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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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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목숨을 건 맞섬43


BY 한이안 2016-02-29

생뚱맞게 웃음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어. 허탈했나?”

현실? 현실. 들이 혼자 현실을 입에 올리고 씹어댄다.

나가고 싶어?”

글쎄.”

들이 얼버무린다.

아줌마 말은 잊자! 아줌마도 마지막엔 아니라는 식으로 얼버무렸잖아.”

뫼가 이선의 말을 곱씹으며 말한다.

그게 낫겠지? 현실로 나갔다가 놈들에게 잡히면 달아날 곳도 없어? 그래, 니 말대로 그건 못 들은 걸로 하자.”

들도 뫼와 같은 생각이다. 삶의 기본은 살아있는 거라는 이선의 말에 백 번 공감한다.

애니를 찾아야 해. 아무래도 놈이 수상쩍어. 아줌마 말을 듣고 보니 놈이 이균의 속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움직이지 않으면서 작품을 관리하고 있는 걸 보면 우리 삶도 꿰뚫어보고 있을 거야.”

그럼 이균의 꼼수에 넘어간 게 아니란 말이야?”

그건 아닌 거 같아. 그걸 뒤집을 뭔가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노리고 있는 사람치고는 너무 오래 잠잠해.”

어떤 꼼수가 있는 거겠지. 마지막 순간을 노린다거나. 아님 낚아챌 기회를 엿보고 있다거나. 어떤 쪽이든 놈의 목표는 우리야. 지금으로선 애니와 이균 둘을 모두 계산에 넣고 대응해야 해. 양쪽을 상대하는 게 버겁긴 하지만 나도 이젠 내성이 생겼나봐. 처음처럼 그렇게 겁나거나 하지는 않는 걸 보면.”

우리 모두가 그래. 단련이 된 거겠지. 한데 어디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아?”

들이 촉각을 곤두세운다. 뫼도 긴장한다.

이균의 작업실이야.”

통로 같기도 해.”

놈이 뭘 하고 있는 거지?”

둘 다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화면이 마구 흔들리고 있다.

드디어 해냈어.’

애니의 목소리다. 흔들리던 화면이 멈춘다.

해냈어.’

이균의 목소리도 이어서 들려온다.

이전 상태로 복구했어. 한데 이균은 뭘 해냈다는 거지?”

웹캠과 CCTV관련 프로그램이 다시 작동하고 있어. 그걸 삭제해!”

들이 다급하게 외친다.

삭제가 안 돼. 우리 컴퓨터를 놈들이 장악했어.”

뫼와 들의 마음이 다급하다. 마우스를 마구 굴리고 누르지만 헛수고일 뿐이다.

우리 컴퓨터를 박살내면?”

우리가 증발돼버려. 그건 안 돼. 통로를 열고 이균의 작업실에 갔다 와야겠어.”

그건 위험해.”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이대로 있으면 죽음이야.”

들이 말릴 틈도 없이 뫼가 네 번째 아이콘을 클릭한다. 그의 몸이 빨려 들어간다. 눈 깜짝할 사이 이균의 작업실 안이다. 이균은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벽이다. 이전처럼 그 안엔 달랑 컴퓨터 한 대만 놓여 있다. 바로 컴퓨터로 달려간다.

바탕화면이 아이콘들로 가득하다. 지난번보다 더 늘어 있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마우스를 쥔 손이 떨린다. 초조하고 불안하다. 이상한 게 눈에 띈다. 얼른 열어본다.

이게 뭐야?”

깜짝 놀란다. 애니민이 7명으로 늘어있다. 애니민을 하나 더 보내줄까 하던 이균의 말이 떠오른다. 이균의 노림수에 걸려든 느낌이다.

돌아가자! 빨리 돌아가야 해.’

서둘러 아이콘을 누르고 되돌아온다. 화면 앞에서 들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뭔 일이야?”

뫼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들이 부들부들 떨고 있다.

화면에 우리가 깔렸어. 삭제가 안 돼. 빠져나갈 수도 없어.”

내가 할게.”

뫼가 들에게서 마우스를 돌려받아 화면을 닫으려 한다. 한데 화면에서 생뚱한 녀석이 히죽 웃으며 걸어 나온다. 이균의 컴퓨터 자료에서 본 그놈이다.

