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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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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목숨을 건 맞섬22


BY 한이안 2015-12-17

정말 그 놈일까?”

들이 영 믿기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기에는 사진 속 남자가 너무 평범하다. 머리에 뿔은 아니라도 겉모습이 험악할 줄 알았다. 한데 그렇지가 않다. 머릿속 놈과 딱 들어맞지가 않는다.

느낌이 그래. 뭐라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이상했어. 가상세계에서 마주쳤을 때의 그 느낌? 아줌마 생각이 틀리지 않을 거야.”

이젠 어떡해야 하지? 흔적을 남겼다면 놈이 가만두지 않을 건데.”

그러겠지. 펄펄 뛰겠지.”

이미 마음을 다지기라도 한 것처럼 느긋하다. 말도 다부지다.

예상을 했던 거야?”

뫼가 고개를 끄덕인다. 머릿속에선 다음을 노릴 수를 찾는다.

아줌마 말대로 아득해. 가상세계에 써 먹을 게 널려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그런 걸 손에 죄 쥐고 있는 놈들이야.”

손에 잔뜩 쥐고 있다고 해서 꼭 이기라는 법은 없어.”

들이 뫼의 팔을 감싸 잡고 뫼의 얼굴을 다정하게 바라본다.

내 느낌인데? 우린 참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느낌이 낯설지 않고 친근해. 지금 니 모습이. 니 말과 말투, 그런 것들이.”

엉뚱한 말이 나온다. 한데 어색하지가 않다. 들을 보고 있자니 잠시 자신의 현실을 잊는다. 달콤함이 스며든다.

나도 지낼수록 새로워지는 니가 익숙해. 처음엔 우리 둘 다 무뚝뚝했잖아. 시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어. 그냥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어. 달랑 둘이라는 생각, 여섯이라는 생각만이 다였어. 한데 지금은 달라지는 니가 내 안에서 늘 꾸물거리고 있어. 우린 아주 가까운 친구였었을까?”

들도 싫지가 않다. 뫼의 부드럽게 다가오는 눈빛이 달콤하다.

연인이지 않았을까?”

뫼가 장난처럼 들의 말을 바꾼다. 뫼의 말에 들이 깔깔 웃는다. 그렇게 웃어본 게 처음인 거 같다. 뫼가 팔을 뻗어 다정하게 들의 어깨를 감싼다. 들도 밀어내지 않는다.

놈들만 아니라며 이렇게 쭉 있고 싶다. 얼었던 마음도 녹아내릴 거 같아. 아줌마가 글을 쓰지 않으니까 우리 안에서 우러나오는 거겠지?”

뫼가 고개를 끄덕인다. 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

뫼가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며 묻는다.

우리도 다르지 않아. 2013년의 청춘남녀들과 다르지 않다고. 그게 너무 감사해서. 감사하다는 말, 누구한테 해야 하지? 우주를 관장하는 조물주? 아님 놈들?”
들이 몸을 떼어내며 묻는다. 뫼는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답을 찾아 헤맨다.

애니민, 놈들의 손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유전자는 하늘이 준 것이다. 그게 몸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하늘. 우린 조물주의 작품이야. 조물주는 하늘 어딘가에 있겠지? 그에게 감사하자!”

뫼가 한참 헤맨 끝에 말한다.

그래. 니 말이 맞아. 우리도 조물주가 넣어준 씨앗으로 태어났어. 놈들이 만들어낸 게 아니야. 더는 그걸로 아파하지 않을 거야. 우린 조물주가 만들어 세상으로 내보낸 사람의 유전자를 가졌으니까.”
들이 가슴 벅차게 말을 쏟아낸다. 비로소 눈물이 거둬진다. 거둬지는 눈물 속에서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난다. 뫼가 그런 들의 눈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온다.

?”

들의 눈망울이 어쩔 줄을 모르고 흔들린다.

가만있어. 니 눈망울이 보석처럼 빛이 나. 사람의 눈망울은 뭔가 달라. 빛이 나. 초롱초롱해. 애니민의 눈빛과는 달라.”

난 또 뭐라고?”

들이 뫼를 밀쳐낸다. 하지만 속은 말갛다. 세상에 빛이 넘실거린다. 어제의 세상이 아니다.

, 이젠 전사로 돌아갑시다, 동지! 놈들이 더는 이 세상에서 발붙이지 못하도록 몰아냅시다!”

들이 장난기로 무장하고 현실을 일깨운다. 안에서 뜨뜻하게 피어오르던 물결이 가라앉는다.

실망한 거야?”

실망은? 것도 하늘이 사람들 속에 내려 보낸 것들 중 하나일 텐데. 그 생각을 하니까 힘이 솟는다.”

