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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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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목숨을 건 맞섬33


BY 한이안 2016-01-25

‘7호 애니민. 뇌세포 파괴 바이러스, 입력장치 파괴 바이러스, 자료 복사·전송 관련프로그램. 컴퓨터 안에 있을 거야. 미련한 놈.’

혼자 중얼거린다. 컴퓨터를 열어 자료를 훑어나간다. 어렵지 않게 세 개의 자료를 찾아낸다.

됐어. 브라보! 자료들을 뇌세포에 입력한 성체에 7호 애니민이 되어줄 껍데기를 찾아서 입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애니의 작품을 뒤져 얼뜨기를 물색한다. 조각녀·조각남의 애니민들과는 다른 이미지 그림을 고른다. 모든 게 순조롭게 착착 진행이 된다.

미련한 놈. 속으로 제 탓이라 생각하고 있겠지. 미련한 놈들. 애니를 탓하고 있겠지. 슬슬 드러내볼까?’

거칠게 숨소리를 낸다. 숨소리가 망을 타고 넘어간다.

뫼가 멈칫한다. 귀를 바짝 세운다.

놈이야. 또 다시 시작할 모양인가? 이번엔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공격으로 맞설 거야.’

세포가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뫼가 몸을 비튼다. 그러더니 몸을 휙 던져 가상세계로 밀어 넣는다.

어쭈. 가상세계로 들어왔어. 날 찾아내 박살낼 기세군. 날 애니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지? 여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요새라는 걸 모르니 어쩔 수 없지.’

으하하하하.”

웃음소리가 가상세계를 진동시킨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세포들이 조여 온다.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알 수가 없다.

빠져나가야겠어!’

몸을 휙 돌려 힘껏 밀어낸다. 헉헉거리다 숨을 할딱거린다. 컴퓨터에서 쏴하는 소리가 들린다.

안녕~?”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린다. 확 소름이 돋는다. 안간힘을 써 밀러낸다. 울림이 멎자 근질거림이 멎는다.

당신이군. 내 컴퓨터에 자료를 올린 놈. 그래봐야 소용없을 걸? 난 자료를 넘겨줄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뫼가 앙칼진 목소리로 들이댄다.

자료를 받아서 뭐하게. 넘겨주지 말고 가져! 끌어안고 있으라고.”

이균이 넉살을 부린다.

필요 없다고? 그 말에 넘어갈 줄 알아? 천만에. 차라리 애니 놈처럼 솔직하게 굴지?”
그런가? 애니가 솔직하게 굴던가? 허긴. 속에 꿍치고 있다가 제풀에 지쳐 드러내긴 하지. 엉큼하지만 귀엽지. 그건 그렇고, 친구 하나 보내줄까? 여섯이서 노는 건 물릴 때도 됐을 건데.”
됐어. 우리가 니 놈들인줄 알아? 착각하지 마!”

뫼가 칼로 싹둑 잘라내듯 말한다.

그래도 여섯보단 일곱이 나을 텐데?”

뫼의 날 선 목소리와는 달리 이균이 달콤한 목소리로 살살 달래듯 말한다.

뫼는 속이 느글느글하다. 금방이라도 토가 나올 거 같다.

그럼 니가 끼고 살아. 우린 여섯으로 충분하거든. 기다려! 너도 곧 애니처럼 만들어줄 테니까.”

애니처럼이라? 고마워! 내 미끼를 물어줘서. 애니도 너도 한 판 잘 치러내더군. 알아챌까봐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어.”

뭐라고?”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 머릿속이 멍해진다. 애니의 컴퓨터를 박살내고 우쭐했던 게 떠오른다. 미끼를 물었다는 것도 모르고 흐뭇해했다. 잔뜩 흥분해서 떠벌렸다. 진저리가 쳐진다. 애니보다 위에 이균이 있었다. 잠자코 있기에 손 놓고 있는 줄 알았다. 컴퓨터에 깔린 폴더를 보고서야 틈을 노리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한데 그게 다가 아니라 한다. 맨 꼭대기에서 그물을 던져놓고 걸려들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다. 소름이 확 돋는다.