얘는 누구야?”

이균이 말했던 그놈. 7호 애니민.”

힘이 빠진다. 그래도 주저앉지는 않는다. 이내 차분함을 되찾는다. 최악의 상황이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도 아니다.

니가 자료를 보냈어?”

뫼가 곧게 선 채 7호 애니민을 본다.

난 한듬.”

녀석은 동문서답을 한다.

말해! 너 언제 여기 온 거야?”

한 시간 전? 아니 두 시간 전인가?”

한듬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동안 어디 있었는데?”

서버에 있다가 왔어.”

처음으로 돌아간 거야?”

들이 지켜보다 끼어든다. 의외로 들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그때보다 상황이 더 나빠.”

다들 불러오자! 지금은 뭉쳐야 할 때야.”

들이 인터폰으로 달려간다. 다들 뭔 일인가 하여 뛰어온다.

이 자식은 뭐야?”

다들 한듬의 등장에 놀란 눈빛이다.

이 자식이 아니라 한듬.”

한듬이 자기를 소개한다.

이균과 애니가 보냈어. 우리 컴퓨터는 이균과 애니의 수중에 들어갔고.”

뫼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한다.

어떻게?”

이 자식······.”

말을 하다 말고 뫼가 한듬을 본다.

한듬.”

그 틈을 이용해 한듬이 다시 제 이름을 말한다.

이 자식이 우리 컴퓨터 서버를 망가뜨렸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균이 담아 보낸 바이러스를 서버에 옮겼어. 자료도 복사해서 전송하고.”

뫼의 시선이 한듬에게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다. 감정이 복잡하다. 적이라고 몰아세우자니 그도 애니민이다. 그렇다고 감싸자니 지고 온 짐이 폭탄이다. 감정이 안에서 가닥가닥 얽힌다.

우리 낙원은 여기서 끝나는 거야?”

아미가 불안하게 뫼를 바라본다.

예상했던 일이야. 마지막 넘어야 할 산일지 몰라. 놈들도 더는 써먹을 게 없어. 마지막 수단이야. 이 고비만 넘기면 우린 놈들과는 영원히 안녕이야. 그렇게 되면 놈들이 우리들의 낙원을 더는 건드리지 못해.”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당하면?”

아미가 최악의 상황을 입에 올린다. 뫼가 아미에게 시선을 옮긴다. 아미가 떨고 있다.

날 믿어. 난 가상세계라면 어디나 갈 수 있어. 하지만 놈들은 아니야. 홀로그램으로 무장한 아바타가 없으면 가상세계를 누비고 다닐 수 없어. 아바타는 아바타일 뿐이야. 현실의 사람이 아니야. 그 걸로는 한계가 있어. 나도 생각이 있어.”

뫼가 모두를 안심시킨다.

이제 못하게 될 거야. 한듬이 왔으니까.”
한듬이 불쑥 끼어든다.

뫼가 한듬에게로 다시 시선을 옮긴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다가온다. 이균의 작업실에서 봤던 내용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한듬을 묶어! 우리 옆에 놔두면 안 돼!”

한듬이 도망치려 한다. 누리가 달려들어 한듬을 붙든다.

묶어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야 해. 풀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 그렇지 않으면 풀릴지도 몰라.”

누리가 숲으로 뛰어가서 칡넝쿨을 잘라온다. 껍질을 벗겨 야무지게 한듬의 온몸을 꽁꽁 동여맨다. 한듬이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빠져나오지 못하고 악만 써댄다.

놈이 우리 뇌를 손대려 하고 있어. 그건 죽음과 맞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내야 해. 누가 한듬을 지켜! 묶어놓은 것만으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뫼가 시선을 화면에 박은 채 다급하게 말한다.

내가 할게. 내가 숲-체질이잖아. 그거라면 내가 딱이야.”

누리가 빼지 않고 나선다. 버들이 고마움을 눈물로 드러낸다.

나도 도울 게.”

이든도 따라 나선다.

어떤 일이 있어도 풀어주면 안 돼! 그건 꼭 지켜야 해.”

알았어. 그거라면 우릴 믿어. 이 세상에 우리 바람과 맞바꿀 것은 아무것도 없어.”

누리가 한듬을 끌어다 가둔다. 한듬이 소리를 질러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