뫼의 눈이 웃고 있다. 들이 마음을 놓는다.

한데 왜 놈들이 아줌마의 컴퓨터를 무시하지 못하는 걸까? 왜 망가뜨리려 하는 거지? 망가뜨려봐야 소용이 없을 텐데. 다시 구입하면 되잖아.”

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는다. 뫼도 이상하다 생각한다.
그러게. 우리들만 상대하면 될 텐데, 왜 아줌마까지 상대하려는 걸까? 니 말대로 컴퓨터를 망가뜨린다 해도 다시 구입하면 되는 걸? 잠깐!”

?”

아까, 아줌마가 그랬던 거 같다. 놈이 아줌마 컴퓨터를 훔쳐내고 싶었을 거라고.”

뫼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을 찾아내려 애를 쓴다.

그래? 그럼 아줌마가 뭘 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님 느낌이라도.”

아줌마한테 물어보자!”

그래. 빨리 들어가 봐!”

이선은 글을 쓰고 있다가 대화방에 손님이 들었다는 문구를 보고 얼른 대화방으로 들어간다.

? 좀 전에 봤잖아.”

. 한데 확인해볼 게 있어서요.”

?”

아줌마의 컴퓨터를 망가뜨려서 놈들이 얻을 수 있는 게 뭔가 해서요. 새로 구입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니 말이 맞아. 얻을 수 있는 게 없어.”

제가 알아낸 거에 따르면 집까지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망가뜨릴 수 있어요. 놈들은 망가뜨리려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듣고 보니 그러네. 그럼 뭐지?”

이선도 뭔가 이상하다. 굳이 집까지 오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어려운 게 아니다. 비록 정보나 정보기기에 빠삭하지는 못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상황을 바꾸지는 못해도 읽어낼 수는 있다.

아까 훔쳐내고 싶었을 거라는 말은 뭔 뜻인가요?”

그랬니? 얼떨결에 나왔나 보다.”

그 얼떨결에 나온 말이 답인 거 같아요. 아줌마의 컴퓨터와 우리 컴퓨터, 서로 맞물려있어요. 망가뜨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그 방법을 쓰지 않고 있는 걸 보면요.”

맞아. 그럴 가능성이 가장 짙어. 놈들이 조급하게 구는 까닭을 알겠어.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이선이 손으로 무릎을 탁 내려친다. 진작 그 생각을 하지 못한 게 한이 된다.

뭔데요?”

세 곳의 컴퓨터가 함께 엮여있어. 서로 유기적으로 반응하게 되어 있다고.”

어떻게요? 놈들의 컴퓨터는 반응하지 않고 있는데요.”

아냐. 반응하고 있어. 내가 연결하여 손을 쓰는 바람에 놈들의 컴퓨터 연결이 일시 차단됐을 뿐이야. 겉으로 드러나는 건 그래. 하지만 속으론 아니야. 세 곳의 컴퓨터가 모두 작동하고 있어야 해. 보이지 않게 엮여 있다는 생각이야. 그리고 내 생각인데, 니들과 연결할 수 있는 현실은 하나뿐이야. 내 컴퓨터.”

아줌마 컴퓨터뿐이라뇨?”
맞아. 내 컴퓨터가 기점 역할을 하고 있어. 니들은 내 컴퓨터를 통로로 해서 가상공간을 보고 있어. 놈들도 마찬가지야. 놈들은 곧장 니들한테 갈 수가 없어. 내 컴퓨터를 거쳐서 가도록 설정이 되어 있으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내 컴퓨터를 이렇게 내버려 둘 수가 없어. 니 말대로 파괴시킬 수 있는 방법은 많아. 내가 놈들의 컴퓨터 연결망을 끊어버리는 바람에 놈들의 컴퓨터가 일시적으로 헤매고 있는 거야. 하지만 연결 고리는 그대로 있어. 그걸 찾는 거야. 놈들이라면 언젠가는 그걸 찾아낼 거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러니까, 연결이 아주 끊어지지는 않았다는 건가요?”
맞아. 놈들의 컴퓨터는 여전히 니들과 연결되어 있어. 내 컴퓨터와도. 만약 그걸 끊어버리면 너희들을 아주 놓치게 될 걸? 그래서 끊어내지는 못해. 게다가 지금 당장은 내 컴퓨터가 없으면 놈들은 니들에게 가 닿을 수가 없어.”

한데 모르는 거 같았어요.”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야. 셋이지만 그걸 알고 있는 놈은 셋이 아닐 수도 있어.”

그러니까 모르는 척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거네요? 그러면서 방법을 찾고 있는 거군요?”