정신이 혼미한 모양이군. 오늘은 이만 가주지. 잘 따져보고 있게, 피조물.”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서있을 수가 없다.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식은땀이 흘러나온다. 눈물도 흘러나온다. 애써 추스르고 일어서면 몇 뼘은 더 높아진 산이 막아선다. 끝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토라져서 제 보금자리로 돌아간 들은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옆에 있겠다고 했는데. 세상이 텅 빈 것처럼 쓸쓸하고 외롭다. 나지막하게 들을 불러보지만 대꾸가 없다. 다가오는 발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들은 의자에 앉아서 뫼를 생각하고 있다. 달라지는 뫼가 낯설다. 적개심으로 그의 눈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가 무섭다. 그의 몸속에서 놈들이 깔아놓은 온갖 것들이 꿈틀거리며 일어서고 있다. 밀어내지 못하고 말려들까 봐 두렵다. 누군가 허겁지겁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 뫼가 왜 그래?”

누리가 달려오며 묻는다.

?”

불길한 느낌이 다가온다.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일어나 뫼에게로 달려간다. 뫼가 식은땀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

뫼의 두 어깨를 잡고 흔들어댄다.

눈물 사이로 어렴풋이 들의 얼굴이 보인다. 왜 그러냐고 묻는 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일어나자! 들이 돌아왔어. 그녀가 옆에 있은 한 일어설 수 있어. 그녀가 놈의 그물에 걸려 발버둥치는 건 볼 수 없어. 일어나자!’

그의 의식이 깨어난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다.

!”

니 옆에 있어. 그러겠다고 했잖아.”

알아.”
무슨 일 있었던 거야?”

일이 생길 때마다 묻는 말이다. 그 말이 낯설지도 않다. 몸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모양이다.

놈은 피라미였어. 진짜 무서운 놈은 공학자 그 놈이었어.”

들이 고개를 까닥인다. 다들 놀라지도 않는다. 이미 면역력이 생긴 모양이다.

다들 괜찮은 거야? 공학자 그 놈이 그물을 던져놓고 애니와 내가 한꺼번에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그 놈이 맨 꼭대기에 있었어.”

뫼가 외려 놀라지 않는 들에게 상황을 일깨우려 한다. 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뫼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만 한다.

놈이 애니민 하나를 더 만들어 보내겠대.”

니가 있잖아. 우리 옆에 항상 니가 있잖아. 지금까지 잘 막아냈잖아. 놈들과 싸워서 이겨냈잖아. 그거면 돼.”

우리도야.”

누리도 들의 말끈을 붙잡는다. 다들 뫼의 마음이 가라앉길 기다린다. 들이 뫼의 두 손을 꼭 잡고 있다. 몸이 따뜻하다. 피가 도는 모양이다. 심장도 멈추었다 다시 뛰는 느낌이다.

괜찮아?”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들이 묻는다.

뫼가 살짝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인다.

차근차근 따져보자! 할 수 있지?”
그래.”

뫼가 힘을 실어 대답한다.

누리 말대로 우리도 알아야 해. 놈과 치고받는 것은 너라 해도 운명은 하나야.”

진짜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것은 바로 공학자 그 놈이었어. 폴더의 네 번째 것, 그거 통로야. 그 끝에 그 놈이 있어. 그 놈은 맨 꼭대기에 앉아서 모두를 조종하고 있었던 거야. 우리가 헛다리를 짚으며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는 걸 지켜보고 있었어. 애니와 날 한꺼번에 옭아매려고 틈을 엿보고 있었어..”

아작을 내도 시원치 않을 놈.”

누리의 눈에서 불똥이 튄다.

애니는 그냥 시험 삼아 내 몸에 이것저것을 넣었어. 그걸 공학자 그 놈이 눈치 채고 손을 쓴 거야. 애니는 아직도 지금의 내가 자기 작품이라고 생각해. 공학자 놈이 손을 댔다는 것을 몰라.”

죽일······.”

누리가 말을 하려다 멈춘다. 모두의 귀가 쫑긋 선다.

제법인데? 똑똑해. 맞아. 넌 한 번도 내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었어. 이번에도 그렇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