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캠과 CCTV는 저 혼자 잘도 작동한다. 화면에선 애니민들의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그대로 나타난다.
“으하하하하······.”
애니가 자지러지게 웃는다. 애니의 웃음이 모두의 가슴을 겨냥하여 꽂힌다. 하지만 애니민들도 더는 겁내지 않는다. 며칠을 그렇게 보낸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애니가 목에 칼을 겨눌 것도 아니다. 삶의 기본은 살아있음이다. 그 말을 가슴에 꼭꼭 새긴다.
“뫼?”
“왜?”
“내일 토끼몰이 어때? 할 일도 없는데 지루할 거 아냐?”
누린 뫼를 컴퓨터에서 떼어놓을 생각으로 토끼몰이를 입에 올린다. 뫼도 마땅히 할 일이 없다. 토끼몰이라도 해야 지루함을 털어낼 수 있을 거 간다.
“좋아.”
누리의 제안을 뫼가 흔쾌히 받아들인다.
“나는? 나한테는 왜 안 물어?”
이든이 입을 삐죽이며 누리에게 따진다.
“너야 당연히 갈 거잖아? 한데 내가 힘 빼면서 왜 물어?”
누리에게 이든이 되레 당한다. 당해도 나쁘지 않다.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버들이 아미에게 기댄다. 아미가 팔로 버들을 감싼다.
“우리 지금 연기하는 거지?
“생각보다 괜찮네.”
“나 연기 아닌데? 정말 내일 토끼몰이 갈 건데? 뫼? 이든? 정말 가자고?”
누리가 뫼와 이든을 콕콕 찌른다.
“알았어. 정말 간다고.”
“넌? 이든 넌 왜 말이 없어?”
“당연히 갈 건데 내가 힘 빼면서 왜 말해?”
이든이 누리에게 당한 걸 그대로 되돌려준다.
“앙갚음하겠다고?”
누리가 이든과 툭툭 치고받는다. 뫼는 고새 애니와 이균에게로 생각이 옮겨간다.
뫼의 머릿속을 애니가 끊임없이 지나간다. 이균의 작업실도 지나간다. 뫼는 밤이 깊어지길 기다린다. 애니도 사람이다. 잠은 자고 살 것이다.
침대에서 슬며시 일어난다. 바탕화면에 깔린 폴더를 열어 네 번째 아이콘을 누른다. 몸이 빨려 들어간다. 이균의 작업실이다. 어둠이 가득 고여 있다. 겨우 손을 더듬어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켠다. 밤이라는 게 조마조마한 마음을 거둬간다. 편히 앉아서 차근차근 안을 들여다본다. 컴퓨터는 10여 일 전까지의 자료뿐이다. 느낌이 이상하다.
컴퓨터를 통째로 복사하여 서버로 전송한다. 그런 다음 서둘러 일어선다. 애니가 잠자는 시간을 이용해야 한다. 서두른다. 아이콘을 클릭하고 빠져나가려는데 다리가 묵직하다. 내려다본다.
“도와줘!”
꼭 앓는 소리 같다. 입에서 비명소리가 나온다. 허겁지겁 다리를 빼내려 한다. 한데 젖 먹던 힘까지 짜내고 있는지 움켜쥔 팔을 풀지 않는다.
“도와줘!”
“다리부터 놔줘요.”
이균이다. 애처로운 눈빛만 보낼 뿐 풀어주지를 않는다. 뫼도 그런 이균을 막무가내로 밀어내지 못한다.
“미안해. 도와줘!”
“다리를 풀어줘야 도와주든 말든 하죠?”
이균이 팔을 푼다. 그는 겨우 벽에 기대고 앉는다. 뫼가 마지못해 그 앞으로 가서 쪼그려 앉는다.
“놈이 날 가뒀어.”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더는 버틸 수가 없어.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어. 도와줘!”
겨우 입을 딸싹거린다. 왠지 측은한 마음이 든다. 낯설지가 않다.
“놈이 벽 저 쪽에서 잠금장치를 수동으로 걸어놨어. 그래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이균이 좀 살아난 목소리로 차분히 말한다.
“그걸 풀면 되나요?”
“응. 그리고 올 때 물하고 먹을 것 좀.”
“알았어요. 기다려요.”
일어나려는데 이균이 다시 다리를 잡는다.
“날 버리지 마! 내 멋대로 니들을 만들어 내고 골탕 먹이고 해서 미안하다.”
“알았어요.”
뫼가 서둘러 빠져나온다. 하지만 망설여진다. 더는 숨길 수도 없다. 혼자 알아서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 머뭇거려진다. 이균의 애처롭던 눈빛이 자꾸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