맞아. 하지만 놈이 조급하게 구는 까닭은 그게 다는 아냐.”

그럼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가요?”

. 니 머리. 니 머리가 보통이 아냐. 들도 마찬가지고. 놈의 머리를 넘어서고 있어. 놈은 그게 두려운 게야. 새로운 애니민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니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헛수고만 하다 세월 보내겠지. 놈이 그걸 알고 있는 거야. 니들을 찾아내는 것보다 만들어내는 게 쉬울 텐데 놈들은 그러지 않고 있어.”

이선의 머리가 180도로 회전한다. 생각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망설일 필요도 없다. 주어들기만 하면 된다.

아줌만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는 거죠? 꼭 인터넷 자료에서 답만 추려내 말하고 있는 거 같아요.”

인터넷을 사람의 머리와 비교할 수는 없어. 정보는 많지만 그뿐이야. 사람의 생각이 가 닿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대단해요. 한데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요?”

? 너도 배우게?”

뫼가 피식 웃는다.

니 머리로 충분해. 배우고 싶다고 해서 단 며칠 만에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교직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며 쌓인 내공이 좀 있을 뿐이야. 사실 난 정보 분야에 대해서 잘 몰라. 지금 너보다도 몰라. 가끔 주워 듣는 이야기들과 뉴스에서 본 내용, 앞뒤를 연결하는 추리력, 그게 다야. 애들에게 비문학이며 독서 가르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쌓인 거 같아. 알고 나니 싱겁지?”

아뇨. 눈앞에 보이는 사실이 아주 미미하다는 거, 저도 알아요. 나머지는 사람의 두뇌가 움직여야죠. 아줌마 추리력은 저도 혀가 내둘러져요.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모두 아줌마처럼 추리력이 대단한가 봐요?”

글쎄? 나보다 대단한 사람이 많을 걸? 교직에 있을 때 난 보통이었어. 가르침에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은 했지만 말이야.”

멋져요. 제 생각인데요, 아줌마보다 대단한 국어 샘은 없었을 거 같아요.”

이선이 ㅎㅎ 웃는다. 싫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할 주변머리도 못 된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는다.

하나만 더 아줌마 추리력을 발휘해주세요. 여기서는 그쪽 상황을 알 수가 없어서 그런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어요.”

뭔데?”

한데 왜 처음 한동안 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거죠?”

그거야 놈들이 존재가 드러날까 봐 조심했던 거지. 한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 이미 드러나 버렸거든. 더는 숨죽이며 조심하진 않을 거야.”

맞아요. 이젠 놈들이 드러내놓고 설쳐대고 있어요.”

외려 그게 나을지도 몰라.”

뭐가요?”

설쳐대는 거. 숨죽이고 있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건 아니거든. 상대하기만 힘들 뿐이지. 설쳐대면 움찔 할 때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길 가능성도 높아. 움직임이 보이잖아. 그럼 막아낼 길도 보이기 마련이거든.”

정말 그러네요.”

대신 정신 바짝 차려야 해. 놈의 생각을 놓치지 마!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놈의 생각이 보일 거야. 그걸 놓치면 함정에 빠질 수도 있어. 그걸 무시하면 엉뚱한 길로 들어설 수도 있고.”

마음에 새겨둘게요. 아줌마를 찾아오기 잘했어요. 파이팅요.”

그래, 파이팅이다!”

저도 파이팅요.”

들이 처음으로 둘 사이에 끼어든다. 옆에서 듣고 있으면서 수없이 끼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방해가 될까봐 그러질 못했다.

ㅎㅎ.”

이선의 웃음소리에서 대화는 멈춘다. 뫼와 들은 서로 마주보며 웃음을 나눈다.

하늘이 우릴 버리진 않을 모양이야.”

그래도 순탄하진 않을 거야. 그게 인생이라 했다면서.”

그건 2013년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 했어. 그러니 괜히 기죽을 필요는 없어. 공간은 달라도 나머진 다르지 않아.”

매일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지루해서 어찌 살려고?”

그럴까?”
그럼? 얼마 가지 않아서 심드렁할걸? 그렇게 사는 건 사양. 난 가끔 너와 토닥토닥도 하고 싶어. 누리의 욱하는 모습도 보고 싶고. 토끼 고기 구워서 다리 쭉 찢어 건네주는 것도 그립고.”

그러고 보니 우리 요즘 좀 그랬지?”

좀이 아니라 많이 그랬지.”

모처럼의 달콤함을 놓고 싶지 않다. 생각은 놈들에게 가 있으면서도 마음은 머물러 있다. 결국 들이 일어선다.