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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목숨을 건 맞섬35


BY 한이안 2016-02-01

온전한 인간이 아닌 애니민으로 태어난 것도 억울하기 짝이 없다. 한데 그것도 모자라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이나 다를 바가 전혀 없는 자신들을 이젠 구석으로 몰아대고 있다. 억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녀의 안이 그 생각으로 부글부글 끓는다. 도저히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들이 뫼를 본다. 뫼도 그걸 생각하는지 표정이 굳어 있다.

그래. 어떡해야 하는 거야?”

다들 뫼의 얼굴을 본다. 뫼는 난감하다. 길이 보이지 않기는 그도 마찬가지이다. 눈을 내리깐다. 차마 모른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잘 될 거야. 지금까지도 잘 해 왔잖아. 앞으로도 그럴 거야.”

들이 뫼를 대신해 모두를 다독인다. 눈을 내리뜨고 있는 뫼가 안쓰럽다. 지금까지 거의 혼자서 해결사 노릇을 해왔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를 해결사로 바라보고 있다. 그 부담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찾아볼게. 어딘가 길이 있을 거야. 놈이 우리의 유전자를 가지고 더는 장난치지 못하게 막아야 해. 놈도 해냈는데 우리라고 못해내겠어?”

더는 입을 닫고 아래만 볼 수가 없다. 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속으로 새기고 새겼다. 그걸 꺼낸다.

이상하다. 속으로 새김질할 때만 해도 자신이 없었다. 한데 자신감이 붙는다. 말의 힘인 모양이다.

들어가다 멈추었던 그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어.”

그건 안 돼!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어.”

들이 바로 받아쳐낸다.

들 말이 맞아. 그건 안 돼!”

나도 반대야.”

다들 기를 쓰고 막는다. 불안감을 지워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말인데, 한꺼번에 해내겠다는 것이 아냐.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는 연습을 해보는 거야. 그럼 거기에 대한 내성이 생길지 몰라.”

그래도 그건 안 돼!”

들이 단호하게 뫼의 생각을 자르고 들어온다.

우린 겨우 여섯이야. 단 한 사람이라도 잃을 수는 없어.”

그럼 손 놓고 놈에게 우리 운명을 맡기는 수밖에 없어. 우리 모두가 죽을 수도 있다고. 죽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놈이 우리 유전자를 제멋대로 조작하는 걸 당하고 있어야만 해. 그럼 우리가 어떻게 될 거 같아? 생각만 해도 그건 너무 끔찍해. 난 그렇게는 살 수 없어. 니들이 그렇게 살게 내버려 둘 수도 없어. 그러니 내가 놈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니들이 도와줘!”

뫼가 간절하게 모두를 둘러본다. 다들 뫼의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두려움을 몰아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선뜻 그러자는 말을 하지 못한다.

알아. 니들이 뭘 망설이는지? 그래도 해야 돼! 누군가는 그 일을 해내야 한다고. 그게 나라는 거 니들도 이미 다 알고 있잖아.”

모두 시선을 내리깐 채 말이 없다. 뫼는 애가 탄다.

내 몸만 들어갈 수 있는데 어떡해?”

놈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있어?”

들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

뫼는 망설이지 않는다. 망설임은 모두를 더 불안하게 할 뿐이다.
어떻게?”
그건 지금 말할 수 없어. 놈이 듣고 있을 거야.”

그래도 섣불리 행동하는 건 위험해.”

들 말이 맞아. 조심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알았어. 섣불리 행동하진 않을게.”

약속하는 거다?”

들이 다짐을 받는다.

그래. 그건 약속할게!”

다들 뫼의 입만 바라본다. 뫼도 그것까지 밀어낼 수가 없다.

그럴게.”

다들 마음을 놓는다.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빼도 박도 못하는 애니민이다. 비록 여섯뿐이지만 민은 민이다.

애니민. 들은 그 말을 잘근잘근 씹는다. 이미 이전에 받아들였다. 애니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을 이미 오래 전에 떼었다. 하지만 운명까지 받아들이진 않았다. 현실이 끄는 대로 살 수는 없다.

자축하자, 우리! 인류의 탄생 버금가는 역사적 사건 아니야? 어찌 알아? 나중엔 인류를 제칠 날이 올지. 10년 전까지만 해도 애니민을 생각이나 했겠어? 1년 전에도 생각지 못했잖아. 그러니 자축할 만하지 않아?”

들이 제안을 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다가오는 운명의 굴레를 털어내야 한다. 인간에게 조종이나 당하면서 살아가는 모조인간이라는 생각을 벗어던져야 한다.

자축?”

누리가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얼굴도 일그러져있다. 싸우자고 하면서도 거기까진 아직 마음이 움직이질 않는 모양이다.

우린 이미 태어났어. 누구도 그걸 아니라고 할 수 없어. 게다가 이대로 죽는 것도 싫어. 그것도 아니라고 할 수 없어. 그렇다고 애니민이라는 우울증을 달고 살 수도 없어. 난 당당해질 거야. 그게 내 삶의 시작이야. 애니민이면 어때? 살아서 숨 쉬고 있는 한 우리도 인간인데. 그들과 내가 다른 게 뭐야? 태어나는 과정뿐이잖아. 나머진 다를 게 전혀 없다고. 그러니 난 자축할 거야. 태어나지 않은 것보단 나아. 작품 속에 박제되어 있는 것보다도 훨 낫고.”

