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만나자는 전화에도 이균은 투덜거리지 않고 애니의 사무실을 찾는다. 애니는 사람을 불러놓고도 반기는 낯빛이 없다. 뭘 재고 따지고 하는지 힐끗 쳐다보는 것도 없다. 이균도 그걸 낯설어하지 않는다.
“애니민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툭 던진다.
“덫만 놓았어.”
“찾아내지 못했다고?”
“아직은.”
이균은 길게 늘어놓지 않는다.
“너 혹시 우리 모르게 손 댄 건 아니지?”
애니가 이균의 속을 떠본다.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뭔 뜻이야?”
이균이 기분이 상한 투로 묻는다.
“아냐. 그냥 한 번 물어본 것뿐이야.”
애니가 얼른 발뺌을 한다. 치고 들어가 봐야 믿지는 거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애니는 이균을 장사꾼이라 생각한다. 자신도 역시 장사꾼이다. 거래가 없으면 만날 일도 없다.
“소훈한테 들었어. 노화담당유전자?”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애니가 어떤 생각으로 꺼냈는지 알 수가 없다. 미리 살짝이라도 엿봐야 한다. 그래야 밀당에서 밀리지 않을 수가 있다.
“관심이야 있지. 애니민 때문에 마음이 묶여서 그렇지. 피터 팬은 흥미 없어. 노화를 늦추는 거라면 모르지만.”
애니가 손톱을 뜯어내며 심드렁하게 말한다.
“누가 피터 팬 만들자고 했어? 나도 피터 팬은 관심 없어. 덧없는 시간을 겪어내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 그건 별로야. 사람들도 그럴걸?”
이균이 애니를 본다. 그의 속을 알 수가 없다. 관심은 있지만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와 닿지가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균이 참지 못하고 묻는다. 쓸데없는 기 싸움으로 시간을 죽일 필요는 없다. 생각에 때를 묻히고 싶지도 않다.
“가상공간에 있는 애니민에게도 가능해?”
여전히 거리를 재고 있는 말투다. 눈길도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다. 들키고 싶지 않는 뭔가를 속에 담아두고 있는 태도다.
“가능해.”
이균이 짧게 대답한다. 애니가 몸을 꼿꼿이 세워 이균에게로 돌려 앉는다.
‘날 떠봤다 이거냐?’
이균은 그런 애니가 아니꼽다. 모르는 바가 아님에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이 참에 놈들 머리도 손질하자!”
‘그거였냐? 눈도 마주치지 않고 속으로 벼르고 있었던 게.’
이균은 고개를 살짝 돌린다. 괘씸하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
“찾아내고나 애기해. 찾는 게 먼저 아냐? 놈들이 우리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지 벌써 서너 달이 넘어가고 있어. 놈들을 내 눈앞에 데려다 놓고 말해.”
이균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애니는 다급하게 굴지 않는다. 문까지 걸어가도록 내버려 둔다.
“눈앞에 보여야만 할 수 있다는 소리야? 그냥 가상공간에 둔 채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야?”
눈빛도 목소리도 흔들림이 없다. 싸늘하다.
이균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본다. 속은 싸늘하다.
‘능구렁이 같은 놈.’
“글쎄? 나도 거기까진 확인을 해보지 않아서.”
이균도 시원하게 답을 하지 않는다. 애니의 속에 든 게 뭔지 다시 알 수가 없다. 속을 알기 전까진 섣불리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럼 확인하고 답을 줘!”
‘누구 좋으라고. 니가 독차지하면? 그러고도 남을 놈이잖아. 속을 까발리고 답을 달라고 하든가. 그게 손을 잡는 조건 아닌가?’
말없이 돌아서 나온다. 예감이 썩 좋지 않다.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