB-연방준비 은행'의 그물을 피할 수 있었다.  그의 늦둥이 아들이 시카고 대학교 초창기 입학생이 되었을 때, 차이나타운 입구의 붉은 등에 '이제 우리의 피와 땀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는 붉은 천을 매달아 놓았었고 자기도 그 천을 휘감고 아버지와 같은 동문이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세계 경제를 좌우하던 ' 시카고 선물 거래소'에서의 일을 은퇴하고 자식들과의 추억이 있는  이곳에 집을 마련하려 했을 때, 그는 집을 '돈'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했는데, 그것은 마을 주민들이 이 면접 저 면접을 보며 차일 피일 미루다가 다른 합당한 오퍼가 들어 왔다며 퇴짜를 놓기를 반복 하더니, 신문에 이름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당시의 거물 친구 몇 명이 동무 삼아 면접을 같이 본 후에야 허락이 떨어졌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심심치 않게 아시아인들을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세월 주민들의 눈총이 얹힌 이 지붕 아래, 아시아인을 재우고 싶다고 말하며 눈물이 그렁 그렁한 할아버지를 외면하지 못하고 Dr. Flu와 동업으로 이 집의 주식 계약서를 작성하였지만 공동관리 책임인 외관을 제외하고는 손 본 적이 없어, 얼마 전  중국 본토에서 영어를 가르치다 돌아가셨다는  'Jang' 할아버지의 부고장이 들어있는, 중국 도자기가 제일 반짝거리고 있을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금  내 옆자리 남자의 정체는 그때 무엇이었을까? 정말  '남영동 소속' 이었을까? 선한 눈 빛으로 밥을 퍼주며 "배고프면 아무 생각도 안나, 우선 먹고 생각해보자 네가 왜 그곳에 가야 했는지...'

내 국밥 숟가락 위에 잘게 썬 김치를 얹어주던 그의 손이 떨렸었는지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