, 그렇게 용쓰지 않아도 돼! 나도 살고 싶어. 죽지 않고 살아낼 거야. 그러니 쓸데없는 말로 위로하지 않아도 돼.”

이든이 시무룩하게 말한다. 들은 고개를 젓는다.

그게 아니야. 애니민으로 태어난 걸 진심으로 축하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우린 태어났어. 비록 지금은 목숨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지만, 지켜내기만 한다면 우리 것이 될 수 있어. 그럼 우리 애니민 역사에 길이 남을 자랑거리가 되고도 남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난 축하하고 싶어. 후손들의 삶을 위해서도. 내가 당당해야 다음 세대가 당당할 테니까.”

들이 힘을 주어 말한다. 그래도 시큰둥한 표정이 지워지지 않는다.

후손을 만든다고? 이 운명을 대를 이어가면서까지 물려주겠다고?”

그럼, 누리 너, 이대로 살다 죽을 거야? 자신 있어? 그냥 먹고 자고 싸고 하는 걸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며 몇 십 년을 버텨낼 수 있겠냐고? 감정이 너를 흔들어대면 어떡할 건데? 혼자 방안에 틀어박혀 웅크리고 있을 거야? 난 그렇게 살기 싫어.”
그렇게 살기 싫으면?”
결혼하고 애도 낳고 할 거야. 난 단지 죽지 않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미래에 이곳을 터전삼아 뛰어다닐 내 아이들을 위해서도 난 꼭 놈을 이겨야겠어. 물론 뫼가 도와줘야겠지만.”
알았어. 기꺼이 도와줄게.”

뫼도 가슴이 울렁울렁한다. 들의 말이 그의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댄다.

, 너까지 왜 그래?”

누리의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이 가득하다. 반면 뫼는 실실 웃으며 여유를 부린다.

, 너도 들이랑 생각이 같은 거야?”

같으면 안 돼?”
누리가 우물거리며 말을 못한다.

나도 지금 죽고 싶지 않아. 그래서 목숨 걸고 싸우겠다는 거 아냐? 그렇다고 태어난 걸 물릴 수도 없으니 이왕 목숨 붙어 있는 거 사는 것처럼 살아야지 않겠어?”

역시 뫼야? 뫼와는 통하는 게 많다니까.”

들이 박수를 친다. 활짝 웃는 그녀의 얼굴엔 죽음도 애니민도 떠있지 않다. 누리는 그런 들을 멀건이 바라본다.

나도 사는 거처럼 살다 가련다.”
이든이 얼른 뫼의 꽁무니를 잡는다.

얼씨구?”

그렇게 버티지 말고 얼른 와서 내 꽁무니 잡아!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튕기긴?”

누군 사는 거처럼 살고 싶지 않대? 나도 사는 거처럼 살고 싶어. 아무리 달래도 억울하고 분한 게 풀리지 않으니까 그렇지.”

누리가 걸맞지 않게 눈물을 찔끔거린다. 애써 참고 있던 게 폭발한 모양이다. 다들 당황하여 누리 곁으로 다가간다.

우린 꼭 이길 거야. 여섯이나 있잖아. 한데 그놈 하나 못 이기겠냐?”

이든이 누리를 잡아 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도 서글퍼.”

실은 우리도 겁나고 서글퍼. 억울하고 분해. 그래서 이러는 거야. 무너질까봐, 주저앉을까봐, 그게 겁이 나서.”

들이 속을 까 보인다. 이든은 손을 뻗어 누리의 눈가를 닦아준다. 뫼는 누리의 등에 팔을 얹고 토닥인다. 버들도 아미도 다가가 팔로 감싼다. 모두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한 덩어리가 된다.

더는 눈물 같은 걸 보이지 않을게. 나 때문에 니들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해.”

누리가 쑥스러운 듯 삐죽이 웃는다.

우린 생각보다 강해. 놈들도 우릴 이정도로 강하게 만든 걸 후회하고 있을 걸?”
허긴? 한 번도 바닥까지 무너진 적은 없었어?”

누리가 맞장구를 친다.

여섯이니까. 혼자면 버티지 못할 것도 여섯이니까 우린 버텨내는 거야. 앞으로도 우린 거뜬히 버텨낼 수 있어. 이균 그놈이 문제지. 주변에 아무도 없잖아. 혼자서 지지고 볶고 해야 하잖아. 생각을 나눌 사람도, 생각을 키워줄 사람도 그에겐 없어. 아프면 보살펴줄 친구도 없어. 우리가 더 부자야. 애니민이 아닌 사람이면 뭐해. 늘 혼자인데. 마음속엔 온통 쓰레기만 가득한, 양심도 없는 불량인간인데. 안 그래?”

들이 따사로운 눈빛으로 모두를 둘러본다.

니 말이 맞아. 그에 비하면 우린 사람답게 살고 있는 거라고. 여섯이 서로 으르렁거리지도 않고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고 기대기도 하며 살고 있잖아. 놈보다 우리가 백 번 나아.”
뭐라고들 지껄이고 있는 것이야? 가만히 듣고 있자니 못하는 말들이 없구만.”

갑자기 거친 목소리가 툭 불거져 울린다. 이균이다. 애니민들의 말이 거슬려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